예전엔 집에서 탈곡을 하였기 때문에 집 주위가 엉망이죠.
어릴 적 탈곡한 집단을 날랐었죠. 소먹이(여물)로 사용하였습니다.
보리타작, 콩타작은 도리깨로 하였습니다.
콩타작을 하였나 봅니다. 바람을 일으키는 풍로가 있었는데
안보이는 것을 보면 60년대 이전인가 봅니다.
전형적인 초가 마을. 마을 주변에 버드나무들이 많았습니다.
여유 있는 가족의 모습
손으로 하루종일 모내기를 하고 나면 허리는 물론 눈이 퉁퉁.
경상도말로 논도가리가 크네요. 모내기하는 사람이 많아 다행입니다.
예전에는 천수답이 많았습니다. 이맘 때면 초벌 논매기를 하였죠.
동네 아이들의 모습.
여름이면 매미 잡고 구슬치기하고 놀았는데...
먼 시장길(신장로) 산중 시골이라 오리나 십리길을 가야했습니다.
빨랫터에서 빨래하는 모습
풀베기 운동(퇴비용) ㅡ 4H 구락부 깃발도 보입니다.
요즘 신세대분들은 예전에 마을 입구에 가면 쉽게 볼 수 있었던
이 퇴비더미 사진을 보면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궁굼하지만...
농촌에 사셨던 분들은 마을 입구에 커다란 풀더미를 쌓아 놓고
마을 또는 읍. 면단위로 목표량을 정해 놓고 공무원의 독려 속에
경쟁을 벌이며 퇴비 증산에 사활을 걸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부역이라 하여 마을별로 많이들 동원되었습니다.
마을 진입로, 농로길을 동민들의 부역으로 길을 만들었습니다.
한 짐씩 이네요. (경상도에서는 거울이라 하였는데..)
여름내내 하였던 것 같습니다.
새마을 모자를 보니 생각이 납니다. 옛날 성남에서
새마을연수원 교육도 받았는데 지금도 있나 모르겠습니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산과 들에서 풀을 베어 지게에 지고
새마을기를 든 마을 이장이나 작업반장의 뒤를 따라
긴 행렬을 이루며 집합 장소로 이동?던 그 때.
높은 분들이 지나가면 잘 보이도록 도로 옆 가장자리에
산더미처럼 최대한 높게 쌓아 실적에 따라 마을별로
시상도 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이렇게 모아 퇴비를 만들었습니다.
마을마다 퇴비 증산 운동이 활발히 벌어졌습니다.
초가집 이을 때 이엉과 용마루를 엮고 있습니다..
초가 지붕 이을 때면 굼벵이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그 땐 징그러워 했는데, 요즘에는 고단백으로 당뇨에 좋다죠?
내년에 심을 씨앗들을 처마에 매달아 보관하였습니다.
도리깨로 콩타작을 하는 모습입니다.
당시 농촌에는 잔일들이 항시 많았습니다.
먹음직스런 노란 옥수수는 좋은 간식이었습니다.
감나무 사이로 벼 탈곡하는 모습.
등목이라 하여 예전에 많이들 하였습니다.
집집마다 이런 장독대가 있었습니다.
예전의 부엌 모습(경상도에서는 '정지'라 하였음)
고부지간 맷돌에 메밀을 갈고 있습니다.
짚신을 만들고 있습니다.
소는 재산 목록 1호였습니다. 소가 없으면 농사를 못지었습니다.
가을걷이에 새참을 나르고 있습니다.(막걸리, 국수 등)
배가 고프면 허리가 더 아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