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수명의 신장으로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이젠 ‘생로~병~사’가 되었다. 늙어 가는 기간이 상대적으로 길어 졌으니 노(老)가 길어진 것이고, 마지막 평균 10년을 아프다가 세상을 뜬다 하니 병(病)도 길어진 셈이다.
옛날에는 환갑을 넘기는 이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90넘게 산 사람들도 있었다.
한문에서 50대를 애년(艾年)이라 부른다. ‘쑥 애(艾)’자인데 쑥의 잎이 위는 파랗지만 잎의 뒷면은 흰빛을 띠우고 있기 때문이다. 머리터럭이 희어지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60대를 '기년(耆年)'이라 부른다. '老'자에 '달 감(甘)'자를 붙여서 만든 글자가‘늙은이 기(耆)’자다. ‘단 것’을 안 좋아하던 사람도 60대에서는 단 것을 찾는다. 60대엔 근력이 딸리기에 생기는 인체의 반응이다. 군인들의 비상식량에 초콜릿이 포함된 것과 같은 이치이다.
옛날엔 홍시(紅枾)나 곶감이 노인들이 즐겨 먹던 간식이었다. 박인로(朴仁老, 1561~1642)의 조홍시가(早紅枾歌)가 있다. 한음 이덕형이 접대로 내놓은 감을 보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지은 시라 한다.
盤中 早紅枾가 고와도 보이나다
柚子 아니라도 품음직도 하다마는
품어 가 반길 이 없을새 글로 설워하나이다.
소반 위에 일찍 익은 홍시가 곱구나
유자는 아니라도 훔쳐가고 싶은데
훔쳐간들 반길 이(어머니)가 없어서 서럽다.
위의 유자(柚子)는 중국 오나라의 여섯 살의 육적이 원술의 집에서 접대로 내놓은 유자귤 세 개를 슬그머니 품 안에 숨겨 나오다가 발각이 되었는데 모친에게 갔다 드리려고 했다는 육적회귤(陸績懷橘)이라는 고사에서 인용한 것으로 효를 이야기 할 때 종종 인용된다.
80대엔 노(老)자 밑에 지(至)를 붙여서 질(耊)이라 읽고, 90대엔 노(老)자 밑에 ‘모(毛)자’를 붙여서‘극 늙은이 모(耄)’라 읽었다. 어찌 되었든 옛날에도 90대가 있었다는 말이다.
늙는 다는 게 뭘까?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인생의 한 여정(旅程)이다. 어디 인간뿐인가? 지구상의 모든 동식물은 물론 바위도 천 년이 지나면 그 모습을 잃게 된다. 위 사진은 Sound of Music에 나온 두 배우의 45년 뒤의 모습이다. 맏딸 리즐(Liesl)로 나온 샤미엔 칼(Carmian Carr)은 전혀 딴 모습으로 변했다.
누구나 늙어가는 모습을 숨길 수는 없다. 가끔 Reverse Aging 한다는 화장품 광고를 보지만 아인슈타인이 말한 Time Machine(존재하지도 않지만) 외에는 우리 나이를 되 돌릴 수는 없다.
늙는 것을 피할 수 없다면 ‘곱게 늙는 수’밖에 없다.
공자는 나이60을 이순(耳順)이라 했다. 이순에 대하여는 여러 해석이 있으나 귀가 순해 진다니‘남의 비난을 들어도 발끈하지 않고, 칭찬을 들어도 들뜨지 않는다’가 이순의 옳은 해석일 것이다.
공자의 말년은 형편이 좋지 않았다. 말이 주유천하(周遊天下)지 Job을 구하려고 10여 년을 여기 저기 돌아 다녔으나 그를 알아 주는 제후가 없었다. 또 아들의 죽음에서 인생의 허망을 보았다. 그럼에도 그는 이순(耳順)을 했다.
이순(耳順)이란 마음의 여유를 말한다. 주머니 사정이 안 좋을 땐, 돈 쓸 곳에 가지 않는 한 누구든 눈치채지 못하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언행이 경박(輕薄)해져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경원의 대상이 된다.
즉, 곱게 늙는 첫째 비결이 ‘마음의 여유’이다.
노년엔 종교가 있는 것이 없는 것 보다는 났다. 뭔가 의지처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외로움이나 어떤 고통을 감내하기가 용이하다. 원래 종교의 발원(發源)이 인간의 불완전의 속성(屬性)에서 기인된 것이라면 다소라도 그 부족분을 충족 시킬 수 있겠고, 또 그로 족한 것이다.
위로 받을 수 있다는 것, 그게 힐링의 첫 스텝이다.
죽은 사람은 숭배할 수 있어도 산 사람에 대하여는 그게 어렵다. 죽은 이는 더 이상 어떤 실망을 만들지 않지만, 산 사람은 그 언행에서 때로는 실망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종교든 그 경전에는 위로 받을 수 있는 좋은 말들이 많다.
연륜(年輪)이 많을수록 회한(悔恨) 또한 많다.
과거가 있기에 현재가 있듯이 어떤 후회스러운 일들일지라도 당시의 형편과 처지에서 최선을 다 했었다면 더 이상은 마음에 두지 말아야 한다. 되 돌릴 수 없는 게 과거이며 또 이미 지나간 것이기 때문이다.
학문도 내 처지와 생각이 들어가지 않은 것은 진리가 아니라는데 그 외에 더 무슨 말이 필요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