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하워드 페인은 1852년 알제리에서 사망했습니다. 31년 만에 그의 시신이 군함으로 뉴욕에 돌아오게 되던 날, 항구에는 미국 대통령, 국무위원, 상원의원들과 수많은 국민들이 나와 모자를 벗고 조의를 표했다고 합니다.
과연 그는 어떤 업적으로 추앙받았던 것일까요? 그것은 <즐거운 나의 집>이라는 노래를 작사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내 나라 내 기쁨 길이 쉴 곳도
꽃 피고 새 우는 집 내 집뿐이리.
오 사랑 나의 집 즐거운 나의 벗
내 집뿐이리."
가정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입니다.
세계인의 애창곡 <Home Sweet Home>. 우리말로는 <즐거운 나의 집>입니다. 이 곡은 1823년 영국의 유명한 작곡가 헨리 비숍(Sir Henry Bishop)이 작곡했고 나중에 미국의 존 하워드 패인이 노랫말을 붙였는데, 영국에서보다는 오히려 미국에서 더 유명해진 노래로 알려져 있습니다.
북부연합군 1만2천 명, 남부동맹군 5천 명의 사상자를 낸 1862년 버지니아의 레파하녹크 리버 전투는 남북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유명했지요. 이 전투에서 양쪽 진영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낮에는 전투를 하고 밤이 되면 군인들의 사기를 북돋기 위해서 양쪽의 군악대는 매일 밤 음악회를 열었는데, 어느 날 밤 이변이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북군의 군악대는 아주 특이한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어요. 그 멜로디는 바람결의 새털처럼 전장에 울려 퍼졌습니다. 그 순간 그리운 가족이나 연인에게 편지를 쓰고 있던 군인들은 사무친 그리움에 텐트 밖으로 나와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지요.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이 멜로디는 강 건너 편에 있던 남부군 진영에도 울려 퍼졌습니다. 남부군 군악대도 덩달아서 이 음악을 연주하고 남부군도 다 함께 합창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상대방이 적이라는 것도 잊어버리고 강으로 뛰어나와서 서로를 얼싸안고 모자를 하늘로 높이 던져 올리며 환호했습니다.
이 장면을 현장에서 취재했던 프랭크 막심은 한 마디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다들 미쳤다."라고 말입니다.
노래 하나 때문에 전쟁은 사라지고 오직 조국과 동포애만 남았던 것이죠. 이렇게 <즐거운 나의 집>의 멜로디는 서로의 적대감을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으로 변화시켰던 것입니다.
(모셔온 글)
[출처] <즐거운 나의 집> 노래에 담긴 일화|작성자 짱구천사
즐거운 나의 집/ 김치경 노래/ Pittsburgh North Par..
http://tvpot.daum.net/v/v07c5GTGUGPdTmQmZdPl0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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