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 김영한 비망록 역추적해 '김기춘 철벽' 뚫는다
박영수(64) 특별검사팀이 가장 전통적인 수사방식으로 김기춘(77)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라는 난제(難題)를 풀어 나가기로 했다.
고(故)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업무일지, 소위 ‘김영한 비망록’을 단초로 관련자들을 차례차례 조사하는 ‘역추적 방식’으로 혐의를 입증하겠다는 전략을 세운 것이다.
金 외압-직권남용 흔적 곳곳
문화예술계 좌파 책동 대응
홍성담화백 전시무산 과정 등
밑바닥 훑기식 고전적 수사 착수
광주 비엔날래 실무자 소환 조사
박영수(64) 특별검사팀이 가장 전통적인 수사방식으로 김기춘(77)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라는 난제(難題)를 풀어 나가기로 했다. 고(故)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업무일지, 소위 ‘김영한 비망록’을 단초로 관련자들을 차례차례 조사하는 ‘역추적 방식’으로 혐의를 입증하겠다는 전략을 세운 것이다. 시간은 걸려도 김 전 실장이라는 철옹성을 넘기 위한 ‘최선의 전략’이라는 평가다.
19일 특검팀 등에 따르면 수사팀이 검토 중인 김영한 비망록에는 비서실장 권한을 넘어서는 김 전 실장의 지시가 다수 담겨 있다. 김 전 실장은 “회의를 하다 보면 작성자의 주관적 생각이 가미될 수 있다”며 지시 자체를 부인하고 있지만, 이 중 상당수가 김 전 실장의 직권남용 혐의를 입증할 주요 단서로 특검팀은 보고 있다.
특검팀은 김 전 실장이 정부와 대통령에 비판적인 예술작품 전시나 영화 상영을 막도록 한 비망록의 내용에 주목하고 있다. ‘문화예술계의 좌파 각종 책동에 투쟁적으로 대응 ex) 다이빙벨, 파주, 김현’(2014년 10월 2일)이라는 김 전 실장 지시 메모는 직권남용 혐의를 풀 수 있는 단초가 될 전망이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을 김 전 실장의 조종을 받는 허수아비로 풍자한 ‘세월오월’을 그린 홍성담 화백 관련 메모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비망록에는 ‘우병우팀, 허수아비 그림(광주) 애국단체 명예훼손 고발’(2014년 8월 7일), ‘광주비엔날레-개막식에 걸지 않기로’(8월 8일) 등의 내용이 나오는데, 실제 8월 8일 보수단체들이 홍 화백을 고발하고, 같은 날 전시 유보 결정이 내려졌다. 전시가 무산되는 과정이 비망록 내용대로 전개됐다는 점에서 김 전 실장 지시에 따른 외압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다이빙벨 상영-대관료 등 자금원 추적’(10월 22일), ‘시네마달 내사-다이빙벨 관련’(10월 23일) 등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내용도 특검팀이 주목하고 있다.
특검팀은 가장 밑바닥부터 조사를 시작해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겠다는 쪽으로 수사 가닥을 잡았다. 홍 화백의 경우 광주비엔날레 관계자와 이들에게 작품의 수정 요구 등 압박을 가한 광주시 실무자를 먼저 불러 조사할 예정이다. 지시를 내린 윗선을 차례대로 추적해 결국 김 전 실장까지 도달한다는 계획이다. 윤장현 광주시장이 이미 언론을 통해 “김종(문화체육관광부 차관)으로부터 직접 전화를 받았다”고 이미 자백을 한 상황이라, 특검팀은 배후에 청와대가 있다고 보고 있다.
김 전 실장은 2014년 10월쯤 당시 김희범 문체부 1차관에게 “1급 실ㆍ국장 6명으로부터 일괄 사표를 받으라”고 지시한 혐의도 받고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김 전 실장은 법 논리에 정통해 매우 치밀한 수사가 필요하다”며 “차근차근 계단을 오르듯이 단계를 밟아나가면서 진술을 확보하면 김 전 실장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남상욱 기자 thoth@hankookilbo.com(mailto:thot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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