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

[생각해봅시다] 똑똑해지는 대중교통에 역차별 받는 고령층

감투봉 2017. 2. 8. 07:40

[생각해봅시다] 똑똑해지는 대중교통에 역차별 받는 고령층

세종=서윤경 기자 입력 2017.02.08 05:21 댓글 9

지난 4일 서울 반포동 고속버스터미널.
김민자(69·여)씨는 13번 승강장 앞에 늘어선 줄 가운데 서 있었다.
1시간 넘게 줄을 서고 나서야 김씨는 겨우 버스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김씨와 함께 줄을 섰던 10여명은 노인들이었다.

앱으로 열차·버스 표 구매시대의 '이면'

지난 4일 서울 반포동 고속버스터미널. 김민자(69·여)씨는 13번 승강장 앞에 늘어선 줄 가운데 서 있었다. 다들 혹시 있을지 모를 ‘빈자리’를 마냥 기다리는 중이었다. 김씨가 손에 꼭 쥔 차표엔 출발 시간과 좌석번호가 없었다. 행선지인 ‘세종터미널’만 찍혀 있었다.

얼마 전 출산한 딸을 만나러 서울로 온 김씨는 아들 집에 가기 위해 버스터미널을 찾았다. 세종시로 가는 차표를 사려고 했지만 이날 오후 9시까지 세종행 버스는 모두 매진됐다. 매표창구 직원은 김씨에게 일단 표를 사면 예약자가 오지 않는 좌석에 선착순으로 탈 수 있다고 얘기했다. 1시간 넘게 줄을 서고 나서야 김씨는 겨우 버스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김씨가 스마트폰에 ‘고속버스 애플리케이션’을 깔았더라면 굳이 이런 고생을 할 필요는 없었다. 딸 집에서 출발한 오후 4시30분쯤만 해도 고속버스 앱에는 세종행 버스의 빈 좌석이 1, 2개는 있었다.

고속버스, 열차 등 대중교통은 점점 똑똑해지고 있다. 스마트폰을 활용해 표를 예매하고, 좌석을 지정하는 등 앱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디지털’이 어렵기만 한 노인들은 소외되고 있다. 모바일 기기 사용이 익숙지 않다 보니 되레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7일 미래창조과학부 ‘2016년 인터넷 이용 실태조사’에 따르면 만 65세 이상 고령층의 스마트폰 보유율은 31.7%에 그친다. 65세 미만 성인은 93.9%다. 65세를 기준으로 극과 극으로 나뉘는 셈이다.

김씨와 함께 줄을 섰던 10여명은 노인들이었다. 버스의 좌석 28개를 차지한 이들은 20∼40대였다. 이들은 대부분 종이로 된 차표 대신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버스에 올랐다. 기사 바로 옆에 놓인 인식기에 스마트폰 화면의 ‘QR코드’를 찍었다.

철도도 다를 바 없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2200만여명이 이용하는 ‘코레일 톡 승차권 예매 앱’의 디자인과 구성, 기능을 사용자 중심으로 대폭 개선한 ‘코레일 톡 플러스(+)’를 지난 3일 0시부터 서비스하기 시작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타임 세이빙 서비스다. 예매한 열차 시간보다 일찍 기차역에 도착했다면 더 빨리 출발하는 열차를 자동으로 추천해주는 기능이다. 코레일은 마일리지 특실 업그레이드 서비스도 도입했다. 열차 출발 20분 전 특실 요금의 절반에 해당하는 마일리지로 일반실을 특실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서울∼수서 SRT고속철도도 비슷한 기능의 앱 서비스를 하고 있다. 역으로 직접 나와 기차표를 산다면 이런 혜택은 꿈도 꿀 수 없다.

이렇다 보니 철도 승객 가운데 앱 사용자는 20∼40대에 쏠려 있다. 코레일 톡에 회원 가입한 1230만명 중 77.84%(957만8000명)가 20∼40대다. 60대 이상의 회원은 7.16%(88만995명)에 불과하다.

역차별 논란이 거세지고 불만도 높이지자 정부도 고민이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한국철도공사 등 대중교통 운영회사들과 협의해 고령층이 역차별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대책을 고민해 보겠다”고 말했다.

세종=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뉴스 미란다 원칙] 취재원과 독자에게는 국민일보에 자유로이 접근할 권리와 반론·정정·추후 보도를 청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고충처리인(gochung@kmib.co.kr)/전화:02-781-9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