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달문
북쪽 방면에서 촬영(2019.1.3)
요약 보물 제402호. 사적 제3호인 화성은 1796년(정조 20)에 완공되었는데, 팔달문은 4개 성문 가운데 남문이다.
화강암으로 된 석축에 홍예문을 내고, 그 위에 여장을 돌린 다음 2층 누각을 세웠다. 누각은 앞면 5칸, 옆면 2칸 규모에 우진각지붕의
건물이다. 아래층과 위층의 공포는 다포식이며, 쇠서의 끝이 강하게 위로 솟아 있고 끝이 장식화되어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목조건축 양식을
보여준다. 성문의 좌우에는 적대를 설치하여 적을 감시하고 공격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성문은 북문인 장안문과 형태가 같으며, 규모와
건축수법 등이 서울의 숭례문과 비슷하다. 화성의 성문은 조선시대 성문 가운데 가장 발달된 것이이며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팔달문
대한민국 보물 제402호
ⓒ Rangculove/Wikipedia | CC BY-SA
보물 제402호. 사적 제3호인 화성은 1796년(정조 20)에 완공되었는데, 이 문은 화성의 4개 성문
가운데 남문이다. 화강암으로 된 석축에 홍예문(虹霓門)을 내고, 그 위에 여장을 돌린 다음 2층 누각을 세웠다. 누각은 앞면 5칸, 옆면 2칸
규모에 우진각지붕의 건물이다. 아래층과 위층의 공포는 다포식이며, 쇠서의 끝이 강하게 위로 솟아 있고 살미첨차의 끝이 장식화되어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목조건축 양식을 보여준다. 성문의 좌우에는 적대를 설치하여 적을 감시하고 공격할 수 있도록 했으나 도로 개설 때 성벽이 헐리어
현재는 없어졌다. 바깥쪽에는 반원형의 옹성을 축조했는데 윗부분의 중앙부에는 통행할 수 있도록 용도를 내었고, 양 옆면에 총안과 현안을 둔
철형여장을 쌓았다. 옹성의 남쪽 중앙에는 성문과 맞추어 홍예문을 설치하고, 그 위에 5개의 원형구멍을 낸 오성지를 만들었으며 안쪽으로
앞면·옆면이 각각 1칸인 누각을 세웠다. 이 성문은 북문인 장안문과 형태가 같으며, 규모와 건축수법 등이 서울의 숭례문 과 비슷하다. 화성의 성문은 당시 다른 성문의 장점만을 취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조선시대 성문 가운데 가장 발달된 것이었다. 또한 화성의 준공보고서인 〈화성성역의궤 華城城役儀軌〉에 당시 팔달문의 규모와 여기에 사용한 목재·석재·기와·전돌의
수까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고,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중요한
자료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