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확보한 송병기 업무일지에 '중앙당·BH, 宋 경쟁자 제거'
'송철호 경쟁자 움직일 카드 있다' 조국이 얘기했다는 메모 나와
청와대 '공천 개입' 사실이라면 2년형 받은 박근혜와 상황 비슷
검찰이 송철호 울산시장의 측근 송병기 울산시 부시장의 업무 일지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비서실장을 통해 2017년 10월 송 시장에게 울산시장 출마 요청을 했고, 이 직후 청와대가 송 시장의 당내 경쟁자를 정리하려 했다는 취지의 메모를 발견한 것으로 17일 알려졌다.
송 부시장은 2017년 10~11월 청와대에 당시 김기현 울산시장의 비위 의혹이 담긴 문건을 최초 제보한 인물이다. 대통령의 출마 권유 자체를 법적으로 문제 삼긴 어렵지만 권유 직후 청와대가 송 시장을 지원하고 당내 경쟁 후보들을 배제하려고 시도했다면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작지 않다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송 부시장의 2017년 10월 13일 업무 일지엔 '(대통령) 비서실장 요청'이란 제목의 메모가 적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던 임종석 전 실장이 송 부시장에게 특정한 '요청'을 했다는 것이다. 이 메모엔 대통령을 가리키는 'VIP'라는 말이 나온다. 'VIP가 직접 후보 출마 요청 부담(면목 없음)으로 실장이 요청'이라고 적혀 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송 시장 출마를 원하고 있으나 직접 요구를 하기엔 '면목'이 없어, 이 요청을 비서실장에게 대신하게 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송 시장은 문 대통령과 30년 지기(知己)로 서로 호형호제하는 사이다.
울산의 한 여권 관계자는 "송 시장은 울산 지역 시장과 국회의원 선거에서 총 8번 떨어졌다"며 "이런 송 시장에게 다시 출마를 요청하는 당시 상황을 '면목 없다'고 한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대통령의 출마 권유 자체를 문제 삼긴 어렵다. 과거에도 그런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 '출마 권유' 이후 곧바로 청와대 등 여권이 민주당 울산시장 후보가 될 수 있도록 송 시장의 뒤를 봐주고, 다른 경쟁 후보들을 주저앉히려 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중립을 지켜야 할 최고위 공무원 조직인 청와대가 선거(당내 경선)에서 특정 후보가 되게 하고, 특정 후보는 안 되게 하는 시도를 했다면 공무원의 당내 경선 관여를 금지한 공직선거법 위반 여지가 크다는 것이다. 실제로 민주당은 작년 4월 당내 후보 선출 절차를 생략하고 송 시장을 단독 공천했었다.
비슷한 시기 송 부시장의 다른 업무 일지 속 메모를 보면 청와대의 '관여' 정황이 더 짙어지는 측면이 있다. 'VIP 출마 요청'이 적혀 있는 2017년 10월 13일 메모 하단엔 송 시장의 당내 경선 경쟁자였던 A, B씨에 대한 내용이 적힌 것으로 알려졌다. 'A(○○발전), B(자리 요구)'라고 돼 있는 것이다. 청와대가 송 시장의 경쟁 후보들을 다른 자리로 보내는 식으로 '교통정리'를 하려 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생길 수 있는 대목이다.
이다음 메모는 그해 11월 초 작성된 것이다. 제목은 '송 장관(송 시장)·B씨 건'이었다고 한다. 송 시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장관급인 국민고충처리위원장을 지냈다. B씨는 송 시장의 당내 경쟁 상대였다. 메모엔 '중앙당과 BH, B 제거→송 장관 체제로 정리'라고 적혀 있다고 한다. 민주당과 청와대(BH)가 송 시장의 유력 경쟁 주자인 B씨를 '제거'하고 송 시장이 민주당 후보가 되게 할 것이라는 취지로 해석될 수 있다.
그다음 메모가 적힌 날은 11월 9일이었다. 제목은 'C 의원 발언'으로 알려졌다. 이 메모엔 당시 부산의 민주당 C 국회의원이 "B씨를 움직일 카드가 있다고 조국 수석이 얘기함"이라고 적혀 있다고 한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송 시장의 당내 경쟁자인 B씨를 움직이려 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부분이다. 실제로 B씨는 작년 울산시장 선거 공천에서 떨어진 뒤 원래 있던 민주당 지역위원장(울산 중구)으로도 복귀하지 못했다. 송 부시장의 업무 일지엔 'BH(청와대) 회의' 같은 문구와 함께 그 자리에 있었던 이모·정모 비서관 등의 이름도 적혀 있다고 한다.
송 부시장의 이런 업무 일지 속 메모는 개인 생각이 많이 포함돼 사실과 거리가 있는 내용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런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 사건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공천 개입' 사건과 유사하다는 법조계 지적이 나온다. 박 전 대통령은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친박(親朴) 인사들을 대구·경북 지역에서 당선시키려고 청와대 자체 여론조사를 하게 하고, 당시 새누리당 공천위에 친박 인사들 명단을 전달하게 했다는 혐의(선거법 위반)로 재
판에 넘어갔었다. 법원은 이를 박 전 대통령이 선거 중립을 지키지 않고 친박 인사들을 지원한 것으로 판단, 공무원의 정당 경선 관여 혐의 등으로 작년 11월 징역 2년을 선고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송 시장과 송 부시장, 임종석 전 비서실장, 조국 전 장관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청와대는 "작년 울산시장 선거와 관련한 어떤 관여도 한 바 없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