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봐라, 1년뒤 교통체증 날 것"..사진으로 본 '신격호 99년'
추인영 입력 2020.01.19. 16:49 수정 2020.01.19. 17:12
롯데그룹 창업주 고(故) 신격호 명예회장이 19일 99년의 발자취를 남기고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다. 재계 5위 롯데그룹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 곳곳엔 신격호 회장이 있었다. 하지만 외부 노출을 유난히 꺼렸던 탓에 남아 있는 기록은 많지 않다. 롯데와 함께 해온 그의 족적을 사진으로 돌아봤다.
━
“모국에서 사업 펼치겠다” 한국에 내딛은 첫 발자국
신격호에겐 꿈이 있었다. “모국에서 사업을 펼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는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를 통해 꿈을 실현할 가능성을 엿봤다. 이미 성공을 맛본 일본에서의 탄탄대로를 뒤로 하고, 투자 여건이 마련되는대로 한국으로 달려왔다. 이때 그의 나이 43세. 수행원도 없이 맨손이었다. 그렇게 김포공항에 내딛은 신격호의 첫 발걸음은 롯데가 걸어갈 여정의 출발점이 됐다. 1965년 김포공항에 입국하는 신격호.
━
일본서 성공한 ‘롯데껌’, 고국으로 들여오다
신격호가 고국에서 본격적으로 시작한 첫 사업은 식품. 청년 신격호가 일본에서 처음 맛본 미군부대의 껌이 그 시초였다. 이미 일본에서 성공을 거둔 껌 사업은 1967년 롯데제과 설립으로 국내에 착륙했다. 고국의 아이들에게 풍족한 먹을거리를 제공하고 싶다는 의지를 담았다. 롯데제과는 1975년 초콜릿 시장에 진출한 데 이어 1980년 연매출 1000억원을 돌파하며 승승가도를 달렸다.
━
‘먹을거리’에서 ‘볼거리, 살거리, 놀거리’로
신격호의 사업은 ‘먹을거리’에서 ‘볼거리, 살거리, 놀거리’로 확대됐다. 1979년 롯데쇼핑센터(현 롯데백화점 소공동 본점)를 개점한 것은 그 신호탄이었다. 세계적인 수준의 인테리어로 당시 국내 경제수준에 비해 지나치게 호화스럽다는 일각의 반대에도 신격호는 “인간은 어떤 환경에서 사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밀어붙였다. 롯데쇼핑센터에는 보란듯이 개점 당일에만 30만명이 모여들었고, 영업 첫해 454억 매출로 업계 정상 입지를 확보했다. 1991년에는 철도청과 롯데가 합작한 국내 최초 민자역사 백화점인 롯데백화점 영등포점이 문을 열었고, 2006년 롯데타운을 완성하면서 국내 최대 복합쇼핑타운으로 자리매김했다.
━
“1년 후면 교통체증 날 것” 잠실프로젝트의 시작
신격호는 이른바 ‘잠실프로젝트’로 불린 롯데월드 건설을 추진할 때도 반대에 부닥쳤다. 허허벌판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호텔과 백화점, 실내테마파크 등 대규모 사업을 추진하는 것에 임직원 대부분이 반대했다. “두고보면 안다. 1년만 지나면 교통체증이 날 정도로 상권이 발달할 것”이라던 신격호의 ‘예언’은 현실이 됐다. 호텔롯데월드(현 롯데호텔월드·1988년)와 초대형 실내 테마파크 롯데월드 어드벤처(1989년)는 그렇게 문을 열었다. 1990년 3월 국내 최초 호수공원 매직아일랜드 개관식에는 김대중 당시 평민당 총재와 나카소네 전 일본 총리 등도 참석했다.
━
30년 집념의 결실…명암 뒤섞인 롯데월드타워
신격호의 '집념'은 이른바 '제2롯데월드 사업'으로 시작된 초고층 프로젝트 롯데월드타워 추진 과정에서도 확인된다. 88년부터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수차례 백지화됐지만 결국 2011년 최종 승인을 받아내 2017년 완공됐다. 그러나 롯데월드타워 건설 허가에 대한 특혜 시비가 불거지면서 롯데그룹에 대한 검찰의 전방위 수사가 시작됐다.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정치 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文 한마디에 끝난 '조국 수호' (0) | 2020.01.23 |
---|---|
秋법무가 임명한 반부패부장 "조국 무혐의 보고서 만들어라" (0) | 2020.01.20 |
롯데 신격호 명예회장 별세..대기업 창업1세대 막내려 (0) | 2020.01.19 |
英 언론, 추미애 '명 거역' 발언 이후 "검찰 인사 조선시대 귀양과 유사" (0) | 2020.01.18 |
대통령 재임기간 (0) | 2020.0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