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 강

코로나 현장의 '왕서방'

감투봉 2020. 3. 17. 11:17

[서지문의 뉴스로 책읽기] [194] 코로나 현장의 '왕서방'

조선일보
  •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입력 2020.03.17 03:12

존 러스킨 '명예의 뿌리'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의사인 내 친구가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검사 현장에서 자원봉사한 후기의 일부이다.

'생각보다 견디기 힘든 N95 마스크와 고글은 두 시간을 넘기면 엄청난 강도의 콧잔등 압통을 시작으로 두통과 구토감 등 흡사 고산병과 같은 증상을 가져왔으나 조금이라도 밀착이 덜 되면 김 서림으로 시야 확보가 어려우므로 느슨하게 풀 수도 풀 방법도 없으니 그저 고스란히 참아내야 했다. 보호 장비가 넉넉지 못해서 잠깐 쉬고 온다는 말도 차마 할 수 없었다. 세 시간에 한 번은 교대해야 한다는 음압 병동 규칙을 수긍할 수 있었다. 그 힘든 보호구를 입은 행정 요원들은 감염에 대한 두려움이 컸을 텐데도 묵묵히 자기 자리서 자기 일을 감당해 주었다.

깊게 밀착된 마스크로 안면 근육이 마비된다는 느낌이 들 때쯤 일과가 끝났다. 폐기물 정리까지 완벽하게 마친 베테랑 요원들과 어둠이 깔린 운동장을 걸어 나올 때 며칠이나 버틸까 걱정이 되었다. 그동안 다녔던 해외 의료 봉사나 참혹한 난민촌 진료 시에도 없었던 체력 저하였다.

검사 가능 조건에 대한 지침이 오늘은 조금 엄격해져서 그냥 돌려보낸 분들이 꽤 있었지만 마구 해달라고 우기거나 항의하는 분이 아무도 안 계셨다. 근심하는 얼굴로 아쉬운 듯 창문을 닫고 가는 분들께 의사로서 이 재난이 내 탓인 양 미안하고 죄송했다. 그런데, 검사 못 하고 가면서도 수고하시라고 감사하다고 인사하시는 분들이 거의 다였다.'

우리 의료진은 숨 막히는 방호복과 허술한 도시락, 장시간 중노동에 더해 보호 장비 부족에 시달려야 한다. 어느 때보다 청결 무구한 방호 장비를 착용해야 할 의료진의 방호복도 달리고, 마스크는 거듭 재사용하기도 한다니 그들을 사지로 내모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료진의 보호 장구가 부족한 것이 아니고 '그분들이 재고를 쌓아두고 싶어 하는 심정에서 부족함을 느끼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토요일자 조선일보에는 마스크를 사용 횟수가 표시된 못에 걸어두며 여섯 번까지 쓰고, 의료용 덧신 대신 비닐봉지와 헤어캡을 씌운 의사의 발 사진이 실렸다. 그런데도 박능후 장관 말대로 '우리나라의 (코로나바이러스 대 응이) 모범 사례이자 세계적 표준'이 된다면 정부가 그 공을 독점하려 하겠지?

19세기 영국의 사상가 러스킨은 말했다. 우리가 군인과 의사를 존경하는 것은 군인의 과업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고 나라를 지키다가 죽는 것이고 의사는 전염병이 창궐할 때 사지에 남아서 환자들을 돌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리 위정자들은 우리에게 존경받을 사유가 하나라도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