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잔인한 4월, 음악이 만든 하나의 세상

감투봉 2020. 4. 27. 15:34

[강헌의 히스토리 인 팝스] [8] 잔인한 4월, 음악이 만든 하나의 세상

조선일보
  • 강헌 음악평론가

            
입력 2020.04.27 03:13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기억과 욕망을 뒤섞으며/ 잠든 뿌리를 봄비로 흔들어 깨운다.' 누구나 첫 줄은 알지만 마지막까지 읽은 사람은 거의 없는 엘리엇의 시 '황무지'. 422행에 이르는 장황한 이 시의 첫 문장 때문에 20세기 지구촌의 많은 문학 소년 소녀들은 마치 주술에 걸린 것처럼 4월을 잔인한 달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하지만 이 시가 발표되고 거의 백 년 뒤인 2020년 4월은 중국발 코로나19의 기승으로 온 세계가 참혹을 매일매일 목도하고 있는 중이다. 지구촌의 거의 모든 박물관과 미술관은 문을 닫았고 공연은 취소되었다.

/일러스트=이철원

전무후무한 이 '비대면사회'라는 국면에서 영국의 록밴드 콜드플레이의 크리스 마틴의 발상과 미국의 레이디가가의 기획력이 더해져 세계 유수의 음악 스타 백여 명이 참여한 온라인 콘서트 'one World : Together at Home'이 이 잔인한 4월에 무려 여덟 시간 넘게 세계에 생중계되었다. 35년 전 아프리카 기아 난민을 돕기 위한 라이브 에이드와 'We are the World' 프로젝트 이후 전 지구적인 규모로 음악이 현실에 어떻게 개입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감동적인 온라인 퍼포먼스였다.

나이가 80대에 접어든 롤링스톤스의 등장도 이채로웠고 안드레아 보첼리와 셀린 디옹, 그리고 레이디가가와 존 레전드의 하모니에 중국 피아니스트 랑랑의 협연도 감동적이었지만 영화화된 뮤지컬 '캣츠'에서 그리자벨라 역을 맡기도 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 가수 제니퍼 허드슨이 자신의 집에서 무표정하게 부른 'Memory'도 인상적이었다.

뮤지컬 팬이라면 이 뮤지컬의 가사가 다름 아닌 엘리엇의 시집 '지혜로운 고양이가 되기 위한 지침서'에 기반하고 있음을 알 것이다. "한밤중, 거리엔 소리조차 없고/달은 기억을 잃은 걸까?… 추억, 달빛을 받으며 홀로/난 옛날을 생각하며 웃네." 하지만 이제 곧 아침이 올 것이다. 새벽이 오면 오늘 밤도 추억이 될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4/26/202004260152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