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외교부의 뻔뻔한 거짓말
조선일보
입력 2020.08.04 03:10
노석조 정치부 기자
우방 뉴질랜드가 요즘 한국에 화가 잔뜩 났다. 외교부가 뉴질랜드 국민을 성추행한 혐의의 한국 외교관에게 '감봉 1개월' 경징계를 하고, 현지 경찰의 수사에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뉴질랜드 총리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화로 직접 따졌을 정도로 큰 외교 문제가 됐다. 지난 1일 피터스 부총리 겸 외교부 장관까지 방송에 나와, "한국 정부는 그에게 외교관 면책 특권을 포기하게 하고 뉴질랜드로 돌려보내라"고 요구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외교부는 아직 정신을 덜 차린 듯하다. 해명이 오락가락하고 대응 태도도 불성실하다는 지적이다. 외교부 김인철 대변인은 지난달 28일 정례 브리핑에서 한 기자가 질문을 하자 "분명히 해야 될 것은 외교부가 특권 면제(외교관 면책 특권), 이러한 사항을 거론하면서 특정인을 보호하고 있거나 그렇지는 전혀 않다"며 "그 부분을 분명하게 확인해 드린다"고 했다.
하지만 외교부는 얼마 전만 해도 뉴질랜드 측의 수사 협조를 거부한 이유로 외교관 면책 특권을 분명히 거론했다. 외교부 대변인실은 지난 4월 이번 문제가 뉴질랜드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다음과 같은 공식 입장문을 냈다. '(체포영장 집행 협조 거부 이유) 외교관의 특권 및 면제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였음.' 그 후에도 외교부는 언론의 질문에 이 같은 입장을 되풀이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외교관 면책 특권을 주장한 적이 없다니 무슨 말인가?
왜 이들은 새빨간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 답은 얼마 전 불쑥 전화를 걸어온 한 외교부 고위 관계자의 설명을 들으며 짐작할 수 있었다. "외교부가 ○○○씨 비호할 이유 없어요. 솔직히 이 사람 처벌받아도 우린 아무 상관없어요. 근데 이번 사건으로 외교관 특권 포기하는 첫 번째 사례가 되면 어떻게 해요? 그건 문제잖아요? 해외에 나가 있는 외교관들이 얼마나 많은데…. 선례가 남기 때문에 신중히 해야지 덜렁 (이번 건으로 외교관 특권을) 포기할 순 없어요." 외교부가 외교관 특권 포기의 선례를 만들지 않기 위해 언제 그랬냐는 듯 말을 쓱 바꿔 '특권 포기' 논란에서 벗어나려 한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이 고위 관계자에게 "아, 네"라고 대답은 했지만, 한 명의 국민으로서 외교부 담당 기자로서 실망스러웠다. 외교 결례를 무릅쓰고 문 대통령에게 문제 제 기를 할 정도로 화가 난 뉴질랜드 총리의 마음이 이해됐다. 빈 협약엔 이렇게 쓰여 있다. '(외교관) 특권과 면제의 목적은 개인의 이익을 위함이 아니라 국가를 대표하는 외교공관 직무의 효율적 수행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곱씹어 읽다 보니 빈 협약이 한국 외교부에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외교관 특권은 성추행 사건 면피할 때 쓰라고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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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8/03/202008030363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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