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균 칼럼] '문재인 심판' 외친 집회가 文 정권 구명줄 됐다
조선일보
입력 2020.08.27 03:20
방역 이완으로 수도권 확산… 교회·광화문이 대신 덤터기
김창균 논설주간
이번 수도권 코로나 확산은 정부가 씨앗을 뿌렸다. 전문가들이 시기상조라고 반대했는데도 7월 24일부터 교회 등의 소모임 금지를 해제했다. 8월 14일부터 쓸 수 있는 외식·공연 쿠폰을 뿌리겠다고 예고했으며 8월 17일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했다. 정부가 국민들에게 모임을 갖고 놀러 다니라고 등을 떠민 격이다. 글로벌 코로나 위기 속에서 한국 경제는 선방 중이라고 자랑하려는 조바심에서였다. 8월 10일 무렵부터 수도권 중심으로 확진자가 두 배씩 폭증한 것은 7월 말 정부가 앞장서서 코로나 경각심을 이완시킨 결과로 봐야 한다.
그러니 정부는 방역의 고삐를 늦춘 안이한 인식을 반성하며 종아리를 걷고 회초리를 맞아야 할 처지다. 그런데 거꾸로 목을 세우고 눈을 부릅뜨고 화를 내고 있다. 적반하장이다. 대신 덤터기를 씌울 대상을 찾았기 때문이다. 사랑제일교회의 무더기 확진과 이 교회 전광훈 목사와 교인이 참가한 광화문 집회가 희생양으로 제단에 올랐다. 대통령은 "방역을 조직적으로 방해하는 세력에게 공권력이 살아있음을 보여주라"고 했다. 법무장관은 "법정 최고형을 구형하겠다"고 화답했다.
민주당도 먹잇감을 지나칠 리가 없다. 전광훈 목사와 통합당을 하나로 묶어 때리고 있다. 통합당이 광화문 집회를 "방조했다"고 하다가 "독려했다"고 수위를 더 높였다. 근거를 물으니 "통합당 의원이 집회에 참가하지 않았느냐"고 한다. 103명의 통합당 의원 중 집회 참석자는 단 한 명이었다. 야당 의원 한 명이 광화문 집회 참가자 5만명을 움직였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사랑제일교회 교인들이 광화문 집회에 몰려가면서 수도권 확진 폭발을 가져온 것처럼 프레임을 짰다. 통계 속 진실은 그렇지 않다. 광화문 집회 관련 확진자는 26일 현재 215명이다. 15일 이후 전체 확진자 3250명의 6.6%다. 사랑제일교회 관련 929명은 교회 내 모임을 통해 감염이 이뤄졌다고 봐야 한다.
정부가 사랑제일교회와 광화문 집회만 표적으로 삼은 것도 편파적이다. 15일 민노총 2000여명도 종각에서 집회를 가졌다. 전체 교인 수가 4000명을 밑도는 사랑제일교회의 광화문 집회 참석은 그보다 훨씬 적었을 것이다. 민노총은 지난 6월 여의도에서 4000명이 모여서 집회를 가진 적도 있다. 코로나 국면에서 도심 집회가 금지된 이후 최대 규모였다. 대통령과 법무장관이 민노총에 경고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나 이런 세세한 분석과 항변이 모두 광화문 집회 책임론에 덮여 버렸다. 광장을 가득 메운 인파의 시각적 이미지에 코로나에 대한 심리적 공포가 겹쳐졌다. 조국 사태 때 광화문 집회에 박수를 보냈던 사람들도 이번 광화문 집회는 싸늘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다른 시민들의 건강과 생명을 담보로 잡은 무책임한 행태로 간주했다. 수도권 확산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광화문 집회를 강행한 것은 폭탄을 지고 불 섶에 뛰어든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랑제일교회에서 확진자가 쏟아지는 그 시점에 전 목사는 광화문 집회에 나가 연설을 했다. 그는 확진 판정을 받고도 사진기자들 앞에서 마스크를 턱에 걸치고 통화했다. 자신은 코로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담대함을 과시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제3자 눈에는 "감염병을 남에게 옮겨도 어쩔 수 없다"는 '미필적 고의'로 비쳤다.
'아스팔트 보수' 명사 몇몇도 확진 판정을 받았다. 그들의 행태가 들끓는 여론에 기름까지 부었다. 120만명이 넘는 구독자를 몰고 다닌다는 인기 유튜버는 병원 음식이 "싱겁고 밍밍하다"면서 "과일을 넣어주면 안 되나" "얼큰한 탕은 없느냐"고 투정했다. 통합당 전 의원은 "25년 동안 몸담았던 당이 나를 남 취급한다"며 야박한 인심을 탓했다. 25년 동안 몸담았던 당에 폐를 끼친 데 대해 미안한 마음은 없는지 궁금하다.
그들은 표현과 집회의 자유라는 기본권이 압살당하고 있다고 개탄한다. 광화문에서 누리는 그 자유로 얻으려 했던 게 뭔가. 문 정부의 잘못을 널리 알려 여론을 움직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목적이었다면 광화문 집회는 실패했다. 아니 정반대 효과만 낳았다. 30%대까지 추락했던 대통령 지지율은 단숨에 10%포인트 가까이 올랐다. 탄핵 이후 처음으로 뒤집어졌던 여야 지지율도 일주일 만에 제자리로 돌아갔다. 문재인 정부를 심판하자고 목청 높인 집회가 궁지에 빠졌던 문 정부의 구명줄 역할을 했다. 약자 돕는다는 정책이 약자만 더 힘들게 하는 문 정부와 묘하게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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