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액 1조원도 '어닝쇼크'?..고삐 풀린 증권사 리포트
김찬호 기자 입력 2021. 02. 28. 09:56 수정 2021. 02. 28. 10:05
[경향신문]
지난 2월 24일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나타난 코스피 지수. 연합뉴스
“전년 대비 영업이익 3000% 상승. 하지만 어닝쇼크.”
코스닥 기업 씨젠에 대한 증권사 리포트 내용이다. 씨젠은 지난해 매출액 1조1252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822.7% 증가했다. 순이익 역시 5031억원으로 1783.8% 상승했다. 모든 경영지표가 상승했지만, 리포트를 작성한 애널리스트는 ‘어닝쇼크’를 외쳤다. 증권사가 정한 기대치(컨센서스)에 미치지 못했다는 이유다. 2021년 1분기 매출액 역시 전 분기 대비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렇다면 해당 기업은 ‘매도’해야 할까. 리포트를 작성한 애널리스트의 의견은 ‘매수’다. 목표가 역시 리포트를 발간한 전일 종가의 2배에 가까운 액수를 제시했다. 하지만 리포트가 공개된 후 해당 기업의 주가는 30% 넘게 폭락 중이다. 대체 증권사 리포트는 어떻게 봐야 할까.
■증권사 리포트란 무엇인가
증권사 리포트는 애널리스트가 기업의 경영 활동 등을 분석해 발표한다. 개인투자자들은 시간 등의 제약으로 직접 알아내기 어려운 투자정보를 리포트를 통해 얻을 수 있다.
2020년 12월 말 기준 국내에서 영업 중인 증권사는 국내사 35개, 외국사 22개로 총 57개 사다. 이들 중 지난해 리포트를 낸 국내 증권사는 총 31개사다. 리포트는 인터넷 검색만으로 손쉽게 구할 수 있고, 무료이기 때문에 접근성이 높다. 올해 초 주식에 입문한 배지연씨(31) 역시 증권사 리포트를 적극 활용한다. 배씨는 “여러 리포트를 읽고 삼성전자 주식을 샀다”며 “지금은 손실을 보고 있지만 10만원까지는 무난히 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배씨가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의 평균가는 9만원이다. 하지만 지난 2월 26일 삼성전자 주식 종가는 8만2500원이었다.
배씨가 삼성전자의 적정주가를 10만원 이상으로 확신하는 근거도 증권사 리포트다. 리포트에는 애널리스트가 제공하는 목표주가, 투자의견 등이 담긴다. 배씨는 “올해 나온 삼성전자 리포트 대부분이 10만원 이상을 목표주가로 예상했다”며 “애널리스트들 생각이 같은 만큼 결국 오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직장인 투자자 김정우씨(28) 역시 증권사 리포트를 참고한다. 하지만 배씨와 달리 주로 매입한 주식이 하락한 경우 찾아보는 식이다. 김씨는 “증권사 리포트에 나온 목표주가나 투자의견을 보면 심리적으로 도움이 된다”며 “지금은 손해지만 전문가들이 주가를 밝게 전망하는 만큼 버티려고 한다”고 말했다. 배씨와 김씨는 증권사 리포트를 보며 오직 주가 ‘상승’만을 꿈꾼다. 이는 증권사 리포트의 결론이 대부분 ‘매수’라는 특징과 관련이 있다.
■투자 의견 ‘매수’의 의미
더불어민주당 이정문 의원실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증권사들은 약 8만건의 기업 리포트를 쏟아냈다. 1년에 약 2만건, 하루 평균으로 계산하면 약 54개의 리포트가 나온 셈이다. 이 8만여건의 리포트 중 애널리스트가 ‘매도’ 의견을 낸 것은 단 63건이었다. 비율로 환산하면 약 0.07%다. 반면 ‘매수’ 의견은 7만6412건으로 약 90%에 달한다. 나머지는 중립 의견이다.
‘매수’ 의견 편향 정도는 증권사별 수치로도 확인해볼 수 있다. 지난해 유안타증권 2488건, 신한금융투자 2028건, 한국투자증권 1838건, 삼성증권 1797건의 ‘매수’ 의견 리포트를 각각 냈다. 이들 4개 사는 1년 동안 단 한 번도 ‘매도’ 의견 리포트를 내지 않았다. 그렇다면 정말 애널리스트들의 분석대로 한국 주식시장은 사야 하는 기업만 넘쳐나는 것일까.
현직 애널리스트들은 ‘매수’ 의견이 압도적인 이유를 두고 “당연한 결과”라고 말한다. 시장 구조상 ‘매수’를 외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이유가 ‘기업과의 관계’다. 애널리스트 A씨는 “매도 의견을 내면 회사로부터 분석 자료를 늦게 받거나 투자 관련 미팅에서 배제될 수 있다”며 “정보를 기업으로부터 제공받는 입장에서 굳이 관계를 악화시킬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애널리스트와 기업 간의 관계에서 ‘갑’은 기업”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이유는 ‘고객과의 관계’다. 애널리스트 B씨는 “리포트를 읽는 것은 대개 해당 기업의 주주”라며 “매도 의견을 냈다가 주가가 떨어지면 주주들 원성을 애널리스트가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증권사 역시 ‘매도’ 의견은 달갑지 않다. 증권사는 기관·개인 투자자뿐만 아니라 기업도 고객으로 둔다. 기업공개(IPO), 유·무상 증자 등 기업을 상대로 한 업무가 주요 수익원이 되면서 관계 설정이 중요해졌다. B씨는 “리포트를 안 좋게 쓰면 기업을 상대하는 부서로부터 간접적인 압박이 오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시장 구조와 관계없이 애널리스트 개인의 이익 문제도 있다. 대표적으로 경제신문에서 뽑는 ‘베스트 애널리스트상’이 있다. 이른바 ‘애널리스트 폴’로도 불리는데 펀드매니저 등의 투표로 뽑는다. 전직 애널리스트 C씨는 “지금은 좀 덜하지만 불과 몇년 전만 해도 폴에 따라 애널리스트 대우가 달라졌다”며 “사실상 펀드매니저가 하는 인기투표인데 매도 의견을 쓰면 표를 받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애널리스트들 중에 이 인기투표를 좋아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결과적으로 주식시장을 구성하는 기업, 주주, 증권사, 애널리스트 모두 ‘매수’ 의견을 원하는 상황이다. A씨는 “매도 의견을 쓰느니 그냥 해당 기업 보고서를 내지 않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매수’ 편향 보고서 문제는 없을까
사실 모든 리포트가 ‘매수’ 의견이라고 해도 결과가 맞다면 비판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리포트의 정확성은 어느 정도일까. 애널리스트들은 “리포트는 맞다고도 틀렸다고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A씨는 “매번 ‘매수’를 외치다 보면 틀릴 수가 없다”며 “매수 리포트를 낸 후 주가가 급락해도 이 시점에 매수한 사람은 결국 리포트 내용이 맞을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가는 위·아래로 등락하기 때문에 일시적이라도 언젠가 한 번은 맞는다”고 설명했다.
B씨는 “리포트는 어디까지나 투자 참고용이다”며 “맞고 틀리고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의견이다. 그는 “기간별로 따져보면 실제로 과연 몇명의 애널리스트가 주가 방향을 맞출 수 있을지 의문이다”며 “리포트를 보고 주식을 사서 돈을 벌 수 있다면 모든 사람이 다 벌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리포트가 틀려도 회사로부터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도 드물다. A씨는 “리포트가 틀렸다고 회사로부터 제재를 받는 것은 없다”며 “일부 증권사는 목표주가와 현재 주가의 괴리율 정도만 제한하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매수’ 의견 일변도인 증권사 리포트 현황. 한경컨센서스 화면 갈무리.
문제는 리포트가 ‘매수’ 의견 일변도다 보니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진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애널리스트가 ‘매수’ 의견을 냈는데 그가 속한 증권사가 ‘매도’를 주도하는 경우다. B씨는 “그런 상황은 개인이나 기관이 증권사를 통해 매도하는 것으로 애널리스트가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며 “펀드매니저들이 긍정적 리포트를 기다렸다가 주가가 상승하면 싹 팔아버리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애널리스트가 특정 기업 주식을 미리 매집한 뒤 과도하게 포장한 ‘매수’ 의견 리포트를 쓸 가능성이다. 이에 대해 C씨는 “규제가 강화됐다고 하지만 지금도 가능한 것으로 안다”며 “결론이 늘 ‘매수’인데 부정한 의도가 있더라도 잡아낼 방법이 있겠느냐”고 말했다. 반면 A씨는 “대형주 주가를 리포트로 움직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중·소형주도 과거에나 그런 사례가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금감원은 증권사 리포트 관련 부정행위를 감시하고 있다. 지난 5년간 41건을 적발했다. 대부분 ‘관리 개선’을 요구하는 경미한 사안으로 처리했다. 하지만 이중에는 ‘조사분석자료 관련 매매제한 위반’ 사례가 포함돼 있다. 조사분석자료 관련 매매제한 위반이란 매수 의견을 내고 매도하는 행위를 말한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이 의원은 증권사 리포트의 관리·감독을 강화할 것을 금융감독원에 요청했다. 하지만 금감원은 현재까지도 개선안을 내지 않고 있다. 이에 이 의원은 지난 1월 14일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매수 의견 리포트를 낸 뒤 규정을 위반해 매도한 사실이 적발되면 부당 이득의 최대 10배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는 내용이다.
■공정한 리포트를 쓰려면
위법 행위에 대한 처벌은 강화되고 있지만 ‘매수’ 의견 일변도의 리포트 작성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B씨는 “매도 의견을 써야 할 유인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며 “무엇인가 인센티브가 있다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고려할 수 있는 대안 중 하나는 매수·매도 리포트의 비율이 균형을 이루는 증권사는 금감원이 ‘금융소비자보호 실태평가’에서 가점을 부여하는 것이다. 또 제재 시 부과되는 과징금·과태료 감경 요소에 리포트 비율을 반영하는 방법 등도 사용될 수 있다. 실제로 이 방안들은 이정문 의원실에서 검토되고 있다.
매수·매도 의견이 공정한 리포트가 발간되면 투자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김씨는 “지금껏 매도 의견 리포트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며 “그런 리포트가 나온다면 투자 기업을 고르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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