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한국 쫓는 중국, 견제하는 미국..K반도체 위기 아닌 기회"

감투봉 2021. 4. 15. 06:47

"한국 쫓는 중국, 견제하는 미국..K반도체 위기 아닌 기회"

박형수 입력 2021. 04. 15. 00:08 수정 2021. 04. 15. 06:36

 

전문가 5인 '반도체 샌드위치' 해법
'21세기 석유' 놓고 미·중 패권 전쟁
"중국 반도체 추격, 미국이 눌러줘
한국 4~5년간 격차 벌릴 시간 벌어"
"중국 자극 안돼, 양 시장 다 쥐어야"

반도체

‘21세기 석유’로 불리는 반도체 산업을 놓고 미국과 중국의 패권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미·중의 틈바구니에 낀 국내 반도체 업계는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국내 반도체 전문가 다섯 명에게 미·중의 경쟁 속에 국내 기업과 정부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물었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미·중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어있는 처지라는 데에 대체로 동의했다. 미·중이 반도체를 두고 팽팽히 맞서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반도체 기술과 장비, 시장 주도권 등 모든 면에서 미국이 압도적 우위에 있다. 중국은 미국의 제재로 인한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한국에 손을 내미는 상황이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한국 반도체 산업에 미국은 필수고 중국은 선택”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미국과 손잡지 않으면 반도체 산업 자체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중국은 그들의 필요 때문에 우리 반도체를 사 가는 관계”라고 설명했다.

세계 주요 국가별 반도체 생산능력 점유율 추이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미국의 우위가 명백한 상황에서 한국이 중국의 눈치를 보는 이유는 중국 시장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의 반도체 수출(물량 기준)에서 중국의 비중은 39.6%였다. 중국의 반도체 장비업체인 화웨이는 지난 5년간 한국 반도체 40조원어치를 사들였다. 국내 반도체 업계로선 중국은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시장이다. 이종호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전기정보공학부 교수)은 “한국이 중국을 자극해 시장을 잃는 선택을 해선 안 된다”며 “미국과 중국 양 시장을 동시에 손에 쥐고 국익을 끌어내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 소장은 최근 반도체 수급 불균형의 원인에 대해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앞당긴 4차 산업혁명의 이른 도래와 탄소중립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탄소의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 탄소중립 정책으로 전기 자동차 시장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그러면서 고도화된 차량용 반도체 수요가 급증했다. 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증강현실(AR)·가상현실(VR) 분야의 반도체 수요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삼성전자 오스틴 공장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은 “반도체 부족이 결국 자동차·PC·스마트폰 등 국가의 기반산업인 제조업의 근간을 흔드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위인 대만 TSMC와 2위인 삼성전자를 ‘제2의 석유수출국기구(OPEC)’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안 전무는 “반도체 패권 전쟁의 실체는 자국의 반도체 공급망 안정화”라며 “한국 역시 반도체 대란에 국내 제조업을 어떻게 보호해야 할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반도체를 둘러싼 미·중 갈등은 한국에 도리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시각이 우세했다. 진대제 스카이레이크 인베스트먼트 대표(전 정보통신부 장관)는 “한국의 반도체 산업을 따라잡으려는 중국의 발돋움을 미국이 눌러주면서 한국에 시간을 벌어주는 상황”이라고 풀이했다. 이어 “미국의 견제가 유지되는 4~5년간 한국은 숨 쉴 틈을 얻으면서 (중국과의) 격차를 벌려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상품수출 가운데 중국의 비중.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홍성철 KAIST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반도체 기술은 무한대로 발전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일정 수준에 다다르면 ‘첨단의 끝’에 이르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기술적 우위에 있는 한국 역시 시간이 흐르면 기술의 벽에 막혀 후발 주자인 중국에 따라잡힐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그 시간을 벌어준 셈”이라고 덧붙였다. 홍 교수는 또 “반도체 수요의 폭발적 증가세는 지속할 것”이라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기업들은 파운드리 사업 확장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부, 세제혜택 등 후방 지원을 … 전면 나서면 기업에 이·삼중 압박”

반도체 전문가 5인

안 전무는 “삼성전자가 미국 투자 결정을 앞당기고 공격적 투자를 감행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정부가 국내 반도체 기업을 지원하되 전면에 나서지는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자칫 기업에 이중·삼중의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정부는 세제 혜택, 공장 건설 절차 간소화, 고급 인력 양성 등을 통해 반도체 회사의 경쟁력 향상에 도움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반도체 발전법을 발의한 것처럼 한국도 차세대 반도체 발전 특별법 발의 등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 소장은 “반도체는 정치 이슈가 아닌 경제 이슈”라며 “정부는 기업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기업 활동을 돕고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최근 공급 부족을 겪는 반도체 생산망의 점검에 나선다.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확대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한다. 이 자리에선 반도체와 전기차·조선 등 주요 전략 산업의 현황과 대응 방안을 논의한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현대자동차 등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회의에 참석해 업계 의견을 전달할 예정이다. 이날 회의에선 반도체 생산 안정화와 관련한 내용을 집중적으로 다룰 전망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정부는 오래전부터 반도체 생산·공급망 안정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며 “이번 논의는 외부 환경에 흔들리지 않는 반도체 공급망을 다시 점검하는 차원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형수·최현주·김남준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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