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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심 박힌 허리로, 도쿄서 날아올랐다

감투봉 2021. 8. 3. 09:23

철심 박힌 허리로, 도쿄서 날아올랐다

최고난도 1260도 공중 비틀기
첫 올림픽서 세계를 사로잡다
신재환, 기계체조 도마 金
2012년 양학선 이어 두번째
운동에 치명적인 수술 극복

도쿄=김상윤 기자

김지원 기자

이영빈 기자

입력 2021.08.03 03:13

 

금메달을 들고 활짝 웃는 신재환. /이태경 기자

“그 얘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습니다.”

2일 도쿄올림픽 남자 기계체조 도마 결선을 끝낸 뒤 아리아케 체조 경기장 믹스트 존에서 만난 신재환(23·제천시청)은 금메달을 목에 건 채 환하게 웃고 있었다. 하지만 허리 부상 얘기를 꺼내자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는 “아파서 수술했고, 재활을 마치고 복귀했다”며 더는 언급을 꺼렸다.

신재환은 이날 2012 런던올림픽 양학선(남자 도마) 이후 9년 만에 한국 체조에 올림픽 역사상 두 번째 금메달을 안겼다. 그는 도마 결선에서 1·2차 시기 평균 14.783을 얻어 데니스 아블랴진(러시아올림픽위원회)과 동점을 이뤘다. 하지만 1·2차 시기 중 가장 높은 점수로 우승자를 가리는 규정에 따라 신재환이 0.033점 차이로 금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신재환은 높은 점수를 받았던 2차 시기에 14.833점, 아블랴진은 14.800점을 각각 얻었다.

공식 기자회견에서 신재환에게 ‘왜 아까 허리 이야기를 피했느냐’고 다시 조심스레 물었다. 그는 “아픈 기억이라 입 밖으로 내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이야기는 본인 대신 그의 아버지 신창섭(48)씨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아빠와 공중제비 - 아버지 신창섭(오른쪽)씨와 공중제비 동작을 연습하던 일곱 살 신재환의 모습. /신재환 가족

충북 청주에서 태어난 신재환은 율량초 4학년 때 기계체조를 시작했다. 체육 시간 때 장난으로 물구나무 서는 걸 눈여겨본 체육 선생님을 따라 입문했다. 특히 도마에 두각을 드러냈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를 봐왔던 이광연 제천시청 감독은 “탄력과 순발력, 센스를 타고났다”며 “어린아이 때부터 착실하고 요령을 피우지 않았다”고 했다.

신재환을 막아선 건 그의 허리였다. 고2 때 ‘전방전위증’(위 척추뼈가 아래 척추뼈보다 배 쪽으로 밀려나오는 질환) 진단을 받았다. 요추 4번이 앞으로 밀려나온 상태였다고 한다. 병원에서는 운동을 그만두지 않으면 일상생활이 어려울 거라고 했다. 한때 “차라리 원양어선을 타겠다”며 좌절했던 그는 수술을 받고 요추 4번과 5번을 잇는 철심을 박았다. 이 철심은 지금도 허리에 박혀 있다. 한동안 걷기조차 어려웠던 그는 선수 생활을 포기하려 했다.

하지만 아버지 신씨의 정성이 아들의 마음을 붙잡았다. 신씨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한약재상에서 약초를 사다 쑥뜸을 떠주고, 관절에 좋다는 싸릿대를 구해 삶아 먹였다. 자세 교정으로 이름 날리는 곳은 전부 찾았다. 독학한 재활 마사지로 아들의 허리를 매일 어루만지고 직접 부항까지 떴다.

태극기 휘날리며 - 신재환이 2일 도쿄 아리아케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남자 기계체조 도마 결선 1·2차 시기 평균 14.783점으로 금메달이 확정되자 태극기를 들고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신재환은 1차 시기에서 도마를 옆으로 짚고 세 바퀴 반을 비틀어 회전해 내리는 난도 6.0의 ‘요네쿠라 기술’을 펼쳐 14.733점을 획득했다. 생애 첫 올림픽 무대에서 금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이태경 기자

다시 뜀틀 앞에 선 그는 이를 악물고 통증을 이겨내며 연습했고, 대학 신입생이던 2017년 11월 대표팀에 발탁됐다. 고교 2년의 공백을 메워야 했던 그는 진통제를 먹으며 체육관에 밤늦게까지 남아 연습했다. 각종 기술을 완성하며 2018~2021년 도마 세계 랭킹 1위를 했다.

 

신재환은 2일 도마 결선에서 8명 중 여섯째로 나섰다. 그가 1차 시기에 시도한 기술은 도마 최고 난도(6.0) 기술 중 하나인 ‘요네쿠라’. 도마를 옆으로 짚어 날아올랐고, 몸을 동시에 앞으로 두 바퀴, 옆으로 세 바퀴 반(1260도) 돌아 착지했다. 점수는 14.733점. 오른쪽 선을 밟으며 착지했지만 고난도 기술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어진 두 번째 시도. 그는 이번엔 앞으로 두 바퀴, 옆으로 두 바퀴 반을 돌아 도마를 보고 착지했다. 1996 애틀랜타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여홍철(50) 경희대 교수가 개발한 ‘여2’(난도 5.6)였다. 공중에서 다리를 쭉 편 데다 착지도 나무랄 데 없었다. 신재환이 두 팔을 펴며 마무리하자 장내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신재환은 매트에서 내려와 미소 지으며 감독의 품에 안겼다. 1·2차 평균 14.783점. 그때까지 뛴 6명 중 1위였다. 신재환은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뛰며 기뻐했다.

신재환이 2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올림픽 기계체조 남자 도마 결선에서 ‘요네쿠라’ 기술을 펼치고 있다. 요네쿠라는 난도 6.0으로, 남자 도마에서 가장 어려운 기술 중 하나다. ① 양발로 구름판을 밟고 뜀틀을 옆으로 짚어 뛰어올라 ②무릎을 펴고 양팔을 몸에 붙여 앞으로 두 바퀴, 옆으로 세 바퀴 반(1260도)을 돌아 착지한다. 신재환은 요네쿠라 기술을 착지 실수를 제외하고 구현해내며 14.733점을 받아냈다. /이태경 기자

그의 다음 차례에 뛴 아블랴진도 신재환과 같은 평균 14.783점을 받았지만, ‘타이브레이커’ 규정에 따라 신재환이 1위를 지켰다. 도마는 1·2차 시기 점수 평균으로 순위를 정한다. 평균 점수가 같은 선수는 1·2차 시기 중 최고점끼리 비교해 더 높은 선수가 승자가 된다. 신재환은 1차 14.733점, 2차 14.833점을 받았다. 아블랴진은 각각 14.766, 14.800점이었다. 신재환의 최고점 14.833점이 아블랴진의 최고점 14.800점보다 0.033점 높았다.

신재환은 금메달이 확정된 뒤 어깨에 태극기를 두르고 다시 펄쩍 뛰었다. 신재환은 “어제 메달을 딴 (여)서정이가 기를 줬고, (양)학선이 형은 ‘널 믿고 잘하라’고 말해줬다”고 했다. ‘요네쿠라’ 성공에 대해선 “도마에 손을 짚는 순간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더 힘을 줘서 확 잡아채니까 운 좋게 착지가 됐다”고 했다.

아버지 신씨는 아들의 경기를 본 뒤 “그렇게 아프다고 했는데 운동을 시킨 게 미안하고, 고생이 너무 많았다”며 울먹였다. 한참을 흐느끼던 신씨는 “몸이 많이 아파서 그만하라고 하는 게 맞았는데, 그래도 이렇게 꿈을 이루니 고맙고 장하다”며 “얼른 함께 중국집에 가고 싶다”고 했다. 신재환이 메달을 따기 전 전화로 말했다고 한다. “아빠, 올림픽 끝나면 저한테 하루만 주세요. 그날은 제가 좋아하는 중국 음식도 먹고 하루 종일 붙어 있어요.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