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렌 애덤스 켈러(Helen Adams Keller, 1880년 6월 27일 ~ 1968년 6월 1일)는 미국의 작가, 교육자이자 사회주의 운동가이다. 그녀는 인문계 학사를 받은 최초의 시각, 청각 중복 장애인이다. 헬렌 켈러의 장애로 인해 가지고 있던 언어적 문제를 앤 설리번 선생과 자신의 노력으로 극복한 유년시절을 다룬 영화 《미라클 워커》로 인해 그녀의 이야기는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헬렌 켈러는 생후 19개월 후에 의사로부터 성홍열과 뇌막염에 걸려 위와 뇌에서의 급성 출혈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 병은 오래가지 않았지만 이로 인해 그녀는 평생 시각 장애와 청각 장애를 안고 살아가게 된다. 그 때는 가정 요리사의 6살 난 딸이자 그녀의 수화를 이해하는 아이인 마르타 워싱턴과 대화가 가능했었다. 헬렌 켈러는 7살 때부터 집안에서 60개가 넘는 수화를 사용하여 의사소통을 했다. 소련의 시청각 장애 심리학자인 A. 메스체리코프에 의하면, 마르타과의 교제와 그녀의 가르침은 헬렌이 나중에 발전하는 데에 결정적인 요소였다고 한다.
1886년, 헬렌의 어머니 케이트 켈러는 찰스 딕슨의 《American Notes》라는 시청각 장애인인 로라 브릿맨에 대한 성공적인 교육에 관해 쓰여진 글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 곧 그녀는 공문을 헬렌과 그의 아버지를 동행하게하여 눈, 귀, 코, 목에 관련한 전문가인 J. 줄리안 치솜을 찾아 조언을 얻기위해 볼티모어로 보냈다. 그는 이어서 청각 장애인들을 위한 일을 하고 있었던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과 그녀의 가족을 연결시켜주었다. 벨은 보스턴 남쪽에 위치해있고 브릿맨이 교육을 받은 학교인 《펄킨스 시각 장애 학교》에 연락해보라고 조언하였다. 그 학교의 교장 선생인 마이클 아나가노스는 시력 감퇴가 있는 20살의 학교 졸업생 앤 설리번에게 헬렌의 가정 교사가 되는 것을 물어보았다. 이 일은 곧 49년간 이어지는 인연의 시작점이 되었다. 곧 그녀는 헬렌의 가정교사가 되고 나중에는 그녀의 동반자로서 함께하게 된다.
앤 설리번은 1887년 3월에 헬렌의 집에 도착하여 곧바로 헬렌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헬렌이 단어의 스펠링을 그녀의 손에 적어주는 식으로, 그녀가 헬렌에게 선물로 가져온 'd-o-l-l'(doll, 인형)의 스펠링으로 시작하였다. 그 다음 달에는 헬렌이 의사소통 방식에서 큰 발전을 보였는데, 그녀가 헬렌의 손에 차가운 물을 틀어주고 '물(water)'이라는 단어를 손바닥에 쓰면서 연상시켜주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헬렌은 설리번과 세상의 다른 흔한 사물들을 익히는 데 시간을 쏟았다.
1888년 5월 초, 헬렌은 펄킨스 시각 장애 학교에 등록하였다. 1894년에는 헬렌 켈러와 앤 설리번이 라이트 휴머슨 청각 장애 학교와 호레스 만 청각 장애 학교를 다니기 위해 뉴욕으로 이사했다. 1896년에는 매사추세츠로 돌아가서 케임브리지 여학교를 다녔다. 그 후로 1900년, 헬렌은 레드클리프 대학교 입학을 허가받았다. 그녀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마크 트웨인은 스텐다드 오일의 그의 아내와 함께 헬렌의 교육비를 지원해준 헨리 H. 로저스에게 그녀를 소개시켜 주었다. 1904년에 24살이 된 헬렌 켈러는 레드클리프 대학을 졸업하면서 최초로 학사학위를 받은 시청각 장애인이 되었다. 그녀는 독일어를 비롯해 5개의 언어를 구사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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