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자 이휘소 核핵 물리학박사-
7 월 15 일부터 45 일간 계속되었는데 미국의 핵 과학자 10명이 거의 행사를 주도하였다 특 히 이휘소가 프리스톤 연구소에서 발표한 논문 4 개가 회의의 중심 과제가 되었다. 회의에 참석한 백 여명의 학자중 이휘소가 가장 젊었다. 당시 이휘소는 핵의 이론과 소립자의 단위와 그들의 생명의 기간 그리고 그 생명이 다른 것에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한 강연을 했고, 세계석학 전원의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 박 수가 끝나자 이휘소는 "저는 미국 국민이 아직 아닙니다 저는 한국이라는 가난하고 분단된 국가에서 태어나 미국에 유학중인 사람입니다 제가 국적을 언제인가 옮길 줄은 모릅니다만, 핵을 만들고 핵을 이용하는 것은 일부 강대국의 전유물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핵을 저개발국가의 복지에도 혜택을 주어야 합니다 핵을 전쟁무기로 생각하는 인식상태에서 벗어나게 해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휘소의 이 말에 모두 또 감격했다. 회의에 참석한 전원이 기립박수를 하였다. 기립박수를 받은 사람은 젊은 이휘소 한 사람뿐이었다 당 시 국내신문에도 이휘소가 국제물리회의 미국대표로 참석한 기사가 일제히 나왔었다.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보는 박사학위 시험결과도 전체 평균 93점이었고, 더구나 물리과 지망생 중 미국 전대학 역사에도 없는 점수라고 말한다. 프레이즈 박사가 찾아와 대담을 요청할 정도였다. 이래 가장 뛰어난 있는 비결이라도 사람이라고 초빙을 이 휘소박사... 박 대통령이 보낸 편지 이휘소박사님, 안녕하십니까? 내놓을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이미 미군철수가 시작되었습니다. 미사일부대는 이미 철수를 끝낸단계이고, 전제의 신호이기도 합니다. 이제 얼마후면 한국에 남아있는 핵도 철수할 것입니다. 이것은 시간문제입니다. 본인도 미국정부측에 몇 번 자제를 호소하고, 부탁도 하여 보았지만, 더 이상 구걸하는 것도 추한 꼴이 되었습니다. 어떠한 일이라도 할 각오입니다. 들어줄 단계도 이미 지났습니다. 손상을 보는 추한 모습을 또 보이고 싶지는 않습니다. 핵무기개발을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이박사님을 초대하거나 모시지 못한 것은 박사님을 초대한다는 것은, 못이기어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그러나 조국은 위태로와 졌고 사정은 급박하여 졌습니다. 이미 카터와의 싸움은 시작이 되었고, 여기서 비굴하지 않고도 우리는 승리해야 할 입장이 되었습니다. 수 없도록 해야겠습니다. 다시는 6.25의 쓰라린 경험 같은 것을 맛보지 않게, 우리 백성들이 전쟁으로 살상되는 비극이 다시는 없도록 이박사께서 도와주셔야겠습니다. 이휘소박사님, 조국을 건져 주십시오. 74년엔가 박사님을 처음 뵈었을 때, 저는 "이박사를 보호하기 위하여는 60만 대군이라도 동원하겠다"라고 했습니다. 이박사의 마음에 달리어 있습니다. 서둘렸고, 또 시험도 해 보았지만, 하나같이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이박사님의 힘이 필요할 때입니다. 눈뜨고 보고만 계시지만은 아니할 것입니다. 이렇게 박사님께 애원합니다. 때문이었다. 또 앞으로도 그러고 싶다. 그러나 조국이 공산화되거나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처할 위험에 처하고 있다고 가정하자, 문턱에 있다고 판단되었을때, 내가 조국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미 국은 월남에서 손을 떼었고 또 한국에서도 손을 떼고 있다. 명백한 사실은 조국이 위험한 처지에 있다는 사실이다. 미군철수...조국의 공산화...이런 것을 보면서 핵을 자원의 개발에만 목적을 두었던 나의 신념이 흔들린다면... 그것은 잘못된 판단일까? 조국을 지키기 위하여, 조국에게 내가 할 수 있는 핵개발의 원리를 제공한다면... 그것이 조국을 지키게 하는 힘이 된다면... 비록 박대통령이 유신을 철폐하지 않을 경우라도, 나를 낳고 나를 길러준 조국의 현실을 내가 배반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나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있다는 명으로, 나를 이 자리에 서게 한 것일까? 조국은 나에게 너는 너의 능력을 이때에 쓰지 않으면 너는 평생을 후회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인가? 살신성인...견위치명... 멸사봉공...진인사대천 명... 나의 운명... 어머니...아내, 아이들, 그리고 형제들...하늘이여...무엇이 참다운 삶이고, 내가 지금 어떤 행동을 하여야 하는가를 안내하여 주소서 이 책을 읽으면서 박대통령과 이휘소박사의 고뇌를 읽을 수 있었다 박 대통령의 두번째 편지 이휘소박사님, 안녕하십니까? 지난 번 편지를 받으셨을 것 입니다. 완전철수에 이어, 하지는 못합니다. 않겠습니다.
더듬어 보았다. 참가등이 있었다. 강작용의 영향"이란 방대한 논문도 며칠내로 마쳐야 한다. 관계를 명쾌하게 논리적으로 전개한 논문이다. 하버드대학에서의 특강을 끝내었다. 그리고 그는 조용한 마음으로 5월의 동경대학에서 있을 학술회의를 기다렸다 1977 년 5월 15일, 이휘소는 시카고 변두리에서 외과의 개업을 하고 있는 김박사를 찾아갔다.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었다. 미치는 거리다. 할 일이 아니며, 74년에 귀국했다가 박대통령의 부탁으로 당시 미국내에 있는 과학자들에게 정밀하고 치밀한 계산서였다. "이것을 다리의 뼈 속에 넣어 주십시오." " 건강에나 몸에는 지장이 없겠지요 " "얼마 동안은 지장이 없겠습니다만... 같지가 않았다. 생각되었다. 교포사이에는 긍지와 금지시킨 가운데,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이휘소는 집으로 돌아왔다. 이휘소가 발표한 "히고스 입자에 미치는 강작용의 영향"은 물리학계에 논문리라고 극찬했고, 세계의 핵과학자들은 다투어 이휘소의 논문을 구하려고 하였다. 1977년 5 월 19일 동경에 도착한
이휘소... 전문을 쳤다 나리다공항 KAL 안내소에는 헬기는 청와대정원에 내려 앉았다. 박대통령이 밖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 고맙소, 이박사" 박대통령은 이휘소의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이었다. 바로 지하실로 내려간 이휘소는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사 두 사람의 집도로 수술이 시작되었다. 박대통령은 이휘소의 다리 속에서 빼어낸 곁에는 피가 번진 문서를 받고... 밀봉된 문서를 얼굴에 갖다대고, 듯이 강의를 했다 그는 미국과학계에서 가장 능력있고, 존경받는 인물로 공인되어 있었다. 초청강의가 있었다. 가족과 함께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아내와 아들, 딸을 뒤에 앉히고 천천히 차를 몰았다. 페르미연구소에는 이휘소에 딸린 전문기사가 있지만 휀만한 일에는 이휘소가 직접 차를 몰았다. 차 정면으로 돌진하였다. 운전대에는 어떤 흑인이 타고 있었고, 이휘소는 천천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넘어 오더라도 여유가 있었다. 이휘소의 차를 향하여 돌진하였다. 차 의 앞머리가 부서지고이휘소는 쓰러지고... 마르안느, 천이 안이는 삽시간에 일어난 사건에 정신을 잃었다. 마리안느는 직갑적으로 아~소리를 지르며, 상대방 흑인의 운전솜씨가 의도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이휘소의 차를 받은 차는 쏜살같이 도망쳐 버리었다. 차가 정지하고, 경찰이 오고...이휘소를 차에서 끌어내고... 페르미연구소에 비상벨이 을리었다. 이휘소의 차에 설치된 긴급벨이었다 페르미연구소장에게 긴급전화가 걸려왔다. "이휘소 교통사고로 사망...상대는 50대 후반의 흑인...도주했음" 미국무장관실에도 비상벨이 울리었다 이휘소 사망..." FBI, CIA 요원이 삽시간에 주위 400km의 도로를 감쌌다. 그러나 어찌된 것인지 범인에 대한 소식은 전연 발표하지도 않았다. 아니 어떻게 부딪쳤으며, 어디가 어떻게 손상되어 죽었는지 조차 발표하여 주지 않았다 이휘소 사망..." UPI, AP, 로이터 통신으로 세계 언론계와 각국 대사관으로 속속 전달되었다. 밤 11시 30분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에 있는 긴급 벨이 울리었다. 만났을 때 메모지를 넘겨 주던 이휘소 각하..." "죽은게 아냐 죽였지" "누가 죽였습니까?" " 미국이 그랬지, 그 새끼들 청와대를 24시간 도청하지를 않나?" "이휘소는 미국 CIA에서만 24시간 감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소련에서도 인공위성으로 이휘소를 24시간 감시한다고 들었습니다. 쌍놈의 새끼들... 그리고 내일 아침 내가 직접 미국에 항의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겠네 이 튼날 박대통령은 직접 나타나 미국 대사를 불러 항의하고 내외기자를 불러 성명서까지 발표했다. "미국은 한국의 청와대를 24시간 도청하며, 마치 한국을 식민지시하고 있다. 주권국가로 한국을 대접하는 것도 아니고, 국방까지도 협상하지 않겠다" 국방까지도 협상하지 않겠다는 박대통령의 발언은 비상한 충격을 주었다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이미 미사일부대 완전 철수, 지상군 2만여명 철수... 청와대국무회의에서 공공연히 말하곤 했다.
이휘소의 장례식이 끝나고, 보국훈장을 수여했다. 너무 아까운 분이었는데..." 라고 말하며,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급전환했다. 핵협정 파기 등을 바로 중지하라"라고 노골적으로 요구했다.
도청하며,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주한미군을 데려가는 사람과 대화하고 싶지 않다. 카터는 근본적으로 도덕성이 결여된 사람으로서 도덕정치를 하는 사람이다" 라고 응수했다 이러한 발언은, 인사를 즉각 석방하라, 미수출입은행 차관약정을 파기하겠다"라고 응수했다 핵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했다 박대통령이 하도 야단이니까, 내려가 있겠어"라고 말했다 한국국방과학연구소에서 합동으로 제작하는 유도탄개발과 핵개발 상황을 알아보기 위하여,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직접 전화로 확인하고, 일주일에 한두 번은 예고없이 들리어 연구원들과 종사자들을 격려했다. 이휘소의 영상을 더듬었다. 대통령 자신의 모습... 이휘소가 차에 깔려 죽는 영상... 이휘소가 내어 준 메모지대로는 다 실험을 거쳐야 할 책임을 느끼었다. 유도탄개발과 핵무기개발은 외국의 지원없이 독자적인 기술과 자원에 의해서 진행되고 있었지만, 협조에 의하여 해결되곤 하였다. 다름 없었다. 막막한 며칠이 지나면서, 다시 이휘소의 메모를 펼쳐
보았다. 이 휘소는 천만 분의 일도 실수할 수 없도록 치밀하고 정확한 계산법과 준비하여 놓고 있었다. 한국핵연료개발공단과 공동제작한 중장거리 유도탄발사 실험이 있었다 과거에 몇 번씩 실패한 경험이 있는 박대통령의 심정이나 과기처장관 관심의 촛점이었던 장거리유도탄발사실험도 성공이었다. 사정거리 150km, 유효사거리 350km로 북한 전역은 물론, 소련과 중공의 일부지역까지 영향권이 미치는 것이었다. 이 성능은 미국이 개발한 최신 장거리유도탄 나이키미사일보다 성능이 우수한 것이기도 하다. 이것을 외국의 도움없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것이다. 이로써 한국은 세계에서 일곱 번째의 유도탄 보유국이 된 것이다.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성능이 좋은 장거리유도탄을 순수한 우리의 기술로 개발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마지막 장거리유도탄발사 실험마저 성공하자 너무 너무 감격한 나머지 눈물을 흘렸다. 너무 감격하고 있는 박대통령을 바라보던 과기처장관, 국방장관, 관계 과학자들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박대통령은 임원들의 노고를 일일히 치하하고 차에 올라 손수건을 꺼내눈물을 닦았다.
눈동자의 영상과
다 음날 미국을 제외한 소련중국,
일본, 프랑스, 영국,
서독은 물론 홍콩, 상가포르등 전세계 신문의 일면 톱기사는
하나같이 휩싸인 것이다. 다만 미국만이 침묵했다. 침묵한 것이 아니다. 미국정부의 훈령을 받은 미국대사'스나이더'는 과기처장관을 자주 방문했고, 박대통령에게 강력한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은 아예 미국대사와의 면담마저 거절했다 분위기는 냉냉함을 넘어 험악해 지기 시작했다. 박대통령은 집무실에 앉아 몇 번이고 독백을 다짐했다. "이제, 이휘소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하여도 중단할 수 없다. 지금 의존의 시대를 벗어나지 못하면,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이휘소도 남에게 의존만 하면 눈치만 보는 조국을 볼 수 없어 죽을으로써, 자립의 기틀을 우리에게 남긴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휘소를 생각할 때마다 새로운 용기와결의를 다짐했다 박대통령은 이휘소의 영상을 한 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 카-터는 한국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상황에 강렬한 쐐기를 박기 위하여 일본에서 있었던 선진7개국 정상회담에 참석하고 온 것이다. 집어치우고, 날아가 버렸다. 않게 팬티바람으로 박대통령은 이러한 카-터의 요구를 즉각 거절,
일축해 버리었다. 극비의 긴박한 지시를 내리는 분위기다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주한미국철수도 일시 중단되었다표적인 이유는 북한의 전쟁도발억제, 한국의 독자적 핵개발추진을 포기하는데 목적이 있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청와대 별실 집념은 무서웠다. 않았나 싶다"라고 핵개발공단은 에너지 연구소로, 과학원과 과학기술연구소는 과학기술연구원으로 통합되었다 새로 부임한 전두환대통령은 미국 대통령에 새로 당선된 레이건을 찾아가, 한국핵무기 개발중단을 약속하고, 댓가로 주한미군의 계속적 주둔을 약속 받고 돌아왔다. 그리고 핵무기를 만들기 위하여 준비한 모든 것은 폐기처분 하기로 했다. 그로부터 이휘소의 이름도 역사의 무덤 속에 파묻혀 버리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옮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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