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대통령 본인 연관 ②직책·지위·자격 없는 비선 ③국정 전방위 농단
[서울신문]대통령 취임전부터 40년 실세
韓 정치사서 전무후무한 ‘비선’
인사 개입에 정책까지 주물러
“일시적 카드 땐 식물대통령
2선 후퇴론 불신 못 씻을 것”
지난 12일 서울 광화문 촛불집회는 주최 측 추산 100만명이 운집했다. 2000년대 들어 가장 큰 규모의 집회로 꼽힌다. 이에 대해 일반 국민과 전문가들은 과거 정권의 권력형 비리와 비교해 이번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충격와 실망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어떤 형태로든 대통령 본인이 연관돼 있다는 점, 대통령의 친인척이 아니라 직책·지위가 따로 없는 지인이 비리를 주도했다는 점, 특정 현안이 아니라 국정 전반을 농단했다는 점 등 세 가지가 충격의 크기를 키웠다고 분석했다.
김문조 고려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14일 “이전 대통령들의 측근 비리는 모두 친인척에 의해 저질러졌지만 이번에는 혈연이 아니라 제3자라는 점이 다르다”면서 “아무런 직위나 직책, 식견, 정치의식을 갖추지 않은 사람이 국정 전반을 휘둘렀다는 점을 국민들이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예외적 인물이 비선 실세로 지목되자 국민들이 국가 운영 전반에 대한 불안감과 분노를 느끼게 됐다”고 덧붙였다.
1987년 민주 항쟁의 결과로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된 후 노태우 정부에서는 부인 김옥숙 여사의 고종사촌인 박철언씨가 ‘6공 황태자’로 불리며 비선 실세 역할을 했다. 김영삼 정부에선 아들인 현철씨가 ‘소통령’으로 불렸고 김대중 정부에서는 아들인 홍일·홍업·홍걸 삼 형제가 모두 비리에 휘말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씨는 ‘봉하대군’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의원은 ‘영일대군’으로 불렸다.
혈연이라고 부정을 저지른 죄가 덜한 것은 아니지만 친인척도 아닌 ‘오랜 지인’이 가족보다 더 위세를 부린 점이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연설문, 인사, 정책 등 국정 개입은 물론 재계, 문화계, 체육계, 의료계 등에서 각종 비리 의혹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더 큰 충격은 대통령 본인의 연루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검찰 수사로 가려지겠으나, 과거 친인척의 비리는 대통령 자신은 몰랐던 것으로 귀결된 반면이번 사건의 경우 의혹이 제기된 초기부터 박근혜 대통령 연루 의혹이 제기돼 왔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그간 측근 비리는 측근을 도려내 1차적으로 문제를 해결했지만 이번에는 대통령 자신이 원인으로 지목돼 있기 때문에 참모를 교체하거나 다른 방법을 마련해도 식물 대통령이 될 게 뻔하다”고 말했다. 그는 “최씨의 경우 정치적, 정책적인 결정뿐 아니라 대통령의 사적인 부분까지 모든 것에 영향력을 행사한 셈”이라며 “대통령 취임 전부터 40년 가까이 실세로 활약한 경우는 정치사에서 전무후무하다”고 말했다.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통령이 잘못할 수도 있지만 이번 경우는 대통령이 국정이라는 공적인 영역에 사적 인연을 개입시켰다는 점에서 더 큰 실망과 분노를 야기한 것”이라며 “특히 정부청사가 집중돼 있는 세종시에서 공무원과 그 가족들이 3000명이나 모여 대통령 퇴진을 촉구한 것은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역대 정권 비리와 또 다른 차이점은 비리 의혹이 전방위적이라는 점이다. 최씨 본인의 국정 개입은 물론 딸 정유라씨의 입학·학사 과정 특혜 의혹, 차은택씨와 김종덕 전 문화부 장관·김종 문화부 차관·손성각 전 콘텐츠진흥원장 등이 주도한 문화계 비리 의혹,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과 관련해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수석이 주도한 모금 과정의 의혹 등 여러 갈래의 의혹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온 상황이다.
촛불집회에 참여한 이모(42)씨는 “통상 비리는 몰래 조금씩 해먹기 마련인데 요직에 최씨 측근을 앉히고, 재벌을 압박하고, 정책으로 세금을 몰아주고, 이제는 끝이 어딘지도 모르겠다”며 “능력도 없는 자들이 무식하게 국정을 흔들었다”고 분개했다.
전문가들은 유례없는 사태를 맞아 정치권이 아닌 국민이 정국을 주도하는 상황인 만큼 여야 간 합의를 통한 미봉책은 정국 타개에 큰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고 내다봤다. 임도빈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대통령의 2선 후퇴로는 국민들의 불신과 우려를 씻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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