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사회

‘최순실 모른다’ 거짓말 들통난 기춘대원군

감투봉 2016. 11. 19. 11:56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최순실 게이트의 공범으로 떠오르고 있다. 최순실과의 관계를 모른다고 부인했지만 거짓말로 드러나면서 최씨의 비선 국정농단 행위를 사전에 인지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매일경제 보도에 따르면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은 검찰 조사에서 최씨를 어떻게 알게 됐는지 추궁하는 검찰 조사에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통해 최순실씨를 알게 됐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르-K스포츠 재단의 운영과 인사에 관여한 김 전 차관이 최초 최순실씨를 알게 된 경위를 김기춘 전 실장을 통해서라고 털어놓은 것은 김 전 비서실장이 '비선실세' 최씨의 힘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김 전 실장은 최씨와의 관계를 전면 부인했다. 지난 2일 김 전 실장은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비서실장 당시 최씨 관련 보고를 받은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보고 받은 일이 없고, 최씨를 알지 못한다. 만난 일도 통화한 일도 없다"고 말했다. 김 전 실장은 '비서실장 이전에도 최씨를 알지 못했나'라는 질문에도 "모른다"고 답했다.


김종 전 차관과 김 전 실장 둘 중 한명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김 전 차관이 자신의 죄를 덜기 위해 거짓 진술을 할 가능성도 있지만 김기춘 전 실장의 이름을 거론했다는 것은 대면 조사시 자신의 진술이 사실임을 입증할 자신감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김기춘 전 실장이 왜 최순실을 김종 전 차관에서 소개시켜줬는지, 최씨를 어떤 사람이라고 설명했는지, 최씨를 소개한 시점이 언제였는지 등 추가 진술이 나오면 김 전 실장도 이번 최순실 게이트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김 전 실장은 또한 최씨 일가가 다녔고, 대통령 대리 처방까지 했던 차움병원에서 줄기세포 치료를 받았고, 비타민 주사제도 투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최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지난 2014년 10월 문체부 1급 공무원 6명이 일괄 사표를 낸 배경에도 김 전 실장의 지시가 있었다고 폭로한 바 있다. 유 전 장관은 "내가 장관직을 그만둔 뒤 차은택 씨가 문체부에서 전권을 휘두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직원들 말로는 거의 모든 업무에 관여했다더라. 정·차관이 결재하다 모르면 차은택 씨에게 전화해 물어본다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말했다.


김 전 실장이 지시로 미르-k스포츠 재단의 설립에 걸림돌이 된 문체부 직원들이 날아가고 차은택의 활동변경을 넓혀줬다는 게 유 전 장관의 주장이었다. 유 전 장관의 증언은 이번 게이트가 김기춘 전 비서실장까지 연결돼 있음을 주장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전 실장이 게이트가 터진 후 국정 수습을 위한 콘트롤 타워를 맡아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김 전 실장이 비서실장 재임 시절부터 정권을 지키기 위해 '꼼수' 작업의 설계자였다는 증거도 나오면서다. 공개된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 비망록에 따르면 김 전 실장은 정부를 비판한 언론에 불이익 가도록 조치 지시하고 문고리와 정윤회의 비선실세 의혹을 제기한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고발토록 지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 전 실장은 지난 2013년 8월 2대 비서실장으로 취임해 '기춘대원군'(흥선대원군에 빚대 대통령 뒤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뜻)이라 불리며 박근혜 정부 실세로 군림해왔다. 현재도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은 그와 박근혜 대통령과의 특별한 관계 때문이다.


정수장학회 1기 장학생으로 선발돼 서울법대를 졸업한 김 전 실장은 박정희 대통령 아래에서 비서관을 지냈고 법무부 장관을 역임한 인물이다. 육영수 여사가 저격을 당했을 때 문제광을 취조한 검사로도 유명하다. 김 전 실장은 유신헌법 초안 작성에도 관여했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심복이었던 모습을 박근혜 대통령이 어렸을 때부터 봐왔던 것이다.


비서실장 시절엔 청와대 내부 기강을 잡고 실세로 군림했다. 지난해 1월 시무식 때 청와대 비서진을 향해서 "군기가 문란한 군대는 적과 싸워 이길 수 없고 기강이 문란한 정부조직은 효율적으로 일할 수 없다....(중략)...배수의 진을 치고 파부침주(破釜沈舟, 밥 짓는 솥을 깨고 돌아갈 때 타고 갈 배를 가라앉힌다는 뜻)의 마음으로 앞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한 것도 회자된다.


특히 세월호 참사 7시간 대통령 행적과 관련해 김 전 실장은 구체적인 행적을 보고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김 전 실장은 참사 당시 대통령의 위치를 모른다면서도 이에 대한 설명으로 "대통령이 어디에 계신지 모른다는 건 경내에 계셔도 경호상 그 위치를 말씀드릴 수 없다는 뜻"이라고 밝힌 바 있다.

 

 

▲ ⓒ 연합뉴스




김 전 실장은 여론 조작에 능한 인물이기도 하다. 지난 1992년 초원복 사건이 대표적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 정주영 회장 등이 대통령 후보로 나설 때 김 전 실장은 부산에서 부산시장, 경찰 국장 등을 만나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을 했고 이를 정주영 후보 쪽에서 도청해 공개한 사건이 벌어졌다. 지역 감정을 조장해 선거에 유리하도록 하자는 김 전 실장 발언은 비난을 받아야 할 내용이었지만 오히려 PK 여론을 집결하게 만들고, 사건이 도청 논란으로 번지면서 김영삼 후보에 유리한 쪽으로 진행됐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당선이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김 전 실장이 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도 큰 그림을 그려놓고 작업을 벌이고 있다는 의혹도 과거 전력과 무관치 않다. 김 전 실장은 비서실장 퇴임 이후에도 박근혜 대통령 멘토 집단인 7인회의 한 사람으로 국정에 영향을 끼쳐왔다는 얘기가 돌았다.


김 전 실장이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정황이 포착되면서 검찰 조사에서 어떤 진술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31일 최순실씨와 안종범 전 수석, 김종 전 차관을 포함해 김기춘 전 실장까지도 공무상 비밀누설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