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사회

기업이 재단에 입금하면 대통령은 '담화'로 응답

감투봉 2016. 11. 25. 07:23

기업이 재단에 입금하면 대통령은 '담화'로 응답

힘 받는 '대기업 공범론'

검찰이 석연찮은 배경을 의심해 최근 압수수색을 펼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안은 지난해 7월 17일 양측 회사의 임시주주총회를 통과했다. 그로부터 1주일 뒤인 7월 24일부터 25일까지 박근혜 대통령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대기업 총수 7명을 차례로 만났다. 박 대통령이 직접 이름을 지은 미르재단에 기금 출연을 요구했던 것으로 조사된 당시 독대에는 이 부회장 외에도 SK 롯데 등의 총수들이 있었다.

삼성은 9월부터 최순실(60·구속 기소)씨 딸 정유라(20)씨의 승마활동 지원을 위해 설립된 독일 비덱스포츠에 280만 유로(35억원)를 직접 송금했다. 10월 26일에는 미르재단에 125억원을 출연했다. 다음날인 10월 27일 박 대통령은 시정연설을 통해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국제의료사업지원법, 관광진흥법 등 경제 활성화 법안들이 수년째 계류돼 있어 가슴이 타들어가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미르재단은 “창조문화와 창조경제에 기여할 발판 마련을 목적으로 한다”며 법인등기를 마쳤다.

삼성은 지난 1월 12일 K스포츠재단에도 79억원을 출연했다. 3주 전인 지난해 12월 21일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 최치훈 삼성물산 사장은 인천 송도에서 열린 삼성바이오로직스 제3공장 기공식에 함께했었다. 삼성의 재단 출연 다음날 박 대통령은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노동개혁 4법, 경제 활성화 법안들의 임시국회 처리를 재차 요구했다. 미르재단과 같은 사업 목적으로 K스포츠재단이 출범한 날이었다.

대기업들은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진 이후 피해자를 자처했다. “으레 뜯기던 준조세로 알고 출연금을 냈다”는 증언들도 검찰 안팎에서 서슴지 않고 나왔다. 현재까지 드러난 최씨와 안종범(57·구속 기소)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47·구속 기소)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 등의 공소장에서도 대기업들은 일단 세무조사와 인허가 불이익을 두려워한 피해자로 묘사돼 있다.

하지만 검찰은 대기업들이 실상 국정농단 사태의 변두리에서 이익을 거둔 것으로 보고 뇌물죄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 대기업들이 최씨의 재단에 거액을 출연한 다음날에는 꼭 박 대통령이 경제 활성화 법안 통과를 역설한 것도 우연으로 치부하기에는 의심스러운 정황에 해당된다. 재계는 일명 기업활력제고법(원샷법)과 외국인투자촉진법(외촉법) 처리를 환영하는 입장이었다.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대기업마다 총수의 사면복권, 사정기관의 조사 무마 등 각자의 민원 사항이 있었다.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는 의혹은 검찰의 수사 착수로 입증되고 있다.

이미 대통령의 범죄사실을 규정한 검찰이 관세청의 서울·부산·강원지역 시내면세점 추가 설치 과정에 비선농단 연관성이 있는지 살피는 이유도 대기업들의 뒷거래 정황이 어느 정도 포착됐기 때문이다. 24일 기획재정부, 관세청 등에서 대대적으로 이뤄진 압수수색 역시 결국은 대기업들의 기금 출연 대가성을 입증하려는 과정이다. 최씨 등의 공소사실을 확인한 뒤 ‘클리어’를 예상했던 롯데그룹 등 대기업들은 속속 재개되는 강제 수사에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검찰은 “추가 범행은 앞으로 계속 수사하겠다고 했었다”고 한다. 한 검찰 간부는 “모든 국민이 지켜보고 있는데 좌고우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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