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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멋진 글

감투봉 2017. 1. 14. 10:05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멋진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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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멋진 글
허허실실(虛虛實實)
건물(建物)은 높아졌지만
인격(人格)은 더 작아졌고,
고속도로(高速道路)는 넓어졌지만
시야(視野)는 더 좁아졌다.

소비(消費)는 많아졌지만
기쁨은 더 줄어들었고,
집은 커졌지만
가족(家族)은 더 적어졌다.

생활(生活)은 편리(便利)해졌지만
시간(時間)은 더 부족(不足)하고,
가진 것은 몇 배가 되었지만
소중(所重)한 가치(價値)는 더 줄어들었다.

학력(學力)은 높아졌지만
상식(常識)은 더 부족(不足)하고,
지식(知識)은 많아졌지만
판단력(判斷力)은 더 모자란다.

전문가(專門家)들은 늘어났지만
문제(問題)는 더 많아졌고,
약(藥)은 많아졌지만
건강(健康)은 더 나빠졌다.

돈을 버는 법(法)은 배웠지만
나누는 법(法)은 잊어 버렸고,
평균수명(平均壽命)은 늘어났지만
시간(時間) 속에 삶의 의미(意味)를 넣는
법(法)은 상실(喪失)했다.

달에 갔다 왔지만
길을 건너가 이웃을 만나기는 더 힘들어졌고,
우주(宇宙)를 향해 나아가지만
우리 안의 세계(世界)는 잃어버렸다.

공기(空氣) 정화기(淨化器)는 갖고 있지만
영혼(靈魂)은 더 오염(汚染)되었고,
원자(原子)는 쪼갤 수 있지만
편견(偏見)을 부수지는 못한다.

자유(自由)는 더 늘었지만
열정(熱情)은 더 줄어들었고,
세계평화(世界平和)를 많이 이야기하지만
마음의 평화(平和)는 더 줄어들었다.

글 반기문 UN사무총장
글 보내주신 분 : 이주형

사자성어[四字成語] 허허실실(虛虛實實)의 유래 : 삼국지(三國志)

허[虛 빌 허] 허[虛 빌 허] 실[實 열매 실] [실實 열매 실]

허와 실이 일정하지 않음. 빈곳처럼 보이는곳이 차있고, 차있는 듯이 보이는곳이 비었다. 짐작하기가 어렵다.

허허실실(虛虛實實)-병(兵)은 궤도(詭道)라고 했다. 따라서 병은 속이는 것을 꺼려하지 않는다.

있는 것을 없는 것으로,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가장하는 것은 적을 이기기 위한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상대를 현혹시킴으로써 얻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승리(勝利)란 과실 일 것이다.

제갈량(諸葛亮)은 적벽대전이 시작될 때 각 장수들에게 각자가 해야할 임무를 맡기면서 관우(關羽)에게는 아무런 임무도

주지 않았다.

나중에 관우(關羽)에게는 조조(曹操)를 화용도(華容度)에서 잡으라고 방법을 알려준다

화용도(華容度)에서 연기를 피워 조조(曹操)를 유도하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연기를 피우면 당연히 적들이 볼 것이고 그러면 도망 칠 텐데 어떻게 잡을 것이냐고 물었다

"병법에 허와 실이 일정하지 않다는 말이 있습니다.

조조(曹操)는 용병에 뛰어난 자라 우리가 불을 피우면 오르는 연기를 보고 우리측의 허세라고 생각하고 반듯이 이 길로 올 것입니다.

장군은 절대로 온정을 베풀지 말 것이며 조조(曹操)를 살려보내면 군법에 의거 처리한다는 군령장도 만드세요"라고 알려준다

조조(曹操)는 주유(周瑜)의 공격을 받아 오림서쪽으로 도망하다 또 조자룡(趙子龍)에게 당하고

강릉으로 도주하는 도중 호로구에서 장비(張飛)한테 당하고, 화용도(華容度)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 적들의 허장성세라 생각하고

그 쪽으로 발을 옮겨 관우(關羽)에게 큰 곤욕을 치룬다. 여기서 유래된 말이 허허실실(虛虛實實) 입니다.

 

방한 중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26일 한국 외교부의 기자회견장에서 도착했다.

 

반기문(潘基文, 1944년 6월 13일 ~ ) 국제연합 사무총장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이며, 본관은 거제(巨濟)이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제33대 대한민국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냈다.

2006년 10월 제8대 국제 연합 사무총장에 당선되어, 2007년부터 현재 재임 중이다.

2011년, 192개국의 만장일치로, 2012년 1월 1일부터 5년간 연임하게 되었다.

생애 일제 강점기인 1944년 6월 13일에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상당리에서 태어났다. 충주중학교와 충주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였고,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였다.

고등학교 때 에세이 경시대회에서 수상함으로써 '외국학생의 미국 방문 프로그램(VISTA)'에 선발되어,

미국에 가서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만난 일로 인해 외교관의 꿈을 품게 되었다고 한다.

1970년 2월 대학 졸업 후 곧 바로 외무고시에 합격하고 3월에 정부 부처인 외무부(현 외교부)에서 일하게 되었다.

영어에 능통하며, 프랑스어, 독일어, 일본어도 구사할 수 있다. 그는 아들 하나와 딸 둘을 자녀로 두고 있다.

외교관 경력 1970년 외무부 여권과, 1972년 주 인도대사관 부영사, 1974년 주 인도대사관 2등 서기관 등을 지냈고,

주로 국제 조직을 거쳐 1980년 외무부 국제조직조약국 과장이 되었다.외무부 지원으로 하버드 케네디 행정대학원으로 유학하였으며,

1985년 4월에 졸업하여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1985년 4월 총리 의전비서관, 1987년 7월 주미대사관 총영사, 1990년 6월 외무부 미주국장,

1992년 2월 외무부장관 특별보좌관, 1992년 9월 주미 공사, 1995년 2월 외무부 외교정책실장과 차관보를 역임했다.

1996년 11월에는 김영삼 정부에서 외교안보수석을 지냈다. 2000년 1월 외교통상부 차관으로 지내다가 2001년에 외교통상부 차관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2001년 9월 제56차 유엔총회의장 비서실장, 2002년 9월 동 본부 대사, 2003년 2월에 참여정부의 외교정책보좌관을 지냈으며, 2004년 1월에는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취임하여 2006년 11월까지 장관직을 수행하였다.

국제 연합 사무총장 2006년 2월 14일에 국제 연합 차기 사무총장 선거에 공식적으로 출마 선언을 하여 2006년 10월 14일에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코피 아난의 뒤를 이어 차기 국제 연합 사무총장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그가 출마를 선언했을 당시엔 그의 당선을 예상한 외신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는 아시아에 돌아갈 차례였던 당시 사무총장직을

놓고 인도 출신의 샤시 타루르와 경쟁하였다.하지만 8대 유엔사무총장을 뽑는 1차 예비투표에서 그는 15개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원국중 13개국의 찬성을 받아 1위에 오르게 되고 2차 투표에서 14표, 3차 투표에서 13표를 얻었고, 마지막 4차 투표에서 그는 7명의 후보를 제치고 안보리 15개 나라중 14개 나라의 지지를 받아 8대 국제 연합 사무총장에 당선되었다.

특히 선거가 진행되는 동안 중동, 아프리카 국가의 그에 대한 지지는 대단하였으나,

10월 2일의 최종 비공식설문조사까지 일본은 기권표를 던졌다가 논란을 피하기위해 찬성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옮  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