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사회

반기문 고향 마을은 지금… 대선 출마, 그거 좋은 거유 나쁜 거유?

감투봉 2017. 1. 15. 07:50

반씨 집성촌 가보니
"외부선 헐뜯고 난리… 나오면 찍긴 찍겠지만 정치한다고 괜히 욕봐"

반기문 마케팅 제동
마라톤·백일장 명칭에 '반기문' 이름 다 삭제… 우상화 논란에 동상 철거

"반기문 대통령? 돼도 걱정, 안 돼도 걱정이유."

반기문(73) 전 유엔 사무총장이 대선에 출마키로 하면서 반 전 총장의 생가가 있는 충북 음성과 그가 자란 충북 충주에 묘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선거법에 저촉되는 이른바 '반기문 마케팅'이 모두 중단됐고 그간 반 전 총장에 대한 칭송 일색이었던 주민들도 말을 삼가고 있다.

반 전 총장이 유년 시절을 보냈다는 반선재(潘善齋·반기문의 선한 집)는 충북 충주시 무학시장 안에 있다. 지난 10일 무학시장에는 5일장이 들어섰다. '반기문의 향수가 남아있는 전통 무학시장'이란 플래카드 아래 사람들이 분주히 오갔다. 건어물점 주인 김종분(54)씨는 "여기는 조만간 반기문 시장으로 이름이 바뀔 거유"라고 했다. 그는 "반씨가 유엔 총장 되고 나서 확실히 관광객이 늘었다"며 "대통령 되면 손님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과일을 팔던 김모(60)씨는 "반 전 총장 반대하는 사람들은 충주 사과도 안 살 것"이라며 "앞으로 사람들이 '반기문 사과'라고 안 사는 것 아니냐"고 했다. 충주와 음성에서는 사과, 고추, 복숭아, 수박 등 지역 특산물 포장지에 '반 총장 고향에서 자란' 등의 문구를 넣었는데, 반 전 총장이 대선에 출마하면 선거법 위반이 된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선거일 180일 전부터 선거일까지는 공식 선거운동 외에 대선 후보의 이름이나 사진, 그림이 들어간 광고를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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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유년 시절 살았던 집 ‘반선재(潘善齋)’가 있는 충북 충주시 무학시장. 시장 이름보다 반선재라는 글씨가 더 크고 선명하다. / 충주=전현석 기자
음성군과 충주시 각종 행사에도 '반기문'이란 이름이 일제히 빠졌다. 음성군은 올해 11회를 맞는 반기문 마라톤대회와 9회 반기문 백일장 명칭에서 '반기문'을 빼기로 했다. 군청 홈페이지에 있던 '반 총장의 고향입니다' 문구도 삭제했다. 우상화 논란이 일면서 반기문 동상 등 조형물도 대부분 철거했다. 충주시는 반선재 주차장과 전시동 건립 계획을 전면 보류하고, 해외 봉사나 국제협력 사업에서 반기문 명칭을 바꿀 예정이다. 충주시청 관계자는 "시 발전이라는 순수한 목적에서 반기문 브랜드를 활용해 왔는데 못 하게 돼 안타깝다"고 했다.

반씨 집성촌이 있는 충북 음성군 행치마을 주민들은 기자를 외면하거나 말을 아꼈다. 반 전 총장 생가가 있는 마을이다. 지난 7일 이곳에 찾아가 "반 전 총장이 대선 출마한다는데…" 하고 운을 떼자 "뭘 또 캐려구 왔슈" 하는 대답이 많았다. 50대 주민 반모씨는 "사람들이 반 총장 안 좋은 것만 물어보니까 그래유"라고 했다. "대선 나가시면 찍겠쥬. 우리 반 총장님께서 외교부 장관 하실 때 여기 뒷산에 있는 선친 묘 보려고 혼자 운전해서 올 정도로 청렴해요. 그런데 대선 나간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헐뜯고 난리잖아유. 대통령보다 더 되기 힘든 유엔 사무총장이 돼서 이제 퇴임했는데, 환영 행사도 제대로 안 하고 욕하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슈. 그런 거 생각하면 정치 똥탕물 들어가지 말고 다른 일 하시면 더 좋을 것 같기두 허구."

행치마을은 인적 뜸한 전형적인 시골이었다. 2010년 반기문 생가가 복원되고 반기문 기념관, 반기문 평화랜드 등이 들어선 이후 주말마다 수백 명이 관광버스로 찾아오는 명소가 됐다. 부모가 자녀를 데리고 오는 경우도 많다. 이날 초·중·고교에 다니는 자녀 셋과 함께 온 윤모(47·충남 당진)씨는 "우리 자식들이 반 총장님 기를 받아서 훌륭한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마을 안내도에는 '큰산(보덕산)은 정상 봉우리를 중심으로 좌청룡 우백호의 산줄기가 이어져 행치마을 연못에 모아지는 기운이 큰 인물 배출과 관련있다 합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신혼부부들도 자주 찾는다고 한다. 마을에서 300여m 떨어진 모텔은 봄·가을마다 외지 손님이 몰린다고 했다. 그러나 모텔 측은 "반 총장이 대통령 되면 정부나 마을 주민들이 '대통령 생가 마을에 웬 모텔이냐'며 없애려 할 것이고, 안 되면 '반 총장 기운이 다됐다'며 손님이 줄어들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