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23일 당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는 인명진 갈릴리교회 원로목사를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이날 당초 발표 시간은 오전 9시 반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허원제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이 난감한 듯 정 원내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허 수석은 “왜 하필 오전 9시 반이냐. 박근혜 대통령이 오전 10시쯤 나와 당장 보고할 방법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정 원내대표는 “북한이 쳐들어와도 오전 10시까지 기다릴 거냐”며 불쾌감을 나타냈다고 한다.
‘불통과 단절’의 청와대는 최순실 씨 국정 농단 사건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참모들에게조차 곁을 주지 않고, 참모들은 박 대통령과의 수직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렇게 고립된 청와대는 점점 국민에게서 멀어져 갔다.
‘왕실장’ ‘기춘대원군’으로 불릴 만큼 국정 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부터 박 대통령은 ‘섬김의 대상’이었다. 고 김영한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남긴 업무수첩에는 김 전 실장의 이런 지시가 담겨 있다. ‘대통령 보고 간략히 하도록, 편하게 해드리고…’
김 전 실장의 통치 철학도 김 전 수석의 업무수첩을 통해 엿볼 수 있다. 김 전 실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수석들을 다그쳤다. ‘보수의 약점은 집요함이 없는 것.’ 김 전 실장은 2014년 8월 박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풍자한 그림으로 논란을 일으킨 홍성담 작가를 두고 ‘배제 노력. 제재조치 강구. 사이비 예술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해야’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점점 확대된 배경으로 보인다.
이 사건으로 현 정부의 ‘신데렐라’로 꼽힌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영어(囹圄)의 신세가 됐다. 박 대통령은 취임 2주년을 맞은 2015년 2월 25일 청와대 직원들에게서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전 직원이 직접 쓴 ‘롤링페이퍼’였다. 박 대통령은 “이런 건 처음 받아본다”며 무척 기뻐했다고 한다. 이 아이디어는 당시 정무수석비서관이던 조 전 장관이 냈다. 하지만 이런 살가움이 국민에겐 전해지지 않았다. 일각에선 박 대통령 참모들이 직언보다 ‘심기 경호’에만 매달렸기 때문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현 정부의 ‘핵심 실세’로는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을 빼놓을 수 없다. 박근혜 정부가 사정 정국을 조성할 수 있었던 데는 업무 장악력이 뛰어났던 우 전 수석의 역할이 컸다. 특검은 우 전 수석에게 직권남용, 직무유기 혐의 등을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22일 기각됐다. 청와대 핵심 인사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구치소행을 피했다. 하지만 지력과 재력, 권력까지 움켜쥔 그는 ‘법꾸라지’라는 주홍글씨를 새길 운명에 놓였다.
박근혜 정부 4년간 극과 극의 롤러코스터를 탄 인사로는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를 빼놓을 수 없다. 현 정부 초대 정무수석과 홍보수석을 지낸 뒤 2014년 7월 재·보궐선거에서 여당 의원으로는 26년 만에 처음 호남에 깃발을 꽂았다. 그 여세를 몰아 지난해 8월 당 대표에 올라 ‘무(無)수저 신화’를 이뤘지만 결국 ‘최순실 사태’의 직격탄을 맞고 쫓겨나듯 당을 떠나야 했다. 이 전 대표는 최근 기자들에게 “(인간) 박근혜가 아닌 대통령에게 충성했을 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재명 egija@donga.com ·신진우·송찬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