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류 백화점, 9만8000원짜리 양복에 고개 숙이다
입력 : 2017.03.02 18:56
지난 주말 롯데백화점 안양점의 남성 정장 코너. 이곳에 들어선 10여 개 브랜드 중 유독 한 곳에만 손님이 북적댔다. 이곳은 작년 9월 처음 문을 연 뒤 남성 정장 코너에서 월매출 1~2위를 다투는 ‘맨잇슈트’ 매장. 고객 25%가 백화점에서 정장을 처음 구입하는 20~30대이다. 더 놀라운 것은 가격. 한 벌에 최저 9만8000원이고, 울 혼방 정장도 13만~15만원이면 살 수 있다.
맨잇슈트를 만든 업체는 3년 전 9만8000원짜리 브랜드 양복 ‘젠’을 출시했던 부림광덕이다. 부림광덕은 저렴하면서도, 품질도 떨어지지 않는 ‘저가 양복 시대’를 열었다. 젠이 인기를 끌고 경쟁사들이 잇따라 10만~30만원짜리 양복을 내놓고 추격에 나서자 지난해 9월 더 젊은층 고객을 겨냥한 맨잇슈트를 출시했다. 맨잇슈트 매장은 현재 31개로 늘었고, 연말 45개까지 늘릴 계획이다.
부림광덕의 임용수(63) 회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기존 양복 시장을 갉아먹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2011년 7조원이던 남성복 시장 규모가 2015년 4조원대로 줄었는데, 저가 양복으로 잃어버린 시장을 되찾겠다”는 것이다.
그는 “젠 출시 당시 3만9000원이던 양복 한 벌(9만8000원 기준) 제조 원가를 3만2000원으로 더 낮췄다”며 “품질은 변함 없지만 원가를 낮춘 것이 백화점 입점 비결”이라고 말했다.
“제조원가를 더 낮출 수 있었던 것은 ‘제조 과정 세분화’와 ‘납품업체와 쌓아온 신뢰 관계’ 덕분입니다.”
부림광덕은 단일 공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 양복 공장을 인도네시아에 두고 글로벌 양복업체들에 납품하고 있다. 임 회장은 공장을 운영한 12년 동안 제조 공정을 작은 단위로 ‘세분화’하는 작업을 해왔다. 초창기 200여 개 공정을 거쳐 양복 한 벌을 만들었다면, 지금은 4000여 명 직원이 402개 공정을 거친다. “과거에 단추 4개를 달던 직원이 지금은 1개만 답니다. 원단을 여러개 자르던 직원은 한 개만 자르죠. 한 가지 일에 전문성을 갖추니 제조 속도가 훨씬 빨라지고, 품질도 좋아졌어요. 초창기엔 하루에 양복 3000벌을 만들었다면, 지금은 6000벌까지 만들 수 있습니다.” 통상 한 사람이 모든 공정을 책임질 경우 하루에 양복 한 벌을 만들기도 힘들지만, 작업 세분화 과정을 통해 하루에 직원 1명당 1.5벌을 만들 수 있다는 설명이다.
원단과 부자재 공급 업체에서 과거보다 더 싼값에 납품받게 된 것도 원가절감 비결이다. 임 회장은 “처음부터 가격을 후려칠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품질이 확실한 업체에 정당한 가격을 줬고, ‘앞으로 10년, 20년 같이 가자’며 꾸준히 신뢰를 쌓았습니다. 또 그쪽 생산 라인이 덜 바쁠 때 우리는 미리 많은 물량을 주문했죠. 그랬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더 싼값에 좋은 자재를 주더군요.”
3만2000원은 ‘순수한 제조원가’로, 매장 운영비·물류비용·세금 등은 포함이 안 된 가격이다. 임 회장은 “최근 3년간 순이익으로 남은 것은 많지 않았지만, 판매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많이 남을 것”이라고 했다.
사실 백화점 입점을 먼저 제안한 건, 부림광덕이 아니라 소비 부진으로 성장 한계에 봉착한 백화점 측이었다. 양측은 양복업과 백화점업이 “고급스럽지만 비싸다”는 인식 때문에 위기를 겪고 있다는 데 공감, “고급스럽고 싼” 제품을 선보이기로 했다. 임 회장은 “사회에 공헌한다는 생각으로 비싼 수수료를 포기해달라”고 했고, 백화점 측이 수수료를 최대한 낮추면서 ‘맨잇슈트’가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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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3/02/201703020313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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