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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 읽는 한시] 시인

감투봉 2017. 4. 8. 18:06


[가슴으로 읽는 한시] 시인

  •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입력 : 2017.04.08 03:04

시인

골짜기 어귀에는 복사꽃 피어
앞마을 이웃들은 눈이 부시네.

시인은 내키는 대로 길을 가노니
봄 새는 제철 만나 지저귀누나.

세상길이 한 해 한 해 바뀌어가도
천기(天機)는 하루하루 되살아나네.

저녁 바람 흰 머리에 불어오는데
냇가에서 마음을 가누지 못하네.

詩人

谷口桃花發(곡구도화발)
南隣照眼明(남린조안명)

詩人隨意往(시인수의왕)
春鳥得時鳴(춘조득시명)

世路年年改(세로연년개)
天機日日生(천기일일생)

晩風吹白髮(만풍취백발)
川上不勝情(천상불승정)

가슴으로 읽는 한시 일러스트
영조 때의 저명한 시인 석북(石北) 신광수(申光洙·1712~1775)가 고향 한산의 숭문동(崇文洞)에 머물 때 썼다. 복사꽃 활짝 피어 눈부신 세상이 되면 누군들 들로 산으로 꽃구경 가고 싶지 않으랴? 내가 사는 마을에도 복사꽃이 피고 있다. 들썩이는 기분을 못 이겨 발길 가는 대로 꽃을 구경하는데 시인의 귀에는 제 철을 만난 새들의 흥겨운 지저귐이 들려온다. 세상사가 험하게 변해가든 말든 아랑곳없이 자연의 생명은 활기차게 되살아난다. 저녁이 되어 바람이 머리카락 날리는 냇가에 서서 들녘을 바라본다. 그때 가슴에서 뭉클하게 감정이 솟구쳐 도저히 억누를 길이 없다. 봄날의 찬란한 활기에 가슴 벅차오른 시인의 뒷모습이 보인다. 복사꽃이 아닌 시인으로 제목을 붙인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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