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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북회담 취소에…궁지에 몰린 ‘중재자’ 文 대통령

감투봉 2018. 5. 25. 17:28


미북회담 취소에…궁지에 몰린 ‘중재자’ 文 대통령

입력 2018.05.25 17:15 | 수정 2018.05.25 17:17

미·북 정상회담 취소의 가장 큰 피해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아닌 문재인 대통령이라는 분석이 외신들을 통해 나오고 있다. 그동안 미·북 간 ‘외교 중재자’를 자처해오던 그가 이번 의사 결정 과정에서 배제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남북 정상회담을 이끌어냄으로써 ‘포천이 선정한 2018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란 타이틀과 80%에 육박하는 사상 초유의 지지율을 얻은 그의 아성이 무너질 위기에 놓였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24일 트럼프 대통령이 다음 달 12일 열릴 예정이었던 미·북 정상회담을 돌연 취소한 것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의 뜻이 무엇인지, 그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려고 시도 중”이라고 밝혔다. 11년만에 열린 남북 정상회담을 ‘미·북 정상회담으로 가는 가교’라고 칭하며 미국과의 긴밀한 협력을 강조해온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의 심경 변화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문재인(왼쪽)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5월 22일 오후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열린 단독회담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회담 취소 발표가 문 대통령이 워싱턴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과 단독 회담을 가진지 불과 48시간 만에 이뤄졌다는 사실은 더 충격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이 이미 문 대통령을 만났을 때 회담을 무산하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는 것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에게는 아무런 언질도 주지 않은 것이다.

외신들이 취재한 전문가들은 문 대통령이 궁지에 몰렸다고 지적했다. 미·북 대화를 통해 한반도 비핵화를 이루겠다는 그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을 뿐더러 이로 인해 그의 지지층이 흔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주즈췬 미 버크넬대 정치학 교수는 미 인터넷매체 ‘복스’에 “트럼프 대통령이 갑작스레 회담을 취소한 것은 문 대통령의 뺨을 때린 것이나 다름없다”며 “문 대통령은 미·북 정상회담에 많은 걸 걸었다. 이제 그는 그 대가를 치르게 됐다”고 했다.

◇ 美 신뢰 잃은 韓 중재외교…트럼프 “北, 직접 연락하라”

무엇보다도 견고하던 한·미 동맹에 금이 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북핵 문제와 관련해 한국의 개입을 더이상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밝혔다. 김정은에게 보낸 서한 말미에 적은 “마음을 바꾼다면 내게 편지를 쓰거나 전화하는 것을 주저하지 말라”고 한 부분이다. 김계관, 최선희 등의 개인 명의 담화를 통한 선전전을 하지 말라는 경고로도 볼 수 있지만 그동안 중재자 역할을 맡아온 한국을 거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란 해석이 더 신빙성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5월 21일 오후 미국 워싱턴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도착해 환영 인사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뒤로 강경화 외교부 장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장하성 정책실장이 따라 내리고 있다. / 연합뉴스
미국과 북한 중 누가 회담을 요청했는지를 놓고 양국이 벌인 신경전은 이를 뒷받침한다. 백악관은 줄곧 북한 측이 회담을 원했으며 미국은 이에 기꺼이 응할 것이라는 식의 입장을 밝혀왔다. 하지만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24일 오전 “저들이 먼저 대화를 청탁하고도 마치 우리가 마주앉자고 청한듯이 여론을 오도하고 있는 저의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며 미국 측이 먼저 회담을 제안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서한에서 “북한이 회담을 요청했다고 전달받았다”고 했다. 누구로부터 전달받았는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그게 한국이라는 것은 쉽게 추측이 가능하다. 지난 3월 북한을 방문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정은이 정상회담을 원한다’고 전한 것으로 알려져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미국과 북한에게 각기 다른 말을 한 것처럼 비춰지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결국 “(누가 회담을 요청했는지는)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다”며 김정은과 직접 대화하겠다는 의향을 밝혔다. 이와 관련, 주즈췬 교수는 “단기적으로 한·미 관계는 냉각기에 접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 원점으로 돌아간 미·북 관계…文 지지율에도 영향 미칠듯

정상회담을 추진하면서 호전되는 것처럼 보였던 미·북 관계도 원상복귀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김정은에게 보낸 서한에서 미국의 핵 능력을 과시했다. 지난해 ‘누구 핵 단추가 더 큰가’ 겨루던 모습과 같다. 트럼프 대통령은 비록 “정상회담이 예정대로 열리거나 나중에라도 열릴 수도 있다”며 대화의 여지를 남겼지만 한국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고 만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5월 25일 자정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북 정상회담 취소 발표 이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 긴급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청와대
6·13 지방선거를 코앞에 두고 있는 문 대통령에게는 치명타다. 25일 기준 76%를 기록하고 있는 그의 지지율이 북한 관련 외교 성과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남북 정상회담 이후인 지난달 30일과 이달 2~4일 77.4%까지 가파르게 상승한 바 있다. 이는 전주보다 7.4%포인트 급등한 것으로,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 따르면 새 정부에 대한 높은 기대감이 반영된 취임 직후 지지율을 제외하면 사실상 취임 후 최고치다.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에는 65%대를 넘어섰다. 북한의 참가로 국제사회로부터 ‘평화의 올림픽’이라는 평을 받은 영향이 컸다.

이와 관련, 일본 산케이신문은 이날 ‘중재자의 면모를 잃은 한국’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올해 북한 문제에 많은 힘을 쏟은 문 정권이지만 국내 경제 등 그 외의 현실적인 과제는 거의 해결되지 않았다”며 “미·북 정상회담의 중단과 향후 예상되는 한반도 정세의 긴박화로 꿈이 부서진 문 대통령은 새로운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