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사회

8월의 납량특집… '누진제 폭탄'이 폭염보다 무섭네

감투봉 2018. 8. 4. 16:54

8월의 납량특집… '누진제 폭탄'이 폭염보다 무섭네

  • 전수용 기자
  • 이동휘 기자


  • 입력 : 2018.08.04 03:05

    [오늘의 세상]
    누진제 적용 4개국 '에어컨 24시간 가동 한달 전기료' 비교해보니

    서울 용산 32평 아파트에 사는 최모씨 가족 4명은 요즘 방문은 모두 닫고 거실에 모여 함께 잔다. 밤에도 기온이 30도를 넘는 열대야가 계속되다 보니 에어컨은 켜야겠고, 그렇다고 전기료 걱정에 에어컨을 실컷 틀 수도 없다. 2016년 여름에 별생각 없이 밤낮으로 에어컨을 틀었더니 7~8월 두 달 연속 전기료만 40만원 넘게 냈다.

    기록적 폭염으로 냉방기 가동이 크게 늘면서 서민들의 전기료 부담도 커지고 있다. 폭염보다 더 무서운 게 '전기료 폭탄'이라는 말이 나올 지경이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우리나라 전기료는 상대적으로 싼 데도 폭염 속에서 에어컨 전원 켜기를 주저하는 건 많이 쓸수록 전기료가 가파르게 오르는 누진제 때문이다. 누진제는 2016년 한 차례 완화됐지만 어린아이가 있거나 고령자·환자가 있는 가정이 20시간 이상 에어컨을 틀면 여전히 60만원 넘는 '전기료 폭탄'을 맞는다. 경기도 분당에 사는 한 주민은 "선진국 문턱이라면서 이 폭염에 요금 신경 쓰느라 에어컨조차 맘대로 못 쓰는 게 말이 되느냐"고 불만을 터트렸다.

    ◇한국 전기료가 싸다고? 누진제 적용해보니…

    우리나라 전기료는 가정용·산업용 할 것 없이 다른 나라보다 훨씬 싸다. 국제에너지기구에 따르면 OECD 회원국의 주택용 평균 전기료는 1㎿h당 148.1달러인데 우리나라는 22% 정도 싼 116.4달러다. 하지만 전기를 많이 쓰면 쓸수록 단가가 비싼 누진제를 적용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주택용 전기료에 누진제를 적용하는 나라는 우리나라 외에 미국과 일본·대만 등인데 우리나라 누진율은 최고 3배로 미국(1.1배)이나 일본(1.4배)보다 높다.

    폭염기간 24시간 에어컨 가동 시 국가별 한 달 전기료
    여름철 폭염에 에어컨을 24시간 가동한다고 가정하고 누진제가 적용되는 한·미·일·대만 4국의 전기료를 비교해보니 우리나라가 가장 비쌌다. 4인 가족 한 달 평균 전력 사용량(350kWh)을 기준으로 했을 때 한국은 에어컨 가동으로 한 달 전기료가 69만원까지 치솟았다. 반면 일본(동경전력)은 49만원, 대만은 29만원, 미국(뉴저지주)은 35만원이었다. 몇해 전 1년간 미국 서부로 연수를 다녀온 류모씨는 "미국은 조리 기구와 냉난방을 모두 전기로 하는데도 전기료는 한국보다 훨씬 싸더라"며 "누진제 탓에 실질적으로 우리가 비싸더라"고 했다.

    ◇가정용 전기 소비 비중 13%… "왜 주택에만 누진제 적용하나"

    전기료 누진제는 1973년 오일 쇼크 이후 생겨났다. 공장에서 사용하는 산업용이나 상가가 쓰는 일반용(상업용) 전기와 달리 주택용에만 누진제가 적용된다. 전력 과소비를 막자는 취지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여름에도 폭염으로 에어컨 가동이 늘었고, 전기료 고지서를 받은 시민들의 누진제에 대한 불만이 폭발했다. 정부는 6단계로 되어 있던 주택용 전기료 누진 구간을 3단계로 줄이면서 개편 전 가장 높은 구간의 전기 요금을 kWh당 709.5원에서 280.6원으로 절반 이상 낮췄다. 대신 월 100kWh 이하 구간은 kWh당 60.7원에서 93.3원으로 높였다.

    한 차례 누진제 완화에도 불만은 여전하다. 아예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하지만 정부는 전력 과소비를 막고, 전기 저소비층과 형평성을 내세워 난색이다.

    전체 전력 사용량 중 주택용이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장기적으로 누진제를 통해 전력 과소비를 막는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주택용 전력 비중은 1985년 19%에서 매년 낮아져 작년엔 13%까지 떨어졌다. 반면 전체 전기 사용량의 절반 이상인 56%가 산업용이고, 상업용 전력도 21%에 달한다. 2007~2016년 평균 주택용 전력 비중은 14.2%지만 주택용의 전기료 비중은 17.8%에 달했다. 누진제가 적용된 탓에 일반 가정이 10년 동안 실제 사용한 것보다 15조원 많은 전기료를 부담하면서 서민한테서 전기료를 더 거둬 기업이나 상가 전기료를 보전해준다는 불만도 적지 않았다. 문 열어 놓고 냉방기를 가동하는 상점들이 흔한 것도 현행 제도의 맹점 탓이다. 김창섭 가천대 교수는 "전기료 누진제는 경제학적으로 말이 안 되지만 사회적 비용을 줄인다는 차원에서 국민이 용인해온 것"이라며 "누진제 재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 이 기사는 조선일보 지면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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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8/04/2018080400145.html#csidx0be39b37a68b0c6be0446cf987fd9c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