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 강

'戰時 상황'인데 사령탑이 보이지 않는다

감투봉 2020. 3. 2. 09:08

[사설] '戰時 상황'인데 사령탑이 보이지 않는다

조선일보
입력 2020.03.02 03:26

우한 코로나 사태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암담함이 국민 가슴을 짓누르고 있다. 코로나 확진자는 주말 사이 폭증 추세를 이어가며 4000명에 육박했다. 한국인에 대한 입국 제한 국가가 전 세계 81국에 달하고 한국인이 '국제 미아'가 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정부 내에선 국가 비상사태를 책임지고 수습할 사령탑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대통령과 장관들이 돌아가며 국민 신뢰를 잃는 일을 자초하고 있다.

국가 비상 상황에서 국민 눈에는 대통령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중요하게 비칠 수밖에 없다. 대만 정부는 우한 봉쇄 다음 날인 1월 24일 의료용 마스크에 대한 수출 금지 조치를 발동하면서 의료 물자 비축에 나섰다. 한국의 마스크 수출 제한(2월 25일)보다 한 달 빨랐다. 2월 23일부터는 자국 의사·간호사의 출국 금지 조치까지 내렸다. 만일의 경우 의료 공백을 막기 위한 사전 조치다. 중국 전역 입국 금지는 2월 7일 내렸다. 우리보다 몇 발짝 더 빨리 대비하고 있다. 확진자가 29명밖에 안 되는데도 그렇게 했다.

미국 대통령은 신속하게 중국 경유자 입국을 차단했다. 자국 내 첫 사망자가 나온 당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추가 환자들이 나올 것 같다" "공황(패닉)에 빠지지 말라"고 했다. 사흘 전에도 기자 문답을 하며 국민과 직접 소통했다. 싱가포르 총리는 사태 초기부터 중국과 국경 폐쇄에 이어 9분짜리 분량 영상에 출연해 국민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 명확한 행동 수칙을 제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역사회 감염 우려가 커지던 때 코로나 사태가 "곧 종식될 것"이라고 반대로 말하고 첫 사망자가 발생한 당일엔 청와대에서 파안대소했다. 야당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중국을 입국 금지하면 우리도 다른 나라의 금지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지금 한국민이 전 세계에서 입국 제한을 받고 있는데 무슨 소리인지 의아해하는 국민이 많다. 중국을 거친 외국인 차단에 대해서도 "초기라면 몰라도…"라고 했다. '초기에 왜 차단하지 않았느냐'는 것이 국민 의구심의 핵심인데 엉뚱한 말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렇다면 국민이 대통령을 어떻게 믿나.

대통령만이 아니라 총리는 감염병 확산이 우려되는 시점에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말하고, 감염병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회에 출석해 눈까지 치켜뜨며 "한국인이 중국에 갔다 들어오면서 감염원을 갖고 왔다" "애초부터 (문제는) 중국에서 들어온 우리 한국인"이라고 했다. 이 장관은 국내 확진자가 106명에서 209명으로 뛰어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한 지난 21일 "아직 전국 확산 단계는 아니고 산발적인 초기 단계"라고 했다. 상황도 모르며 국민에게 손가락질하는 장관을 국민이 믿고 따르겠나. 그 반대일 것이다.

정부는 1일에야 공공시설에 경증 환자를 따로 모아 의료진 보호 아래 관리하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벌써 결정됐어야 할 문제다. 총리가 대구 현장에서 지휘한다고 하지만 대구의 중증 환자 일부를 다른 도시로 이송해 치료하는 문제를 놓고 지자체마다 다른 입장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렇다고 대통령과 총리, 장관이 방역 전문가 집단을 사령탑으로 인정하는 것도 아니다. 메르스 사태를 겪고 방역 현장에 서 잔뼈가 굵은 질병관리본부장이 "방역 입장에서는 고위험군이 덜 들어오는 (중국 방문객) 입국 금지가 당연히 좋다"고 하는데도 무시해 화를 키웠다. 지금 한국은 말 그대로 전시(戰時) 상황이다. 그런데 사령탑이 잘 보이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방역에 대해선 전문가들의 의견을 최우선으로 하고 행정적 지원이 필요한 부분은 정부가 속도감 있게 결정·집행해야 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3/01/202003010152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