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사회

10억 기부 '2G폰 할아버지', 이번엔 경북에 5억 보내

감투봉 2020. 3. 13. 08:42

10억 기부 '2G폰 할아버지', 이번엔 경북에 5억 보내

조선일보
입력 2020.03.13 04:18

권오록 前 서울 은평구청장
2G폰 쓰고 18년 된 차 끌고 다니며 3년간 익명으로 10억 기부해 화제
"우한 코로나 퍼지는 것 보니 전염병 돌던 고향 생각나 지원"

"신분 비공개를 요청한 분께서 5억원을 보내주셨습니다."

지난 10일 경상북도는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우한 코로나) 대응 상황을 브리핑하던 중 이런 발표를 했다. 그보다 나흘 전 경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경북모금회)의 특별 성금 계좌에 기부된 돈이었다. 5억원은 경북모금회의 이번 성금 가운데 개인 최고액이었다.

이 '얼굴 없는 기부자'를 같은 날 오후 서울 강남구 청담동 자택에서 만났다. 서울시 공무원으로 34년을 일하다 1996년 은평구청장을 끝으로 정년퇴직한 권오록(85)씨였다. 마당에 주차된 18년 된 승용차, 책상에 놓인 6년째 쓴다는 폴더형 2G 휴대전화가 눈에 띄었다.

지난 6일 경북에 5억원을 기부한 권오록(85)씨는 “과거 고향 마을에 전염병이 돌았을 때 주민들을 돌보던 아버지 모습이 떠올라 기부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지난 6일 경북에 5억원을 기부한 권오록(85)씨는 “과거 고향 마을에 전염병이 돌았을 때 주민들을 돌보던 아버지 모습이 떠올라 기부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박상훈 기자

권씨가 담백한 말투로 기부한 이유를 들려줬다. "8·15 광복 무렵 고향에서 전염병이 돌았어요. 그때 아버지가 동네 사람들에게 밤낮으로 침 놔주시고 했는데…. 요새 코로나 퍼지는 거 보니까 그 모습이 불현듯 떠올라 돕기로 마음먹었지요."

권씨의 고향은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이다. 부농(富農) 집안의 1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부친은 겨울마다 곳간을 열어 마을 주민들에게 곡식을 나눠줬고, 교실이 2개 딸린 강습소를 만들어 까막눈인 사람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권씨는 "아버지가 '남을 도와주라'고 한 적은 없지만, 그때 봤던 모습들이 기부하는 인생을 살도록 만든 것 같다"고 했다.

경북모금회에 성금을 보낸 이유에 대해선 "대구는 큰 도시고 관심도 많이 받고 있는데, 경북 다른 지역들은 시골이라 상대적으로 손길이 덜 모일 것 같았다"고 했다. 이번 기부 사실을 그의 아내는 물론 네 자녀도 까맣게 몰랐다고 한다. "뭐라고 하겠어요, 우리 양반 잘했다고 하지. 허허허." 이상학 경북도청 대변인은 "감사를 표하기 위해 브리핑 때 이름을 언급하려 했는데, 극구 사양하셨다"고 했다.

사실 권씨의 기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본지 2019년 7월 3일 A1면>. 그는 작년까지 3년간 모교인 대동세무고를 비롯해 푸르메재단,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대한적십자사 등 복지 단체에 모두 10억원을 기부했다. '보도자료를 쓰거나 얼굴과 이름을 밖으로 알리지 말라'는 조건을 달았다. 이번에 5억원을 보낸 공동모금회에도 2016년 1억원을 기부했다.

익명 기부만 하던 권씨에게 인터뷰에 응한 이유를 물었다. "아들, 손자뻘 되는 사람들이 이 노인을 보고 한 사람이라도 더 기부하게 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 않겠어요?" 권씨 자산의 대부분은 1960년대 강남에 사둔 땅값이 오른 결과다. 그는 "운 좋게 번 돈으로 쉽게 기부하는 것이라 부끄럽다"고 했다.

경북모금회는 지난달 25일부터 이번 달 말까지 우한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는 경북 지역 주민들을 위한 특별 모금을 진행하고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3/13/202003130028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