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개월 수사, 50여차례 압수수색에도 부실수사 논란
입력 2020.06.09 02:08 | 수정 2020.06.09 07:30
9일 새벽 법원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이 부회장이 서울구치소를 떠나기위해 차에 오르고있다. /장련성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9일 기각되면서 검찰은 ‘부실·표적 수사’ 비판에 직면하게 됐다. ‘이재용 영장 기각’은 검찰이 1년 6개월간 삼성 경영진 30여명을 100여 차례 소환 조사하고 50여 차례 압수수색을 했음에도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을 찾지 못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재계에서는 “검찰이 환부만 도려내는 수사가 아니라 환부가 나올 때까지 해부하며 별건 수사를 벌였다”는 비판이 나온다.
◇법원 “범죄 혐의에 다툼의 여지”
원정숙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이 부회장 영장 기각 사유로 “불구속재판의 원칙에 반하여 피의자들을 구속할 필요성 및 상당성에 관하여는 소명이 부족하다”는 점을 제시했다.
국정 농단 사건에서 뇌물 공여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 부회장은 2018년 2월 항소심에서 1심 형량(징역 5년형)이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으로 깎여 풀려난 상태였다. 2년 4개월 만에 국정 농단 사건과는 별개인 불법 경영권 승계 혐의로 또다시 구속 기로에 섰던 이 부회장은 이날 석방됐다.
검찰은 이 부회장에게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두 회사의 주가를 인위적으로 조종해 자신에게 유리한 합병 비율을 이끌어 냈다는 혐의를 적용했다. 또한 그 과정에서 이 부회장이 지분을 보유했던 제일모직 자회사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부채를 줄이는 등 4조5000억원대 분식회계를 했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이날 그와 같은 혐의를 뒷받침하기 위해 함께 구속영장이 청구된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 실장 등이 경영권 승계 계획을 이 부회장에게 보고한 것으로 보이는 ‘미전실 내부 문건’을 증거로 제시했다. 하지만 법원은 해당 문건에 대해 “혐의 소명이 부족하다”고 밝히면서 이 부회장의 개입을 증명해 줄 ‘직접 증거’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 부회장은 앞서 검찰 조사에서 “검찰이 제시한 문건 내용의 보고를 받거나 지시를 내린 적이 없다”는 진술을 일관되게 유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판사 출신 변호사는 “결국 검찰이 ‘스모킹 건’을 제시하지 못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검찰이 이 부회장에게 수조원대 불공정 이득을 몰아주기 위해 그룹 차원에서 이뤄졌다고 판단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대해서도 법원은 2017년 합병 무효 민사소송 1심에서 삼성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당시 재판부는 “경영상 필요에 의한 합병이었고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혐의에 대해서도 법원은 지난해 같은 혐의로 김태한 삼성바이오 사장에게 청구된 영장을 두 차례 기각한 바 있다. 이 부회장 영장 재판부 역시 “국제 회계 기준에 따라 합법적으로 이뤄졌다”는 삼성 측 주장이 근거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 측 변호인단은 이날 “사건 기록이 20만쪽에 달할 만큼 대부분의 증거가 확보돼 있어 증거 인멸의 우려가 없고 글로벌 기업인인 이 부회장이 도주할 가능성도 없다”는 주장도 펼쳤고 법원도 역시 이를 인정했다.
◇“검찰, 별건·표적 수사” 논란
이 부회장 영장이 기각되면서 당장 법조계와 재계에서는 검찰의 무리한 수사 관행이 도마에 올랐다. 이번 수사는 2018년 11월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혐의를 검찰에 고발하면서 시작됐다. 재계에서는 “작년 5월과 7월 김태한 삼성바이오 사장의 영장이 두 차례 기각되자 검찰이 분식회계의 동기에 해당하는 그룹 경영권 승계 의혹으로 수사 방향을 틀었다”는 비판이 나왔다. 분식회계를 입증하기 위해 합병 문제를 들여다봤고, 합병의 부당성을 증명하기 위해 다시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의혹까지 수사가 확대됐다는 주장이다.
분식회계 수사 과정에서 검찰은 삼바 임원들을 ‘별건’인 증거 인멸 혐의로 구속했고 이들은 작년 12월 1심에서 실형을 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회계부정 사건은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며 검찰에 쓴소리를 했다. 검찰이 지난 4일 법원에 제출한 150여쪽의 이 부회장 구속영장 청구서에도 법원이 작년에 “범죄 성립에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던 삼성바이오 분식회계보다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시세 조종 및 부정거래 혐의를 부각하는 방향으로 초점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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