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지인 전학 오면 무상숙소·장학금.."분교 위기 시골 초등학교 살렸어요"
글·사진 이삭 기자 입력 2020. 12. 23. 21:37
괴산 장연면 주민들 제안..전교생 10명 '장연초'에 웃음꽃
[경향신문]
충북 괴산군 장연면 주민들이 학생 수 감소로 분교 위기에 놓인 장연초등학교를 살리기 위해 외지인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한 황토펜션(위 사진). 장연초 학생들이 방과후수업으로 국악을 배우고 있다.
황토펜션·개조한 빈집 내놔
입학장려금 등 230만원 지급
지난 22일 오후 충북 괴산군 장연면 장연초등학교. 학교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방과후 수업을 위해 강당으로 향했다. 이날은 국악 수업이 있는 날이다. 아이들은 강사의 지도에 따라 각자 가져온 국악기를 꺼내 연주를 시작했다.
“어머니 어머니 정말 좋아 좋아.” 강사가 장단을 선창하자 장구와 꽹과리, 북 등을 든 아이들은 서투르지만 조금씩 장단을 맞춰 나갔다. 아이들의 방과후 수업을 지켜보던 한 교사는 “최근 학생들이 전학오면서 1학기 때만 해도 조용했던 학교와 마을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고 말했다.
1936년 개교한 장연초는 한때 전교생이 600~700명에 달할 정도로 재학생이 많았다. 장연면 주민 대부분 이 학교를 졸업했고, 장연면의 유일한 교육기관이기도 하다.
그러나 올해 초 계속되는 학생 감소로 장연초는 분교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다. 전교생이 10명에 불과해서다. 내년 4월1일까지 전교생을 20명 이상 확보하지 못하면 이듬해에는 규모가 큰 인근 초등학교와 통합돼 분교로 바뀌게 된다. 교장과 교감이 없어지고, 교사도 4명에서 2명으로 줄어든다. 사실상 폐교 수순이다.
분교 위기의 장연초를 살려낸 것은 장연면 주민들이다. 이들은 지난 8월 ‘장연초등학교 살리기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다. 그리고 파격적인 제안을 내놨다. 초등학생을 둔 외지인들에게 숙소를 무상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여기에 전학생에게 100만원, 입학 축하금 30만원, 전·입학 장려금 100만원 등의 혜택도 내놨다.
장연교회 장학회도 초등학생에게 월 3만원, 유치원생에게 월 1만원의 학습보조지원비를 지급한다.
마을에 매년 1500만원의 수익을 주던 황토펜션 2동은 주민들의 결정으로 지난 11월부터 경기 수원과 인천에서 온 두 가족의 숙소로 바뀌었다. 이곳에서는 주말이 되면 바비큐 파티가 열린다. 아이들은 늦은 밤까지 펜션 마당에서 뛰어놀다 집으로 들어간다. 아파트처럼 층간소음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인천 송도에서 온 양모씨(42)는 아내와 초등학교 5·2학년, 7세 등 자녀 셋과 이곳에서 살고 있다. 그는 “외지인들에게 숙소를 무상제공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아내와 고민하다 장연면으로 오기로 결심했다”며 “도시에서는 매달 100만원이 넘는 교육비가 들어갔었는데 이곳에서는 장학금이 많아 교육비 부담도 덜 수 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펜션과 빈집, 마을회관 등을 집으로 개조해 수도권에서 오는 이주민들을 반기고 있다.
2개월 만에 29명으로 늘어
방과후엔 국악기 배우기도
이들의 노력으로 마을은 조금씩 변하고 있다. 10명에 불과했던 장연초 전교생은 지난 10월12일 첫 전학생을 시작으로 2개월 만에 29명으로 늘었다. 분교 위기에서 벗어난 셈이다.
주민들이 움직이자 지자체도 나섰다. 괴산군은 40억원을 들여 이주민 자녀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거주할 수 있는 임대주택 10채를 짓는 ‘기초생활거점사업’을 진행 중이다. 2023년에도 10가구를 더 짓는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최복만 비상대책위원장(66)은 “장연면에 학교가 없어지면 학생들을 둔 외지인들에게도 외면받아 마을 자체가 소멸할 것이라고 생각해 장연초 지키기 운동을 시작했다”며 “앞으로 이들이 계속 정착할 수 있도록 집을 마련하는 등 젊은 사람들이 살기 좋은 마을로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이삭 기자 isak8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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