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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타 퍼지는데… 백신이 버려지고 있다

감투봉 2021. 8. 13. 08:13

델타 퍼지는데… 백신이 버려지고 있다

한명이라도 더 맞아야되는데, 아스트라 남아도는 기현상

김성모 기자

김태주 기자

권용태 인턴기자(서울대 언론정보학 4학년)

김성준 인턴기자(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졸업)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입력 2021.08.13 03:00 | 수정 2021.08.13 03:00

 

“좀 아까워요. 11명 맞을 양이 든 한 바이알(병)에 거의 절반쯤 남은 것도 있잖아요.”

12일 경기도 A의원 원장이 지난주부터 쌓아둔 폐기 대상 아스트라제네카(AZ) 코로나 백신 5병을 보여줬다. AZ 백신은 한 병을 열면 11명까지 맞힐 수 있지만 대신 6시간 안에 활용해야 한다. 그런데 접종 대상자가 부족해 남으면 다 버려야 한다. 어떤 날은 5회, 어떤 날은 2회분이 남곤 했다. 이렇게 남은 백신을 모아뒀다 보건소에 폐기용으로 반납한다. “한때는 서로 맞겠다고 난리였는데 지금은 여기서만 15회분이 그냥 버려지는 거예요.”

보건소 직원의 실수로 상온에 방치되어 폐기된 화이자 백신. 약 1000여 명이 맞을 수 있는 양이다. /김영근 기자

코로나 4차 대유행 불길이 거센 와중에 의료 현장에선 멀쩡한 백신이 계속 버려지고 있다. 한 사람이라도 백신을 더 맞혀야 하는 상황에서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12일 밤 11시 현재 신규 확진자는 1870명을 넘었다. 10일(2223명), 11일(1987명)에 이어 2000명 안팎 확진자가 나올 전망이다.

본지가 국회 백종헌 의원실(국민의힘)을 통해 받은 질병관리청 ‘폐기 백신 현황’에 따르면 12일 0시 현재 1613바이알, 약 1만5000회분이 폐기됐다. AZ가 대부분이고 화이자, 얀센 등도 있다. 문제는 최근 들어 이 같은 백신 폐기 현상이 가속화됐다는 점이다. 서울 강서구 B이비인후과 의원은 “이번 주 이미 2~3명분을 폐기했는데, 앞으로 백신이 더 많이 남을 것 같다”고 전했다. 경기도 C내과의원도 “어떻게든 폐기 백신을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11일에도 잔여 백신 대기자를 못 찾아 결국 1회분을 버려야 했다”고 전했다.

폐기 처분되는 백신은 대부분 AZ 백신이다. 화이자·얀센도 일부 있지만 AZ가 많다. AZ는 올해 2000만회분(코백스 물량 제외)이 들어올 예정인데 드물게 나타나는 혈전증(혈소판 감소성 혈전증·TTS) 우려로 50세 이상만 접종하도록 원칙이 변경됐다. 원래는 30세 이상에게 맞힐 수 있었는데 대상이 대폭 줄었다. 그러면서 ‘백신 공급난’ 속에 AZ가 남아도는 역설적인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폐기 골머리

현재 다수 병·의원에서는 “AZ 잔여 백신을 폐기 처분해야 하느라 걱정이 많다”고 하소연한다. “잔여 백신을 내놔도 맞을 사람을 못 구해 폐기 처분하고 있다” “이렇게 AZ 백신이 버려질 바에는 백신이 없어서 못 맞는 나라에 줬으면 좋겠다”는 반응도 나왔다.

실제 12일 네이버나 카카오 앱을 통한 잔여 백신 예약 시스템 화면을 여니 AZ 잔여 백신이 7~10명분씩 남은 의원들이 수두룩하게 화면에 떴다. AZ 백신은 한 번 뚜껑을 따면 6시간 이내에 11명을 맞혀야 다 쓰는 것이다. 그런데 11명을 찾지 못하고 적게는 1~2명만 접종한 채 버려지는 백신도 나온다는 얘기다. 수도권 D의원에서도 오전 11시 잔여 백신이 6개 남았다고 올렸는데 결국 진료 시간이 끝날 때까지 아무도 나타나지 않아 결국 남은 백신(6회분)을 폐기하기로 했다. 전국 백신 접종 위탁의료기관(동네 병·의원)은 1만4000여 곳. 1곳에서 하루 1회분만 활용하지 못해도 하루 1만4000회분이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방역 당국 권고(50대 미만 접종 제한)를 무시하고 40대에게 AZ 백신을 맞혀주겠다는 의원도 있었다. 직장인 장모(45)씨는 “어차피 버릴 AZ 백신이라면, 그냥 빨리 접종해주면 안 되는지 동네 병원에 물어봤더니, ‘일단 와보시라’는 답을 들었다”고 했다.

잔여 백신 폐기 문제는 60~74세 미접종자 126만9000명을 대상으로 AZ 백신을 5일부터 접종을 시작하면서 본격 시작됐다. 이들을 대상으로 접종한 뒤 남은 백신은 50대 이상에게만 접종할 수 있다. 그런데 50대 연령층은 이미 지난달 26일부터 화이자·모더나 접종을 하고 있어서 굳이 AZ 백신을 선택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75세 이상도 화이자를 맞고 있다. 서울 E내과의원 원장은 “60세 이상 분들이 AZ 백신은 맞기 싫은데, 화이자 잔여 백신을 꼭 맞게 해달라고 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난감할 때가 적잖다”고 말했다.

◇잔여 백신 활용 새 전략 나와야

잔여 백신 폐기가 증가한 데는 의료 현장을 꼼꼼히 파악하지 못하는 정부 탁상 행정도 한몫했다. 지난 6월 16일 AZ 1차 접종을 마친 박모(55)씨는 개인 사정으로 2차 접종일(9월 1일)을 앞당겨 AZ 잔여 백신을 맞으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담당 보건소에 물어보니 “방역 당국이 1차 접종자에게는 잔여 백신을 맞지 못하도록 시스템을 막아뒀다”는 답이 돌아왔다. 박씨는 “60~74세 연령층은 AZ 접종 간격을 8주로 당기고, 50대는 11~12주로 못 박아둔 것도 이상한데 버려지는 잔여 백신을 활용하겠다는 걸 못 하게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현장 의료진들은 “(AZ뿐 아니라) 화이자·모더나 같은 mRNA 백신도 잔여 백신이 나오고 폐기되느니 가능한 곳에선 접종 간격을 6주보다 앞당겨 맞힐 수 있게 예외 규정을 둬야 한다”고 말한다. 화이자·모더나 모두 원래는 접종 간격이 3~4주였다. 당국은 앞서 모더나 물량 차질이 발생하자, 4주였던 모더나·화이자 접종 간격을 6주로 일괄 조정한 바 있다. 의료진들은 “백신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서 있는 백신이라도 최대한 활용하려면 정부가 잔여 백신 접종 문제를 융통성 있게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야 델타 변이에 대한 방어 전선을 조금이라도 더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방역 당국도 문제점을 인식하고 개선책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김기남 예방접종대응추진단 접종기획반장은 “50세 이상 미접종자에 대해선 동네 병·의원에서 예비 명단을 통해서도 AZ 잔여 백신을 접종할 수 있도록 기준을 이미 완화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더 적극적인 대책을 주문했다. 정기석 한림대 성심병원 교수는 “희망자에 한해 50대 아래라도 AZ 백신을 접종하는 방법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교수는 “50대 AZ 백신 접종 간격을 8주 정도로 당겨 잔여 백신 수요를 늘리는 전략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델타 ‘9가지 변이’로 항체공격 피해… 백신 안맞으면 입원위험 2배

델타 변이 코로나가 세계를 휩쓸고 있다. 백신 접종자마저 돌파 감염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어 공포가 가중되고 있다. 백신 접종률이 높은 미국과 영국도 백신 접종 여부에 상관없이 다시 실내에서 마스크를 착용하도록 하는 등 방역 대책을 강화했다.

전문가들은 델타 변이에 대항할 무기는 역시 백신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백신을 맞으면 설사 나중에 델타 변이에 감염돼도 중증으로 발전하지 않으며, 추가 접종하는 부스터샷처럼 오히려 면역력을 강화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델타 변이 감염자가 많은 50대 이하에 대한 백신 접종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래픽=양인성

◇돌연변이로 침투 잘하고 항체 회피

델타 변이는 그 이전의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전염력과 독성이 강하다. 인체 세포를 뚫고 들어가는 바이러스의 돌기(스파이크)에 9가지 돌연변이가 생겼기 때문이다. 미국 워싱턴대 연구진은 지난 4월 국제 학술지 ‘셀’에 델타 변이 바이러스는 스파이크 끝부분의 모양이 바뀌면서 항체 공격을 무력화한다고 발표했다.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인체에 집어넣는 능력도 발전했다. 인체의 면역반응을 회피하는 능력과 전염력이 강해진 것이다. 실제로 지난 6월 영국 공중보건국은 “델타 변이가 최초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2.5배 더 빨리 퍼진다”고 밝혔다. 스코틀랜드 조사에서는 델타 변이에 감염되면 스파이크 돌연변이가 8개인 알파 감염보다 중증으로 발전해 입원할 위험이 두 배 높았다.

델타 변이는 바이러스의 변화무쌍한 변신 능력이 가져왔다. 바이러스는 혼자서 증식하지 못하고 숙주 세포를 이용해야 한다. 영화 ‘기생충’의 가족이 남의 집에 숨어 사는 것과 같다. 미국 예일대 의대의 인치 일디림 교수는 9일 “모든 바이러스는 시간이 지나면 진화하고 자신의 유전자를 복제하고 퍼지면서 바뀐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숙주 세포에 더 숨어들고 들키지 않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델타 변이 바이러스는 표면의 스파이크뿐 아니라 변화가 거의 없던 내부 단백질에도 돌연변이가 생겨 이곳을 공략하는 백신이 효과가 떨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돌파 감염, 면역력 높일 기회 가능

바이러스의 돌연변이로 백신 효과는 조금씩 떨어졌다. 12일 ‘뉴 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NEJM)’에 실린 영국 보건 당국의 논문에 따르면 화이자 백신은 2회 접종 시 영국발 알파 변이는 93.7% 막아냈지만, 델타 변이는 88.0%로 효과가 떨어졌다. 아스트라제네카 역시 알파 변이에는 74.5% 효과를 보였고 델타 변이는 67.0%로 떨어졌다.

특히 우려되는 건 최근 백신 접종자 중에서도 델타 변이 바이러스에 걸리는 돌파 감염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이전보다 인체에서 더 빨리 증식하기 때문이다. 중국 연구진은 지난달 네이처에 델타 변이 감염자는 몸 안에 바이러스 입자가 이전 감염자보다 1000배 이상 많았다고 밝혔다. 이는 백신 접종자도 마찬가지였다. 이전 변이 바이러스는 백신 접종자 몸에서는 그 수가 잘 늘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백신 접종자는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다른 사람에게 전염될 정도로 증식할 수 있는 시간이 미접종자보다 훨씬 짧았다. 백신을 맞은 사람의 경우 처음엔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생소한 탓에 인체 면역 체계가 더디게 반응하지만, 일단 작동하면 바이러스 입자 수가 금방 줄어든다는 것이다. 돌파 감염이 일어나도 중증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드문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 뉴욕타임스도 지난 11일(현지 시각) “델타 변이는 전염력이 이전보다 2배 이상이지만 백신 접종자가 걸리는 돌파 감염은 대부분 증상이 약하며 이를 통해 장차 발생할 새로운 변이에 대한 방어력을 높일 수 있다”고 전했다.

심지어 면역력이 크게 약화된 경우가 아니라면 돌파 감염이 오히려 인체에 유리할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미국과 영국 등에서는 백신 접종자의 면역력을 증강하기 위해 추가 접종, 즉 부스터샷을 고려하고 있다. 하버드 보건대학원의 마이클 미나 교수는 뉴욕타임스에 “부스터샷이나 델타 변이에 약하게 감염되는 것 모두 앞서 맞은 백신으로 획득한 면역력을 강화시킬 것”이라며 “어떤 식으로든 바이러스에 노출되는 것은 면역으로 이겨낼 대상을 늘린다”고 말했다.

◇50대 이하 백신 접종 속도 높여야

델타 변이는 당연히 백신 미접종자에게 가장 위험하다. 미국에서 백신 접종률이 낮은 주의 확진자가 최근 증가하는 것도 이를 반영한다. 영국에서 백신 접종률이 낮은 50세 이하에서 델타 변이 감염자가 2.5배나 많은 것도 마찬가지다. 델타 변이로 인한 코로나 확산을 막고 역이용까지 하려면 미접종자에게 대한 백신 접종 속도를 높이는 것이 상책이다.

백신 주사를 맞으면 실제 바이러스가 침입했을 때 백혈구의 일종인 B세포가 스파이크에 달라붙는 중화항체를 분비해 바이러스를 꼼짝 못 하게 한다. 이후 다른 면역세포가 바이러스를 먹어치운다. 역시 백신이 만들어내는 백혈구인 T세포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를 파괴해 화근을 없앤다. 백신 주사를 모두 맞은 사람에게 돌파 감염은 이미 백신이 각성시킨 면역세포에 코로나에 대한 최신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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