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NLL 넘은 北선박 나포했다고… 文정부, 합참의장 소환조사했다
2019년 7월 北 3명 동해로 남하… 靑민정비서관실 행정관이 조사
‘北선박 나포말라는 지시 왜 어겼냐’며 軍서열 1위 모욕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9년 7월 군이 동해 NLL(북방한계선)을 넘어온 북한 선박을 나포했다는 이유로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행정관이 합참의장을 불러 조사한 것으로 3일 알려졌다. ‘나포하지 말고 쫓아내라’는 청와대 지시를 거슬렀다는 것이다. 군 작전 최고책임자인 현직 합참의장이 비위가 아닌 작전 조치와 관련해 청와대 민정의 조사를 받은 것은 유례를 찾기 어렵다.
정통한 군 소식통은 3일 “2019년 7월 NLL을 넘어 온 북 선박을 나포·조사한 것과 관련해 당시 박한기 합참의장이 10여 일 뒤 4시간 넘게 민정비서관실 조사를 받았다”고 말했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하노이 노딜’ 이후 교착에 빠진 남북 대화 재가동에 공을 들이던 상황이었다. 북 선원들이 귀순을 택해 북한을 자극하는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작전 중인 군에 ‘나포하지 말라’는 정치적 지시를 내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공 용의점을 조사해야 한다’며 원칙대로 나포를 지시한 합참의장을 조사한 것은 북한 눈치 보기이자 군 길들이기였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사건은 2019년 7월 27일 밤 11시 21분쯤 NLL을 넘어 남하한 북한 선박을 나포하는 문제를 놓고 불거졌다. 당시 박 의장 등 군 당국은 북한 선박이 어선 선단에 포함되지 않고 단독으로 심야에 해안선을 따라 남하한 데 주목, 정찰 등 대공 용의점에 대해 나포해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청와대 안보실은 북 선원들이 항로 착오라고 주장했다는 이유로 나포하지 말고 돌려보내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이에 박 의장은 당시 정경두 국방장관에게 상황을 보고해 나포 승인을 받은 뒤 북한 선박을 합동신문조가 제대로 조사를 할 수 있는 동해항으로 예인해 조사토록 했다. 군 당국은 신병 확보 37시간 만인 29일 오후 “대공 용의점이 없고 귀순 의사도 없다는 점을 확인했다”며 북한 선원 3명을 선박과 함께 북으로 송환했다. 그로부터 10여 일 뒤인 8월 초 청와대 민정비서관실은 박 의장을 소환, 4시간여 동안 왜 청와대 안보실 지시에 따르지 않았는지 등을 집중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내에선 이에 대해 군 서열 1위인 합참의장의 권위가 훼손되는 등 여러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 우선 현역 군인 최고위직인 합참의장을 작전 조치와 관련해 군 통수권과 무관한 청와대 민정에서 조사한 것이 적절한가에 대한 지적이 나온다. 청와대 민정은 보통 비위 문제 등과 관련된 사안을 다루는 부서로 군 작전 조치의 적절성 등을 조사하기엔 적절치 않기 때문이다. 특히 당시 조치는 합참의장이 국방장관에게 보고한 뒤 승인을 받아 집행한 사안인데 국방장관은 빼놓고 합참의장만 불러 조사한 것은 ‘표적 조사’의 성격이 강하지 않았으냐는 것이다.
당시 조사는 민정비서관실 A선임행정관이 맡아 진행했다. A행정관은 박 의장에게 “(청와대) 국가안보실의 의뢰로 조사를 진행한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조사가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A행정관의 말대로 청와대 안보실의 요구에 의한 것인지도 규명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본지는 A행정관의 해명을 듣기 위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고, 문재인 전 대통령 측은 “잘 알지도 못하고 답변할 내용도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군 관계자들은 박 전 의장이 평소 문재인 정부의 정책 기조에 고분고분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일종의 길들이기 차원의 조사가 이뤄진 것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학군 21기 출신인 박 의장은 문재인 정부 병영 문화 개선 역점 사업인 병사 휴대폰 전면 허용 문제에 대해서도 당시 군 수뇌부 중 가장 강력하게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고 한다. 2019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선 북한이 파괴했다는 풍계리 핵실험장에 대해 “수주, 수개월 내에 복구할 수 있다”며 정부 입장과는 다른 발언을 하기도 했다.
군내에선 당시 청와대 안보실의 지나친 작전 관여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측면이 많았다고 지적한다. 군 작전 등 군령권 행사는 통수권자인 대통령을 정점으로 국방장관→합참의장을 거치도록 돼있다. 하지만 세부 작전까지 청와대 안보실이 관여하면서 많은 부작용을 초래했다. 2019년 6월 큰 파문을 일으킨 삼척항 북한 목선 귀순 사건 때도 청와대 안보실의 지나친 개입과 간섭이 군의 축소·은폐로 이어졌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 문제로 당시 김유근 안보실 1차장은 엄중 경고를 받았다. 김 차장은 2019년 7월 서해 행담도에서 ‘잠수정 잠망경 추정 신고’로 소동이 벌어졌을 때에도 국방장관·합참의장이 참석한 화상회의에서 관할 부대장인 32사단장을 직접 질책한 것으로 알려져 월권 논란이 일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유례 없는 ‘합참의장 소환 조사’가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저자세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안이라고 말한다. 전직 정보기관 고위 관계자는 “당시 합참의장으로선 당연히 나포 조치를 했어야 한다”며 “하지만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북 주민 강제 북송 사건에서 나타났듯이 문재인 정부는 최대한 북을 자극하지 않고 조용히 상황을 종료하기 위해 퇴거를 지시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 전 의장은 본지와의 전화 통화에서 ‘청와대 소환 조사’ 사실에 대해선 부인하지 않은 채 “구체적인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며 언급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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