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하야 시점 정해 선언하면
합의 총리 선출 후 조기 대선
정국 혼란 최소화 시나리오
美 닉슨처럼 ‘사면’ 사례 있지만
국내법은 刑 확정 안되면 불가능
서청원 “퇴진 시점은 대통령 판단”
멀리 보이는 청와대 전경. 한국일보 자료사진.
새누리당 친박계 핵심 중진 의원들이 28일 박근혜 대통령에게 건의하기로 한 ‘명예로운 퇴진’의 다른 말은 ‘질서 있는 퇴진’이다.
곧 즉각 하야로 생기는 혼란을 없애려면 박 대통령이 사퇴 시점을 예고하고 물러나는 게 최선이라는 주장이다. 27일 전직 국무총리ㆍ국회의장 등 정치 원로 20여명이 박 대통령에게 “내년 4월 하야”를 고언한 주된 배경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이 특정 일시를 하야 시점으로 제시하면, 그때까지 여야 정당은 조기 대선을 대비할 시간을 벌게 된다. ‘대통령의 퇴진 시점 선언→여야 합의 총리 선출→조기 대선’의 흐름이다. 질서 있는 퇴진의 장점은 대통령 권한대행을 할 후임 국무총리를 국회가 추천하고, 조기 대선까지 과도 내각 혹은 중립 거국 내각을 구성할 시간도 생긴다는 점이다. 반면 탄핵안 처리의 경우 박 대통령이 임명한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는다. 원로 회동에 참석한 한 전직 국회의장은 본보 통화에서 “권한대행이 내각 통할은 물론 내ㆍ외치를 맡게 될 텐데 이미 정치적으로 큰 상처를 입은 황 총리는 국정을 이끌 동력을 상실했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임기단축 개헌도 명예로운 퇴진의 한 방안으로 거론돼 왔다. 국회가 현직 대통령의 임기를 특정일로 한정한 부칙을 헌법에 삽입한 개헌안을 추진해 통과시킨 뒤, 국민투표로 민심의 동의를 받자는 것이다. 개헌은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200명)의 찬성으로 본회의를 통과하면 30일 이내에 국민투표로 효력이 발휘된다.
어느 경우든 명예로운 퇴진이 현실화하려면 박 대통령에게 어느 수준까지 면죄부를 줄지를 결정해야 한다. 미국 워터게이트 사건에선 탄핵 위기에 직면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하원의 탄핵안 발의로 상원이 기소를 결정하기 직전 사임한 뒤 대통령 직을 승계한 제럴드 포드 대통령으로부터 사면을 받았다. 야권 일부에서 거론한 명예로운 퇴진도 이 같은 ‘닉슨식 해법’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 사법시스템은 형이 확정되어야 사면이 가능하다는 게 난점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이미 검찰 수사가 시작됐고 특검까지 예고된 만큼 박 대통령 사면을 미리 보장할 길이 없다”며 “과거 전례에서 찾는다면 이승만 전 대통령이 택한 망명밖에 길이 없다”고 말했다.
설령 정치적 사면이 가능하다고 해도 ‘촛불 민심’이 용인할지도 미지수다. 이정희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민심의 요구나 이미 탄핵 추진에 돌입한 국회 상황을 고려할 때 명예로운 퇴진은 물 건너간 것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원로 회동에 참석했던 복수의 국회의장들은 “사법처리 면제까지 고려하고 내년 4월 하야를 제언한 건 아니다”고 전했다.
친박계 좌장인 서청원 새누리당 의원은 28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명예로운 퇴진을 건의키로 한 데 대해 “친박계도 탄핵은 피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 명예 퇴진이 하야 의미 하나
“어제 원로들이 얘기한 것과 관련해서, 탄핵으로 가면 여러 국정혼란이 있을 테니 이를 피하기 위한 의견을 많이 나눴고 공감대를 이뤘다.”
- 원로들은 내년 4월까지 하야하라고 했는데.
“구체적인 날짜가 나온 것은 아니다. 우리가 무슨 날짜까지 못 박고 그럴 수 있나. 결정은 대통령이 하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건의를 받아들일 경우 향후 거국내각 구성 등의 방안이 있나.
“청와대와 구체적으로 의견을 나눈 건 아니다. 청와대가 판단할 문제니까. 이제 (대통령이) 여론을 듣고 판단하실 것이다.”
-모아진 의견을 박 대통령에게 언제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