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 최순실씨(60)의 집에서 대통령이 받은 선물이 발견된 것으로 확인됐다. 박근혜 청와대가 이전 정부와 달리 대통령이 받은 선물 목록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그동안 숨겨온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만약 박 대통령이 외국으로부터 받은 선물을 신고하지 않고 최씨에게 넘겼다면 공직자윤리법 위반이다.
지난 2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 심리로 열린 최씨의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검찰은 “주한 외교 사절들이 당선인 신분이던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달한 선물이 최씨의 집에서 발견됐다”며 외국 대사들이 선물한 카드와 기념품 등을 증거로 제출했다. 검찰은 최씨가 박 대통령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국정을 농단했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해당 증거품을 재판부에 제출했다.
대통령이 임기 중에 받은 선물은 개인 소유물이 아니다. 공직자윤리법은 공무원이 직무를 수행하며 외국 정상이나 외국인·외국단체 등으로부터 받은 선물이 시가로 10만원(미화 100달러) 이상이면 즉시 신고하고 국고에 귀속하도록 하고 있다.
대통령의 경우 선물의 가격과 관계없이 관례상 임기 동안 외국으로부터 받은 모든 선물을 대통령기록물로 지정해 대통령기록관 등에서 보관·전시하고 있다. 대통령이 국가를 대표해 외교 현장에서 주고받은 선물은 그 자체로 정상외교 뒷얘기가 담긴 중요한 사료이기 때문이다.
특히 국가 정상간 주고받는 선물은 상대방 혹은 상대국의 개인적·문화적 특성을 고려해 세심하게 결정된다. 선물 교환 자체가 중요한 외교수단이기 때문에 어떤 선물이 오갔는지가 언론에 구체적으로 보도되고, 선물의 내용과 의도를 두고 주요 현안과 결부된 해석이 나오기도 한다.
이처럼 대통령이 받은 선물은 투명하게 공개되고 공적으로 관리되는 것이 원칙이지만 박근혜 청와대에서는 유독 이전 정부와 달리 선물 목록 공개를 꺼렸다.
시민단체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는 앞서 2014년 11월 대통령비서실에 박 대통령이 취임 후 받은 선물 목록에 대해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한 달여 뒤 청와대는 서류 한 장을 달랑 내놨다.
가봉, 교황청, 그리스, 나이지리아, 네덜란드… 왼쪽에는 선물을 한 국가와 기관명이 가나다 순으로 적혀 있었다. 오른쪽엔 가죽 파우치, 곰 동상, 그릇 3점, 은 보석함 등 선물 목록이 같은 방식으로 나열됐다.
누가 언제 무슨 선물을 줬는지 알 수 없도록 엉터리 문서를 새로 만들어 준 것이다. 통상 국가기관의 정보공개는 행정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위해 위·변조 없이 보관 상태 그대로 하는 것이 원칙이다.
정진임 정보공개센터 사무국장은 “대통령이 받은 선물은 그리 민감한 내용도 아니고 이전 정부에서도 자세한 내용을 늘 공개하던 것인데 악의적으로 짜깁기한 자료를 주는 걸 보면서 ‘대체 뭘 숨기려고 이러나’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 단체는 2009년 이명박 청와대에도 똑같은 정보공개청구를 한 적이 있다.
당시 청와대는 이 전 대통령이 받은 선물의 품명과 규격, 수량, 증정인의 국적과 지위, 수령일 및 장소, 수령 경위 등을 자세히 구분한 목록을 제출했다.
공개된 자료를 통해 이 전 대통령이 2008년 4월16일 미국을 공식방문해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가로 55㎝, 세로 30㎝의 가죽가방과 ‘MB’라고 새겨진 가죽점퍼를 각 1개씩 받았다는 걸 누구나 알 수 있었다.
때문에 박근혜 청와대에서 대통령 선물 목록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를 두고 여러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만약 박근혜 대통령이 재임 시절 받은 선물 중 일부를 최씨에게 넘겼다면 실정법 위반이 된다.
박근혜 청와대는 이밖에도 시민단체 등의 정보공개청구에 늘 폐쇄적인 모습을 보였다. 하다 못해 전기료를 얼마 냈는지도 숨기려 했다.
노무현·이명박 청와대가 시민단체의 요청에 따라 월별로 전기사용량과 전기요금 등 상세내역을 공개한 것과 달리 박근혜 정부 들어선 연도별 자료만 제공됐다. 월별 상세내역을 비공개하는 이유로는 “청와대가 국가 보안목표시설 최상위 등급이어서 전력 운영 관련 내용이 자세히 공개될 경우 국익을 해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청와대 전기 사용과 관련해 이전 정권에선 없던 안보 이슈가 새로 생기기라도 한 걸까. 공개된 자료로는 박근혜 청와대 들어 월 평균 전기요금이 해마다 500만원가량씩 늘었다는 것밖에는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