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사회

영어없는 표지판 '황당'… 쪼그려 일 보는 화장실 '기겁'

감투봉 2017. 2. 9. 11:13

영어없는 표지판 '황당'… 쪼그려 일 보는 화장실 '기겁'

    입력 : 2017.02.09 03:11 | 수정 : 2017.02.09 08:26

    평창올림픽 D-365

    '큰 잔치' 1년 앞둔 평창 횡계 르포… 경기장 시설 최고지만, 외국인 손님들은 어쩌나

    - 외국인들 "밥먹는게 전쟁"
    "곤드레밥, 우거지… 정체가 뭔지 손짓 발짓 설명 들어도 잘 몰라… 마룻바닥 앉아 식사 너무 불편"

    - 침대없는 숙박업소도 많아
    평창 강릉의 고급 호텔·리조트는 이미 각국 올림픽 관계자에 배정
    관광객들 이대론 침대없이 잘 판

    9일은 올림픽 'D-365'를 맞는 날이다. 올림픽 도시 평창은 각종 플래카드와 조형물로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올림픽 도시' 색은 짙지 않다. 지난해부터 강원도와 도민이 손잡고 음식점, 숙박업소 등 시설을 보수하면서 손님맞이 준비에 한창이지만 남은 숙제가 많다. 6~7일 돌아본 평창에선 강원도뿐 아니라 평창 조직위, 정부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할 부분이 많아 보였다.

    전 세계 손님맞이 준비를 하는 건 올림픽 1년을 남긴 평창과 강원도의 숙제다. 고속도로에서 대관령 IC로 나가는 출구엔 한글로만 표지판이 적혀 있었고(위), 아직도 의자 대신 바닥에 앉아 식사하는 식당이 많다(가운데). 쪼그려 앉아 일을 봐야 하는 화변기를 갖춘 음식점도 있고(아래 왼쪽), 관광객을 상대해야 하는 안내소에서는 사람을 찾기 어려웠다(아래 오른쪽). /고운호 기자
    도보로 20분 정도면 대부분을 둘러볼 수 있는 횡계리에서 외국인들은 '먹을거리 해결'을 일종의 '미션'처럼 여기고 있었다. 평창올림픽 테스트 이벤트 기간을 맞아 러시아에서 여행 온 사진가 포포프(27)씨는 "며칠 동안 특정 메뉴를 정확히 골라서 밥을 먹은 적이 많지 않다"고 했다. 그는 한국어를 전혀 읽지 못한다. 7일 오후에도 횡계의 음식점 골목 근처를 돌아다니던 그는 쉽사리 식당을 결정하지 못했다. 그는 "한국 사람들은 매우 친절하지만 식당 환경은 친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일부 식당 메뉴판에 영어 이름이 적혀 있지만 외국인들에게 헷갈리긴 마찬가지다. 메뉴에 우거지가 영어로 'ugeoji'라고 적혀 있으나, 과연 외국인이 이를 보고 음식을 짐작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평창의 한 음식점 사장은 "영어 메뉴판에 곤드레밥을 'Rice with thistle'이라고 적어 놓기는 했는데, 막상 외국인에게 손짓 발짓 다 해서 뜻을 설명해도 소용이 없었다"며 "특히 곤드레를 설명하려고 평창 로컬 푸드(local food)다, 산나물(mountain herb)이다 하고 말하다 포기하고 결국 그냥 줬다"고 했다. 이런 메뉴에 대한 상세 설명문을 강원도나 조직위에서 빨리 보급하고 교육시켜 식당 주인들이 활용하도록 하는 편이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메뉴 선택이라는 산 뒤엔 또 다른 난관이 있다. 앉아서 밥을 먹어야 하는 '한국형 좌식 탁자'다. 특히 서양인들은 바닥에 앉아 식사하기를 매우 불편해한다. 서울에서 6개월을 지낸 스티븐슨씨는 "키가 186㎝인 나는 좌식 테이블 아래로 다리가 잘 들어가지 않는다"고 했다. "자리에 앉아 먹는 게 너무 힘들어서 서울에서도 의자가 있는 식당만 찾아요. 이런 부분이 해결되면 관광객들이 만족하지 않을까요?"

    도시 안 식당 대부분이 한국 음식점인 것도 외국인들에겐 아쉬운 점이다. 채식주의자라고 밝힌 한 대만인 남성은 이달 초 평창을 찾은 뒤 페이스북에 "이곳에서 '채식 식당'을 찾았지만 '미션 임파서블'이었다. 간판에도 아무 표시가 없었다. 한참을 돌아다니다 아무 곳에나 들어가 직접 육류를 빼낸 뒤 밥을 먹었다"고 적었다. 평창올림픽 조직위에서 일하는 미국인 리사(34)씨는 "평창에 처음 온 외국인들이 가장 당황하는 게 각자 나라 고유의 식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라며 "내년에는 세계 음식을 모은 푸드코트가 설치되면 유용할 것 같다"고 말했다.

    청소가 안 돼 있거나 쪼그려 앉아야 하는 화변기가 곳곳에서 발견되는 것도 문제다. 소변기에 때가 잔뜩 껴 있어 겨울인데도 냄새가 심한 곳도 있었다. 식당에 따라 다르지만 화변기가 절반을 넘는 곳도 상당수였다. 강원도는 2016년 초부터 "조리 시설을 개방하고 입식 테이블을 설치하는 등 음식점 환경을 올림픽급으로 개선해보자"며 상인들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강원도도 예산 문제를 들어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있다. 강원도 집계에 따르면 올림픽 시티인 평창군, 정선군, 강릉시 식당 중 보수 공사를 한 곳은 3308개 중 38개에 불과했다. 특히 올림픽 메인 도시인 평창군 식당 1100곳 중 올림픽 수준으로 시설 공사를 마친 곳은 현재까지 6곳뿐이다.

    현재 수준이라면 강원도 내 숙박도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또 하나 '도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평창과 강릉을 비롯한 도내 주요 리조트나 고급 호텔은 이미 내년 올림픽 기간 내내 국제올림픽위원회 관계자와 각국 임원단에 배정돼 있다. 상대적으로 시설 등급이 낮은 나머지 숙박업소에서 관광객을 수용해야 하는데, 침대가 없는 곳이 아직도 상당수에 달한다. 강원도 지원으로 개선 공사를 한 업소는 세 시·군 숙박업소 290곳 중 36곳(12.4%)이다. 강원도에선 화장실 보수 등의 개선 사업을 권유하고 있지만 숙박업소 업주들도 '비용 문제와 필요성' 등 이유로 적극적이지 않다. 강원도 관계자는 "올해는 세 개 시·군 기준으로 음식점 183곳, 숙박업소는 148곳을 추가로 개선할 계획"이라며 "올림픽 때까지 모든 직원이 관광객 응대에 에너지를 집중하겠다"고 말 했다.

    이훈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남은 기간 환경이 잘 정비된 곳은 지자체에서 '인증'을 해 줘서 사업이 잘되도록 유도하고, 정비가 더 필요한 곳에 더 많이 '지원'해주는 두 갈래 정책이 필요하다"며 "국제 대회 개최 이후 강원도와 평창이 세계적 관광지가 될 거라는 사실을 지자체와 도민들이 공유해 '우리 대회'라는 주인 의식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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