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사회

‘경제민주화’ 상징 김종인, 野 ‘구세주’에서 ‘탈당’까지

감투봉 2017. 3. 7. 20:42

‘경제민주화’ 상징 김종인, 野 ‘구세주’에서 ‘탈당’까지

김기흥 입력 2017.03.07 20:12 댓글 4


김종인 자택 찾아가 삼고초려한 문재인

13개월 전... 2016년 1월 13일 밤.

당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표는 그 날도 서울 평창동 김종인 전 의원의 자택을 향했다.

벌써 며칠 째...김 전 의원은 조부(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 가인 김병로 선생)의 기일이라 지방에서 늦게 돌아오는 만큼 집으로 찾아오지 말라고 했지만 문 대표는 그럴 수 없었다. 안철수 의원 등 비주류 의원과 호남 의원의 탈당이 연쇄적으로 이어지고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계마저 집단 탈당하면서 야당이 둘로 쪼개져 석달 뒤 4월 총선에서 여당이 180석 이상을 가져갈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문 대표는 당 대표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김 전 의원의 집을 찾았고 다시 부탁했다. 당을 맡아달라고, 당을 구해달라고...그리고 승낙을 얻었다.

문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교사로 잘 알려진 '김종인 영입' 카드를 통해 분당 사태 진화와 총선체제 정비를 위한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김종인은 경제민주화의 상징"

문재인 대표는 다음날(14일) 오후 국회 당 대표실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소집, 김 전 의원의 선대위원장 인선문제를 확정한 뒤 한 기자회견에서 "선대위를 조기 출범시키고 김종인 박사를 당 선대위원장으로 모시려고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전 의원을 '경제민주화의 상징'으로 칭한 뒤 "우리 당이 유능한 경제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해, 또 경제민주화 실현을 위해 김 박사의 지혜와 경륜이 꼭 필요하다"며 "빠른 시일내에 당내 동의를 진행한 뒤 김 박사를 중심으로 총선 필승을 하고 정권교체까지 바라보는 선대위 구성을 빠르게 마무리해 총선 관리를 맡기겠다"고 말했다.

김종인 "나는 단독 선대위원장"...김종인-문재인 미묘한 긴장감

김종인 선대위원장은 다음날(15일) 문 대표와 국회 당 대표실에 나란히 등장해 선대위원장으로서 공식 데뷔전을 가졌다. 벼랑 끝에 선 문재인 대표와 당을 구할 구원투수로 등판했지만 두 사람 간에 미묘한 긴장감도 감지됐다.

먼저 선대위원장 체제가 단독이냐 공동이냐를 놓고 전날 인선 발표 때부터 '설왕설래'가 이어지는 등 혼선이 빚어진 끝에 결국 하루만에 '원톱 체제'로 최종 정리됐다. 문 대표는 전날 발표 당시 김 위원장에 더해 호남 출신 공동선대위원장을 추가로 인선할 방침을 밝혔지만, 김 위원장은 이날 기자간담회 등을 통해 "단독 선대위원장 체제가 아니면 절대로 못한다는 전제하에서 수락했다", "공동선대위원장이란 얘기는 듣지 못했다"고 단언했다. 이에 문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일단 김 박사를 원톱으로 모신 거고, 공동 부분은 앞으로 외부영입이나 통합의 경우를 가정해 말씀드린 것"이라며 "실제 그렇게 될 경우 김 박사가 판단할 문제"라고 한발 물러섰다.

셀프 공천 논란...'대표직 사퇴' 벼랑 끝 전술?

바통을 이어받은 김종인 대표(이하:위원장-> 대표)는 관리형에 그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차르'(옛 러시아 황제)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당을 강력하게 장악해갔다. 김종인 체제의 민주당은 친노의 좌장인 이해찬 의원 등을 포함해 친노 의원 몇 몇에게는 공천을 주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셀프 공천' 논란이라는 위기가 찾아왔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논란을 거치면서 김 대표의 위상은 더욱 공고해졌다. 비례대표만 4번이나 한 김종인 대표가 총선을 20여 일 앞두고 자신을 비례대표 2번으로 낙점한 것을 두고 '셀프 공천' 논란에 휩싸이는 등 친문 진영의 반발이 있었지만, 대표직 사퇴라는 벼랑 끝 전술(?)을 통해 경남 양산 자택에 머물고 있던 문재인 전 대표를 급히 상경하게 했다. 문 전 대표는 "김 대표는 이번 총선을 경제민주화라는 화두를 치르는데 간판 역할을 하고, 총선 이후에도 다음 대선 때까지 그 역할을 해줘야 하기 때문에 국회에 들어갈 필요가 있다"고 수습했다.

예상을 뒤엎고 123석...원내 1당 위상 확보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거대 여당의 출현을 막아달라며 "총선 목표 의석으로 제시한 107석을 달성하지 못하면 대표직 사퇴는 물론 비례대표 의원직에서도 물러나겠다"며 배수진을 친 김종인 대표는 123석을 통해 원내 1당의 위상을 확보한 것이다. 한 때 야권 연대 실패와 비례대표 공천 파동 등으로 패색이 짙어지면서 김 대표가 그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당 안팎에서 고조됐지만 선거 결과는 반대였다.

김종인 조기전대론 놓고 진실공방

총선이 끝나자 마자 조기 전대론이 당내에선 불거졌다. 일각에선 김 대표가 직접 당권에 도전할 가능성을 점치기도 했다. 김 대표는 전대 출마 문제에 관한 질문을 받을 때면 "곤욕의 과정을 내가 왜 치러야 해"라면서도 가능성을 완전히 닫진 않곤 했다. '전략적 제휴' 관계 속에 그동안 침묵을 지켜온 친문 진영과 본격적인 긴장관계에 돌입할 수 있다는 전망도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나왔다. '불안한 동거'를 이어온 김종인-문재인 두 사람은 4.13 총선 이후 가진 만찬 회동에서 나눈 대화 내용을 놓고 진실 공방을 벌인 뒤 관계가 틀어졌다. 문재인 전 대표 측은 KBS 기자에게 "문 전 대표가 김 대표에게 비대위 해체 뒤 당 대표를 할 생각은 안 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했다고 밝혔지만 김 전 대표는 "문 대표가 자신에게 대표직을 맡지 않는 게 좋겠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하면서 "자신에게 대표 경선 출마 여부를 물어 경선에는 관심이 없다"고 대답했다고 말했다.

"호남 패배는 김종인 탓"

조기전대론이 대두되면서 민주당 친문 진영을 중심으로 호남 패배는 반(反)문재인 정서가 아니라 김종인 대표의 셀프 공천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정청래 전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호남은 왜 더민주를 버렸을까'라는 글을 통해 "반(反)문재인 정서는 호남민심 이반의 본질이 아니다"며 "북한궤멸론과 햇볕정책 부정 그리고 비례대표 공천장사 운운으로 김대중과 광주정신에 대한 모욕이 호남의 역린을 건든 것은 아닐까"라고 주장했다. 추미애 의원은 5월 초 전당대회 연기 불가론을 주장하면서 김 대표를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추 의원은 "호남 참패를 가져온 현 비대위 체제를 유지한다는 것은 더민주의 심장인 호남을 포기하는 것"이라면서 "당헌은 총선 후 정기 전당 대회를 하도록 명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김종인 대표의) 셀프 공천'과 '비례 대표 파동'으로 지지자들을 등 돌리게 만들었다"고도 했다. 당시 정치권에선 김 대표가 친노 친문 진영에게 이른바 팽(烹)을 당했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개헌 고리 보폭 넓힌 김종인...문 전 대표 측과 정면 충돌

8.27 전대에서 추미애 대표에게 당권을 넘겨준 김종인 전 대표는 개헌을 고리로 보폭을 넓히며 당 안에 있으면서도 제3지대론의 중심축으로 꼽혀왔다. 김 전 대표는 '비패권지대' 구축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친문 진영과 각을 세웠다. 특히 개헌 문제를 놓고는 문 전 대표 측과 정면 충돌을 이어왔다. 최근에는 비문인사들이 주축을 이룬 개헌파들이 친문 성향 지지자들로부터 '문자 폭탄'을 받은 일과 자신이 주도해온 대표적 경제민주화법인 상법 개정안처리가 무산된 점, 그리고 문 전 대표 캠프의 전윤철 공동선대위원장이 언론인터뷰에서 '경제민주화'에 대한 비판적 표현을 한 것 등을 놓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김 전 대표 측 핵심인사는 "어쨌든 위기의 당을 살려 제1당까지 만들어놓았는데, 문 전 대표는 김 전 대표에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었다"고 전했다.

'순교(殉敎)'하려고 한다"

김종인 전 대표는 지난 1월 말 KBS 기자 등에게 "순교(殉敎)'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월 17~19일 독일 뮌헨 안보회의에 참석하면서 마지막으로 생각을 정리할 것"이라며 덧붙였다. 김 전 대표는 '순교'의 의미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사석에서 "더 이상 킹메이커 노릇은 하지 않겠다"고 말해온 만큼, 개헌을 위해 비례대표 의원직 상실을 감수하고 민주당을 떠나 '제3지대' 구축에 적극 나서겠다는 취지로 읽혔다.

문 열고 들어왔다 문 닫고 나간다

그리고 김 전 대표는 7일 탈당을 공식화했다. 김 전 대표는 이날 한 강연자리에서 "대선주자들 가운데 어떻게 나라를 끌고 갈지 얘기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며 "남이 써준 공약을 줄줄이 읽는 대선주자는 그런 일을 할 수가 없다"고 비판했다. 김 전 대표가 경제민주화 추진 의지가 부족하다면서 줄곧 친문(친문재인) 세력을 비판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발언 역시 문재인 전 대표를 겨냥한 비판으로 풀이된다. 당을 떠나면서 자신을 영입한 문 전 대표와 친문진영에 '쓴소리'를 던진 것이다.

김기흥기자 ( heung@k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