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양 작업도 힘들었지만, 비판 여론에 서운한 순간 많았다"
입력 : 2017.04.12 03:11
[인양 끝낸 세월호]
훙충 상하이샐비지 사장이 털어놓은 세월호 인양 뒷얘기
"미수습자 가족이 울면서 부탁… '무조건 인양하자' 각오
24시간 작업했는데… 인터넷선 '아침에만 일한다' 비난
바다 밑, 자료와 달라… 암석 뚫고 리프팅빔 설치에 5개월
잠수함 충돌? 세월호 선체에서 공격 받은 흔적 발견 못해"
중국 인양업체 상하이샐비지의 훙충(洪冲) 사장은 세월호를 추모하는 상징인 노란 리본을 왼쪽 가슴에 달고 있었다. 그는 "세월호를 반잠수 운반선에서 육상으로 올린 지난 9일, 부두에서 만난 미수습자 유가족이 고맙다고 말씀하시면서 직접 달아주셨다"면서 "이런 날을 보기 위해 지금까지 애써 작업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훙 사장은 인양 과정에서 10여 차례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작업을 진두지휘했다. 일수로 따지면 두 달이 넘게 국내에 머물렀다고 한다.
―세월호 인양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소감은.
"인양 과정에서 경제적 손실도 많았고, 과연 '인양이 가능할지'에 대한 고민으로 스트레스도 컸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여러 차례 있었다. 그렇지만 미수습자 가족들이 내 손을 붙잡고 울면서 부탁할 때, 무조건 이 배를 인양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나도 딸이 있는 아버지고 해상에서 작업하는 직원 중에서도 아버지인 사람이 많았다. 아이 잃은 부모의 심정을 우리가 왜 모르겠나. 오랜 작업 끝에 세월호가 수면 위로 떠올랐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인양 작업에서 무엇이 가장 힘들었나.
"선체를 절단하지 않고 선체 밑에 리프팅빔을 깔아 들어 올리는 작업은 처음 시도하는 일이었고, 따라 할 전례도 없었다. 세월호를 들어 올리려면 높이 90㎝, 너비 1.8m, 길이 30m짜리 리프팅빔 33개를 45m 깊이의 해저에서 세월호와 맞닿아 있는 암초와 펄 사이를 뚫고 설치해야 했는데, 아직 전 세계적으로 리프팅빔이 지나가는 통로를 굴착하는 기계가 개발되지 않았다. 게다가 뚫어야 할 바다 밑 암석의 상태도 우리가 알던 것과 전혀 달랐다. 우리는 암석이 대부분 깨진 돌이거나 자갈 등 쇄석(碎石)이라는 자료를 넘겨받았기 때문에 약간의 청소 작업만 거치면 리프팅빔을 설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황은 전혀 달랐고 리프팅빔을 설치하는 작업만 다섯 달 정도 걸렸다. (자세를 고쳐 앉으며) 이건 꼭 제대로 짚고 넘어가고 싶다. 해저 암석에 리프팅빔을 넣을 때 암석이 생각보다 크고 단단했다는 것과 선체가 부식을 통해 이미 변형이 생겼다는 점이다. 이렇게 많은 모듈 트랜스포터를 이용한 것도 세계 기록이다."
―당초 세월호를 해상 크레인으로 올리려다가 바지선을 이용하는 것으로 바꿔 논란이 일었다.
"인양의 어려운 점은 배의 정확한 무게를 제대로 알기 어렵다는 것과 시간이 흐르면서 배가 계속 부식되어 상태가 변한다는 것이다. 인양 과정에서 세월호가 끝없이 변화하는데 인양 방법이 바뀌지 않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우리도 작업이 절반 정도 진행된 작년 말에야 방법을 바꾸기로 했는데 바꾸지 않으면 인양이 불가능할 것 같았다. 당시 우리는 리프팅빔을 들어 올릴 크레인을 만들고 싣고 갈 바지선도 개조했고 기중기선도 빌려 놓은 상태였다. 인양 방법을 바꾸는 것은 우리도 그만큼 손해를 감당하면서 한 일이다. 중국 격언 중에 '자고화산일조로(自古華山一條路·화산을 오르는 길은 하나밖에 없다는 뜻으로, 어려워도 성공하려면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다는 뜻)'란 말이 있다. 이것만 생각했다."
―인양 과정에서 상하이샐비지는 얼마나 손해를 본 것인가.
"(손을 내저으며) 구체적인 액수는 공개할 수 없다. 다만 원래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몇 배 이상의 돈을 쓴 것은 확실하고 이 작업을 진행하기 위해 은행에서 1억달러(약 1146억원)를 대출받았지만 실제 쓴 돈이 이것보다 훨씬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나마 위안인 것은 결국 인양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미수습자 가족들이 내 손을 붙잡고 한국어로 부탁하는 모습을 보다 보면 손실을 감당하고서라도 꼭 배를 인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수사들의 고충이 컸다고 들었다.
"침몰한 해역의 물길은 보통 험한 게 아니다. 잠수가 불가능할 정도로 유속이 빠르고 파도도 높다. 조수가 안정된 시간에 재빨리 잠수를 했는데, 그런 시간이 하루에 두 번, 총 두 시간 남짓에 불과하다. 해저의 물 흐름 속도도 빨라서 세월호 선체도 물길에 따라 일렁일 정도였다."
―작업 기간이 길어지면서 인양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정말 서운한 순간이 많았다. 작업 과정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제일 컸지만 여론의 비판이 그에 못지않았다. 인터넷에서 '상하이샐비지 사람들이 아침에만 일하고 저녁에는 안 한다'는 등 글을 봤는데, 우리는 정말 24시간 작업했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들과 인양 컨설팅 업체인 영국 회사 TMC 관계자들이 현장에서 매일 감독했다. 그런데도 오해가 생기니 이해하기 어려웠다. 우리 잠수부들은 매일 분투하면서 힘들면 갑판에 누워서 자고 배가 고프면 만터우(饅頭·중국식 소 없는 찐빵)를 하나 베어 물고 다시 작업을 하곤 했다. 비난을 받을수록 꼭 성공해서 실력을 입증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수함 충돌이나 어뢰 공격설에 대한 흔적을 발견했나.
"(헛웃음을 지으며) 세월호가 무엇 때문에 침몰했는지 우리가 판단할 영역은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세월호 선체에서 공격을 받았다는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수중 작업에서 그런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는 없었다. 세월호가 뭍에 올라온 만큼 지금 제일 잘 보이지 않나."
―상하이샐비지의 기술력에 놀랐다는 반응이 많다.
"상하이샐비지는 1951년에 설립됐고 수없이 많은 배를 인양했다. 1999년에 옌타이에서 침몰한 '다순호'도 우리가 인양했고, 2015년 양쯔강에서 침몰했던
'둥팡즈싱호'는 5일 만에 인양에 성공했다. 경험을 통해 누적된 기술은 하룻밤에 만들어질 수 없다."
―인양 성공 소식을 오랫동안 기다려온 한국 국민에게 하고 싶은 말은.
"기다려준 한국 정부나 국민께도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다. 무엇보다 우리가 분투하고 있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끝까지 믿고 응원을 해 준 미수습자 가족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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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4/12/201704120033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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