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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건강] 수술도구 돌려막기.. 사람잡는 병원들

감투봉 2017. 4. 18. 09:20

[And 건강] 수술도구 돌려막기.. 사람잡는 병원들

민태원 기자 입력 2017.04.18. 05:01 댓글 148

끊이지 않는 '수술 부위 감염' 왜

6년 전 척추전문병원에서 디스크 수술을 받은 안모(48)씨는 수술 직후 고열과 통증에 시달렸다. 혈액검사 결과 패혈증 등을 일으키는 녹농균에 감염된 사실이 확인됐고 안씨는 병원에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법원은 지난해 7월 “의료진 손이나 수술 기구의 불안전한 소독과 멸균 처리 소홀로 수술 부위 감염이 유발됐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안씨 손을 들어줬다. 앞서 2015년에는 오른쪽 어깨 회전근개(근육힘줄) 파열로 재건수술을 받은 후 역시 녹농균이 옮아 심각한 부작용을 호소한 환자에게 일부 배상 판결을 내린 사례도 있었다.

이처럼 매년 끊이지 않는 ‘수술 부위 감염(SSI:Surgical Site Infection)’은 의료감염 사고 중 가장 많다. 수술 후 환자 사망이나 다른 질환 유발은 물론 병원에 머무는 기간과 치료비용을 증가시키는 중대한 문제다.

특히 인구고령화와 수술장비 향상, 보험확대 등으로 인공관절수술 척추고정술 등 정형외과와 치과 영역의 임플란트(체내 삽입 의료기구) 수술이 크게 늘면서 최근 SSI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의료분쟁 신청 45%, 수술 감염

국내 의료기관의 수술 부위 감염률은 2∼9.7% 정도로 보고된다. 17일 질병관리본부 전국병원감염감시체계(KONIS)의 SSI 보고시스템에 따르면 2015년 기준 12개 수술의 SSI 비율은 4.9%(1682건 중 83건)였다. 결장 수술이 13.8%(189건 중 26건)로 가장 높았고 맹장수술 8.0%(448건 중 36건) 직장수술 7.7%(39건 중 3건) 위수술 3.9%(179건 중 7건) 등 순이었다.

또 2014년 기준 척추고정술의 SSI 비율은 1.89%(3175건 중 60건)로 몸속 인공삽입물 관련 7개 수술 중 심장동맥우회술(3.72%) 뇌실단락술(3.05%) 다음으로 많았다. 무릎 인공관절수술의 SSI는 1.33%(4127건 중 55건) 엉덩이인공관절수술은 1.32%(3572건 중 47건)로 보고됐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관계자는 “2012∼2017년 2월 접수된 수술 감염 의료분쟁 조정·중재 신청은 238건으로 전체 감염 관련 분쟁 신청(528건)의 45.1%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병을 고치러 갔다가 되레 심각한 병을 얻어 오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SSI 때문에 병원 재원 기간은 평균 5∼20일 늘어나고 의료비는 평균 215만원이 추가로 든다는 연구보고도 있다.

인공관절 등 정형외과 수술 감염 취약

인공관절 등 정형외과 수술에서의 감염 사고가 특히 취약하다.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김양수 교수팀은 2005∼2010년 정형외과 관련 의료소송 341건을 분석한 연구 논문을 지난해 대한정형외과학회지에 발표했다. 그에 따르면 치료 도중 환자에게 세균 등 미생물 감염이 일어나 소송에 이르게 된 게 89건(26.1%)이나 됐다. 절반가량(44.9%)이 수술 환자였으며 척추수술(50%) 인공관절수술(20%)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감염 원인은 황색포도알균이나 녹농균 결핵균 같은 여러 병원성 세균과 바이러스 등이 꼽힌다. 특히 항생제가 더 이상 듣지 않는 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알균(MRSA) 같은 ‘슈퍼 박테리아’ 감염도 적지 않아 치명적 위험 요인으로 지목된다.

실제 2008년 5월 송모(65)씨는 인공관절수술을 받은 나흘 뒤 수술 부위에 감염 증상이 나타났고 세균배양검사에서 슈퍼 박테리아 감염이 확인됐다. 송씨는 이후 재수술을 받았지만 계속 통증에 시달렸고 결국 인공관절을 제거했지만 한 달 뒤 패혈증으로 숨졌다.

수술용 칼 가위 집게 등 수술에 쓰이는 다양한 도구는 일회용 소모품을 빼면 모두 재사용된다. 감염 전파의 매개체가 될 수 있다. 의료진 손 씻기나 수술실 환경 등의 감염 관리와 함께 이런 인체 삽입용 수술도구의 소독과 멸균은 표준화되고 검증된 절차에 따라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 의료기구들은 인체 접촉 부위에 따라 고위험 준위험 비위험 기구로 나뉘며 멸균과 소독 수준이 다르다(표 참조).

임플란트, 생물학적 멸균 확인돼야

칼 등 기본적인 수술도구나 복강경 및 관절내시경 인공관절 치과기구 등 몸속 무균조직에 접촉하는 고위험 기구는 모든 형태의 미생물을 제거하는 멸균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하고 ‘멸균 지표’(기계·화학·생물학적 지표) 확인까지 이뤄진 뒤 환자에게 쓰여야 한다. 특히 ‘생물학적 지표(BI)’는 멸균에 가장 저항력 있는 미생물을 이용해 멸균 과정을 직접 측정하기 때문에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인정하는 가장 이상적 멸균 확인법이다.

CDC와 미국의료기기협회는 지침을 통해 “적절한 생물학적 지표가 포함된 멸균 평가 도구를 가급적 매번, 적어도 하루에 한 번씩 사용해야 하며 특히 몸속에 삽입되는 임플란트 기구는 매번 생물학적 지표로 감시하고 검사결과가 확인될 때까진 사용해선 안 된다”고 못박고 있다.

미국은 멸균품 관리와 멸균 감시에 대한 전문단체의 지침과 표준을 근거로 실질적이며 예고 없는 조사가 이뤄지도록 하고 있다. 태국은 보건부가 직접 나서 강제성(법적효력) 있는 지침을 만들어 멸균 확인된 의료기구만 사용토록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의료기관은 소독과 멸균에 대한 인식과 실천이 미흡하다. 2014년 질병관리본부가 ‘소독과 멸균 지침’을 만들었지만 강제력 있는 지침이나 표준이 아니어서 준수율이 떨어진다.

질병관리본부 조사결과 2015년 전국 165개 병원 중 59.8%(98곳)만이 수술 후 수술도구의 손 세척과 기계 세척을 병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멸균된 도구만을 사용하는지에 대한 보고조사는 아예 없었다. 앞서 2014년 조사에서 일부 병원은 생물학적 지표를 이용한 멸균 확인을 누락하거나 확인 주기를 권고안대로 지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4년마다 의료기관 인증평가를 통해 멸균 감시 여부를 조사하고 있지만 멸균 검사가 끝나기 전에 환자에 사용하는 경우가 많고 또 예고된 날짜에 병원 인증평가를 하기 때문에 그 기간에만 반짝 준비하는 등 실효성이 의문시된다”고 했다.

오염된 수술도구 세트 돌려 막기?

인공관절 등 정형외과 수술도구는 병원별 ‘돌려 막기’ 관행이 여전해 수술 감염 위험을 키운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정형외과 수술에는 인공관절 등 임플란트 자체뿐 아니라 이를 자르고 고정하기 위한 스크류 플레이트 해머 드라이브 전동드릴 등이 쓰인다.

대한외과감염학회 자문위원인 우진하 건국대병원 수술간호사는 “자주 하지 않는 수술이거나 구매할 여유가 없는 중소병원들은 3000만∼5000만원하는 고가 수술도구 세트(20∼100개로 구성)를 대여해 쓰는 경우가 많다”면서 “대부분 영세업체들이 적은 재고를 갖고 여러 병원에 돌려 가며 쓰는 게 다반사”라고 털어놨다.

우 간호사는 “또 대개 의료진이 수술 하루 전이나 직전에 기구를 가져오라고 하는 경우가 많아 도구를 멸균처리 할 시간이 충분치 않다”면서 “그만큼 비멸균 상태에서 환자에게 쓰일 가능성이 높다. 국내 정형외과의 70∼80%가 이렇게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의료기기업체 한 관계자도 “앞서 사용한 병원이 제대로 세척하고 멸균해서 주는 것은 아니니 더러운 상태에서 택배 배송되거나 영업사원이 트렁크에 실어서 전달하기도 한다. 소독이나 멸균 관리가 허술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병원에서 수술도구의 멸균을 담당하는 수술간호사회와 병원중앙공급간호사회는 최근 멸균 감시의 강화와 철저한 기록 관리를 권장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실제 의료현장에서 멸균 및 소독 지침대로 운용될 수 있도록 실질적 조사와 감시 체계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의료기관 인증제에 임플란트 기구의 멸균 확인에 대한 평가 항목을 강화하고 예고 없는 실사, 수술장 멸균 확인 인력 및 수술도구 확보를 위한 의료수가 현실화 등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우 간호사는 “아울러 외국에서처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병원별로 수술 감염률과 비용 등을 1년 단위로 투명하게 공개해야 환자들의 병원 선택에 도움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