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영 입력 2020.02.10. 14:05 수정 2020.02.10. 17:43 

      



달시 파켓·샤론 최·정재일 음악감독·제작자 곽신애 대표
달시 파켓 [달시파켓 페이스북 캡처·연합뉴스 자료 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봉준호 감독 영화 '기생충'이 "자막의 장벽을 뛰어넘어" 외국 관객들을 사로잡고, 마침내 난공불락과도 같은 아카데미 시상식까지 정복한 데는 번역의 힘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우리말을 영어 자막으로 옮긴 이는 미국 출신으로 한국에서 20년 넘게 자막 변역과 영화평론가 등으로 활동하는 달시 파켓(Darcy Paquet)이다. '기생충' 특유의 맛깔스러운 대사를 뉘앙스와 상징성을 잘 살려 번역해 호평을 받았다.

극 중 '짜파구리'(짜파게티와 너구리를 섞어 끓인 라면)를 라면과 우동을 합친 '람동(ramdong)'으로 옮긴 게 대표적이다. 기택(송강호)이 재학 증명서를 그럴듯하게 위조한 딸 기정(박소담)의 실력에 감탄하며 "서울대 문서위조학과 뭐 이런 것은 없냐"고 농담으로 묻는 대목에선 '서울대'를 외국인이 이해하기 쉽게 '옥스퍼드'로 바꿨다.

봉준호 감독과 최성재씨(오른쪽) 지난달 5일 열린 제77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이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이 통역을 맡은 최성재씨.[AP 연합뉴스 자료 사진] [2020.01.08 송고]

지난해 5월 칸국제영화제서부터 봉 감독 옆에서 통역을 도맡아 해온 최성재(샤론 최) 씨도 빼놓을 수 없다. 봉 감독 의도를 정확하게 살려 통역하는 것으로 이미 유명하다. 봉 감독은 그에게 '언어의 아바타'라는 수식어를 붙여줬다. 10일(한국시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줄곧 그는 봉 감독과 함께했다.

지난달 5일(현지시간)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어상을 받은 직후 봉 감독이 한 수상 소감을 세심한 언어로 통역해 주목을 받았다.

"자막, 그 1인치의 장벽을 뛰어넘으면 여러분들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습니다. (Once you overcome the one-inch tall barrier of subtitles, you will be introduced to so many more amazing films)" 최씨의 통역을 모은 유튜브 영상에는 그의 완벽한 통역에 놀라움을 표시하는 댓글이 국적과 관계없이 수없이 달렸다. 봉 감독과 인터뷰하던 해외 매체도 최씨에게 "당신도 스타"라고 치켜세웠을 정도다. 신상을 밝히기를 꺼리는 그는 전문통역사가 아니라 한국 국적으로 미국에서 대학을 나왔으며, 영화를 연출한 감독이기도 하다.

'소주 한 잔' [CJ엔터테인먼트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기생충' 음악을 맡은 정재일 음악 감독도 '기생충' 주역 중 한명이다. 봉 감독은 "우아하지 않는데, 우아한 척하는 음악"을 주문했고, 정 감독은 그런 의도를 반영해 음악을 완성했다. 올해 아카데미상 주제가상 예비후보에 오른 엔딩곡 '소주 한잔'은 정 감독이 작곡한 멜로디에 봉 감독이 가사를 입힌 곡이다. 정 감독은 지난달 26일 할리우드에서 열린 특별 시사회에서 오케스트라를 직접 지휘하며 라이브 공연을 선보이기도 했다.

'기생충' 속 자화상 [CJ엔터테인먼트 제공]

극 중 박사장네 벽에 걸린 아들 다송의 자화상을 그린 작가는 2000년대 초반 '북치기 박치기'라는 비트박스로 TV 광고에 출연해 화제를 모은 래퍼 정재훈(후니훈)이다. 아동 그림 느낌의 작품을 그리는 작가를 찾던 봉준호 감독과 이하준 미술감독은 '지비'라는 이름으로 미술계에서 활약하던 정재훈을 선택했고, 그가 '기생충'만을 위한 그림을 새로 그렸다. 영화 속에서 고액과외 면접을 보던 날, 기우(최우식)와 연교(조여정)가 자화상을 두고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관객에게 큰 웃음을 준다. 정재훈은 '기생충'에서 다송의 생일파티 장면에 단역으로도 출연했다.

영화 '기생충' 속 정재훈 [CJ엔터테인먼트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무엇보다 '기생충'이 제작된 데는 바른손 E&A 곽신애 대표의 공이 컸다.

봉 감독이 2015년 4월 건넨 15페이지짜리 시놉시스를 보고 흔쾌히 제작을 수락했다. 곽 대표는 "복이 넝쿨째 들어왔다. 저는 그저 서포터였을 뿐"이라며 자신을 낮췄지만 '기생충' 제작을 위해 아낌없는 지원을 했다. 그는 지난달부터 미국에 머물며 각종 시상식에 봉 감독과 함께 참석했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곽 대표는 1990년대 시네필 사이에서 필독서로 꼽히던 영화 전문잡지 '키노' 창간 멤버로 3년간 일했다. 이어 LJ필름, 신씨네 등 영화사에서 마케팅 업무와 프로듀서를 했다. 2010년 바른손 영화사업부 본부장과 바른손필름 대표이사를 거쳐 2015년 바른손이앤에이 대표이사가 됐고, 강동원 주연 영화 '가려진 시간'(2016)과 '희생부활자'(2017·공동제작)를 제작했다.

곽 대표 집안은 영화인 집안으로 유명하다. '친구'(2000)의 곽경택 감독이 오빠이고, '은교'(2012), '침묵'(2017)을 연출한 정지우 감독이 남편이다.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 [CJ ENM 제공]

fusionj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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