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이란서 퍼지는 코로나19, 시진핑의 일대일로 혈맥 끊나
채인택 입력 2020.03.03. 05:02 수정 2020.03.03. 07:07
일대일로 교두보인 두 나라서 맹위
이탈리아, G7 중 첫 일대일로 참여
중국 이민자 이탈리아 브랜드 제조
코로나19 확산시 계획수정 불가피
중국, 이란 수출입 3분의 1 차지해
이란 철도 건설사업, 일대일로 핵심
중국에서 이란 거쳐 유럽 가는 철길
동서양 잇는 21세기 실크로드 의미
코로나19의 전 세계 확산이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야심 차게 추진해온 일대일로(一對一路) 사업에 타격을 입힐까. 일대일로는 중국이 대대적인 인프라 투자로 건설과 지역개발을 결합해 유라시아 국가들과 연결하고 협동하는 글로벌 프로젝트다. 인프라 정비를 통해 교역과 투자, 그리고 자금의 왕래를 촉진하는 게 목표다. 중국은 건국 100주년인 2049년까지 이를 완성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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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유럽 일대일로 교두보서 코로나19
그런데 하필 일대일로의 중동 교두보인 이란과 유럽의 전초기지인 이탈리아에서 코로나19가 확산하고 있다. 그 타격으로 두 나라의 경제 활력이 떨어지면서 일대일로의 차질과 일정 변경이 불가피해질 것이란 전망이 고개를 들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웹사이트에 따르면 3월 2일 현재 이란에선 978명의 확진자와 54명의 사망자가, 이탈리아에선 1689명의 확진자와 35명의 사망자가 각각 발생했다. 이란과 이탈리아는 사망자 숫자에서 중국(8만26명 확진자에 2912명 사망)의 바로 뒤를 잇고 있다. 특히 이란의 확진자 대비 사망자 비율은 5.5%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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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대일로 동참 이탈리아, 중국 항공편 중단
AP통신에 따르면 이탈리아에선 지난 1월 31일 유럽의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견됐으며 3월 1일 현재(현지시간) 1694명의 확진자와 34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중국과 이란에 이어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사망자다. 첫 확진자는 1월 23일 밀라노로 입국한 2명의 중국인 여행자였다. 버스로 계속 여행하다 1월 30일 로마에서 확진을 받고 입원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즉시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이탈리아와 중국을 오가는 모든 항공편을 즉시 중단시켰지만, 확산을 막지 못하고 혼란에 빠졌다.
이런 이탈리아는 유럽에서 중국과 가장 가까운 나라로 평가된다. 지난해 3월 23일 중국과 일대일로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서방 주요 7개국(미국·일본·독일·영국·프랑스·이탈리아·캐나다) 중 첫 참여국이 됐기 때문이다. 유럽 순방 중이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가 체결식에 참석했다.
중국은 이탈리아 동북부 트리에스테 항구와 서북부 제노바 항구의 개발과 투자에 참여할 길을 열었다. 트리에스테는 발칸반도와 중유럽·동유럽으로 이어지며 제노바는 프랑스를 거쳐 서유럽 각지로 연결되는 지정학적 거점이다. 이탈리아 에너지·금속 업체들은 중국에 발전설비·플랜트·장비를 공급하기로 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MOU가 실현될 경우 미래 경제가치가 200억 유로(약 25조원)에 이를 것으로 평가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장기침체를 겪어온 이탈리아는 2018년 경제성장률이 1.5%인 데다 2018년 12월 기준 실업률은 10.3%에 이르렀다. 이탈리아로선 일대일로를 추진하는 중국의 투자를 받아 국내 인프라를 개발하고 대중 교역을 확충해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겠다는 포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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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만 중국인 이주민, 이탈리아 브랜드 제조
이탈리아에는 중국인 이주민도 상당수 거주한다. 독일의 온라인 통계포탈인 스태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이탈리아에는 2019년 1월 기준으로 29만9800명의 중국인이 정착했다. 각국 통계를 종합하면 유럽 지역에서 프랑스(약 70만)와 영국(약 46만) 다음으로 많다. 이탈리아 거주 외국인 중에는 루마니아(120만), 알바니아(44만), 모로코(42만)에 이어 네 번째다. 중국인들은 이탈리아 최대 차이나타운이 있는 패션 도시 밀라노와 섬유도시인 토스카나주 프라토에 몰려 산다. 특히 프라토에선 중국인 섬유업체에서 중국인 노동자들이 이탈리아 브랜드 제품을 제작해 ‘메이드 인 이탈리아’ 표시를 붙여 중국은 물론 전 세계에 팔고 있다. 미국 뉴요커는 프라토의 중국인들이 패스트 패션으로 시작해 중간급 브랜드 납품을 거쳐 세계적 고가 럭셔리 브랜드 하청을 맡을 정도로 성장했다고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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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유대인’ 원저우 출신이 90%
독일 국제방송 DW에 따르면 패션 수도로 불리는 밀라노의 교역업체 3만9242개 가운데 3012개가 중국인 이민 1세 소유다. 이민 2세 소유를 포함하면 전체의 13% 이상을 중국 커뮤니티에서 운영한다. 이탈리아에 이민한 중국인의 90% 이상이 저장(浙江)성 원저우(溫州) 출신으로 알려졌다. 원저우 상인은 상술이 뛰어나고 해외에 터를 잘 닦아 ‘중국의 유대인’으로 불린다. 원저우는 지난 2월 2일 코로나19 확산으로 발원지인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에 이어 두 번째로 도시가 봉쇄되기도 했다. 이처럼 이탈리아에서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중국과 추진하는 일대일로 프로젝트가 제대로 진행될지 의문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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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중국인 입국 금지했지만 확산 계속
이란에선 지난 2월 19일 순례자로 붐비는 시아파 성지 쿰에서 2명이 처음 확진을 받고 당일 사망했다. 중동의 첫 코로나19 사망자였다. 이란에선 마수메 에브테카르 여성·가족 담당 부통령과 이라지 하리르치 보건부 차관이 확진자에 포함됐고 지난달 28일엔 모하마드 알리 라마자니 다스타크 국회 부의장이 숨졌다고 관영 IRNA 통신 인터넷판이 보도했다. 이 통신은 이란 당국이 지난달 28일 수도 테헤란을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 중요한 종교행사인 금요 예배를 취소했다고 전했다.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탄생한 이슬람 공화국에서 금요예배가 중단된 것은 처음이다.
이란은 지난달 27일 중국 국적자의 입국을 금지했지만, 다음날 중국 적신월사에서 보낸 코로나바이러스 검사기구는 받았다. 이란은 2018년 5월 미국이 핵 합의에서 탈퇴하고 경제제재를 재개하면서 의약품이 부족한 상황이어서 당뇨·고혈압 등 기저 질환자들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란과 맞닿은 터키와 파키스탄은 국경을 닫았다. 이란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라크에선 지난달 26일 시아파 성지인 중남부 나자프에서 첫 확진자가 나왔다. 이라크와 국경을 맞댄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2일 첫 확진자가 나왔다고 알 아라비야 방송이 사우디 국영 SPA 통신을 인용해 보도했다. 확진자는 이란을 방문했다가 바레인을 경유해 귀국한 사우디 남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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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지정학적으로 동서양 잇는 혈맥
이런 이란은 사실 중동에서 중국 일대일로의 핵심 국가로 경제적으로 중국에 상당히 의존한다. 중국은 이란의 에너지를, 이란은 중국의 제조업을 각각 탐낸다. 중국과 이란은 교류가 활발하다. 2017년 중국은 이란 전체 수출의 31%, 수입의 37%를 차지했다. 이란에는 중국 대도시 직항 항공 노선은 물론 신강위구르의 우루무치를 경유해 베이징까지 가는 저가노선도 있을 정도로 교류가 활발하다.
중국이 이란에 탐내는 것은 또 있다. 사통팔달의 지정학적 위치다. 이란은 지리적으로 중국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가는 중간에 위치한다. 이란은 동쪽으로 인도아대륙의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 북쪽으로 중앙아시아의 투르크메니스탄, 서북쪽으로 카프카스 지역의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서쪽으로 터키, 서남쪽으로 이라크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북쪽으로 카스피해를 건너면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으로 이어진다. 남쪽으론 페르시아(또는 아라비아) 만을 사이에 두고 오만·아랍에미리트(UAE)·카타르·바레인·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와 마주 본다. 이란이 역사적으로 문명의 교차로이자 용광로 역할을 해온 배경이자 일대일로에서 이란이 무게 중심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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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에서 테헤란 거쳐 유럽 가는 철도
중국은 이란과 철도로 연결하는 프로젝트에 특히 신경을 쓴다. 중국 서부에서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그리고 이란과 국경을 맞댄 투르크메니스탄을 거쳐 이란의 테헤란까지 잇는 철도 연결을 추진해왔다. 중국의 태평양 지역 항구에서 철도를 통해 유라시아 대륙을 관통해 유럽까지 잇는 ‘유라시안 육로 교량’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블라디보스토크 같은 태평양 항구에서 유럽까지 이어지는 러시아의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뒤잇는 제2의 동서양 관통 철로다. 2016년 시험 운행 결과 중국 저장(浙江) 성 물류·상업 도시인 이우(義烏)에서 테헤란까지 14일 걸렸고 상하이(上海)에서 테헤란까지는 12일이 소요됐다. 현재 화물이 상하이 항구에서 내륙인 테헤란까지 가려면 30일 정도가 걸리니까 물류 시간을 절반 이하로 줄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러시아를 거치지 않고 중국에서 유럽으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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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이란 철도 현대화 작업 중단될까
중국은 현재 이란에서 철도 현대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수도 테헤란에서 서부 타브리즈를 지나 터키 및 카프카스로 이어지는 노선과 동북부 시아파 성지인 마슈하드로 이어지는 철도의 개량 작업이 한창이다. 이런 상황에서 벌어진 이란 북쪽의 투르크메니스탄, 동쪽의 아프가니스탄과 연결하는 기존 교량을 새롭게 강화하고 있다. 경제제재를 받는 이란에서 진행 중인 많지 않은 인프라 프로젝트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이란 내 중국인 노동자들의 격리나 철수 등으로 철도 프로젝트가 중단되면 일대일로는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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