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우리말 지켜낸 '말모이' '조선말 큰사전' 원고, 보물 된다
이기환 선임기자 입력 2020.10.08. 20:23
주시경이 참여한 한국 최초 한글사전 '말모이' 원고..'디딤돌' 역할
조선어학회서 13년간 작업한 '조선말..' 미공개 개인 소장본도 발굴
[경향신문]
일제강점기라는 혹독한 시련 아래 ‘우리말’을 지켜낸 노력의 결실을 보여주는 ‘말모이 원고’(등록문화재 제523호·왼쪽 사진)와 ‘조선말 큰사전 원고’(등록문화재 제524-1호, 524-2호·오른쪽)가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됐다.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8일 열린 제5차 문화재위원회 동산문화재분과 회의에서 ‘말모이 원고’ ‘조선말 큰사전 원고’ 등 2종 4건을 보물로 지정 예고한다고 밝혔다. 향후 30일의 예고 기간 각계 의견 수렴과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보물로 지정된다.
‘말모이 원고’는 학술단체인 ‘조선광문회’ 주관으로 한글학자 주시경(1876~1914)과 그의 제자 김두봉(1889~?), 이규영(1890~1920), 권덕규(1891~1950)가 집필에 참여해 만든 한국 최초의 한글사전 ‘말모이’의 원고이다. ‘말모이’는 말을 모아 만든 것이라는 뜻이다. 오늘날 사전을 의미하는 순우리말이다. ‘조선광문회’는 1910년 서울에 설립되었던 학술고전간행단체다.
주시경과 제자들은 한글을 통해 민족의 얼을 살려 나라의 주권을 회복하려는 의도로 ‘말모이’ 편찬에 매진했다. ‘말모이 원고’ 집필은 1911년 처음 시작된 이래 주시경이 세상을 떠난 1914년까지 이루어졌다. 본래 여러 책으로 구성됐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지금은 ‘ㄱ’부터 ‘걀죽’까지 올림말(표제어)이 수록된 1책만 전해지고 있다. 240자 원고지에 단정한 붓글씨체로 썼다. ‘알기, 본문, 찾기, 자획 찾기’의 네 부분으로 구성됐다.
‘알기’는 범례에 해당하는 6개 사항을 표시해 괄호 속에 품사를 제시했다. 뜻풀이는 한글 또는 국한문을 혼용해 서술했다. ‘찾기’는 색인 본문의 올림말을 한글 자모순으로 배열했고, ‘자획 찾기’는 본문에 수록된 한자 획수에 따라 낱말을 찾을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한자어와 외래어 앞에는 각각 ‘+’, ‘×’를 붙여 구분했다. ‘말모이 원고’의 가장 큰 특징은 이러한 체제가 한눈에 보일 수 있는 사전 출간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원고지 형태의 판식(板式·책을 쓰거나 인쇄한 면의 테두리 또는 짜임새)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마치 옛것과 새것이 혼합된 듯, 고서(古書)의 판심제(版心題)를 본떠 그 안에 ‘말모이’라는 서명을 새겼다. 원고지 아래 위에 걸쳐 해당 면에 수록된 첫 단어와 마지막 단어, 모음과 자음, 받침, 한문, 외래어 등의 표기 방식이 안내돼 있다. 1916년 김두봉이 이 ‘말모이 원고’를 바탕으로 문법책인 <조선말본>을 간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두봉이 3·1운동을 계기로 일제의 감시를 피해 상하이로 망명하고 이규영도 세상을 떠나면서 원고는 정식으로 출간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후 조선어학회의 ‘조선말 큰사전’ 편찬으로 이어져 우리말 사전 간행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 데 결정적인 디딤돌이 되었다.
이번에 함께 보물로 지정 예고된 ‘조선말 큰사전 원고’는 조선어학회(한글학회 전신)에서 13년간(1929~1942년) 작성한 사전 원고 필사본 교정지 총 14책이다. 한글학회(8책), 독립기념관(5책), 개인(1책) 등 총 3개 소장처에 분산돼 있다. 특히 개인 소장본은 1950년대 ‘큰사전’ 편찬원으로 참여한 고 김민수 고려대 교수 유족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말 큰사전 원고’의 ‘범례’와 ‘ㄱ’ 부분에 해당하는 미공개 자료이다. 이번 조사 과정에서 발굴해 함께 지정 예고하게 됐다.
‘말모이 원고’가 출간 직전 최종 정리된 원고여서 깨끗한 상태라면, 이 ‘조선말 큰사전 원고’ 14책은 오랜 기간 다수의 학자들이 참여해 지속적으로 집필·수정·교열 작업을 거쳤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의 증거물로 일본 경찰에 압수됐다가 1945년 9월8일 경성역(지금의 서울역) 조선통운 창고에서 우연히 발견됐다. 이를 바탕으로 1957년 ‘큰 사전’(6권)이 완성되는 계기가 됐다. ‘조선말 큰사전 원고’는 철자법·맞춤법·표준어 등 우리말 통일사업의 출발점이자 결과물로서 국어사적 가치가 있다. 그외에도 전 국민의 우리말 사랑과 민족독립 염원이 담겨있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1929년 10월31일, 이념을 망라해 사회운동가, 종교인, 교육자, 어문학자, 출판인, 자본가 등 108명이 결성해 사전편찬 사업이 시작됐다. 영친왕 이은(1897~1970)이 후원금 1000원(현재 기준 약 958만원)을 기부했고, 각지 민초(民草)들이 지역별 사투리와 우리말 자료를 모아 학회로 보내왔다. 계층과 신분을 뛰어넘어 일제의 우리말 탄압에 맞선 범국민적 움직임이 밑거름이 된 것이다.
이기환 선임기자 lk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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