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4류 정치, 3류 행정이 초일류 기업 발목 잡는 나라
조선일보
입력 2020.10.27 03:26
이건희 회장은 1995년 "우리나라는 정치는 4류, 행정은 3류, 기업은 2류"라고 일갈했다. 이 회장은 2류 삼성을 초일류 기업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마누라와 자식 빼곤 다 바꾸라"면서 강도 높은 혁신 작업을 지휘했다. 그 결과 삼성은 반도체, 휴대폰, TV 부문에서 세계 1위 기업이 됐다. 사진은 2002년 삼성그룹 사장단 워크숍 장면.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은 생전 한국 사회를 향해 뼈아픈 지적들을 종종 던졌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충격을 준 것이 “정치는 4류, 행정은 3류, 기업은 2류”라고 일갈한 발언이다. 이 회장은 1995년 중국 방문길에서 “중국은 국가주석이 ‘연구·개발 비용은 얼마냐’고 물을 정도로 반도체에 관심이 많은데, 우리는 반도체 공장 건설을 신청해도 허가가 안 나고 도장은 1000개나 필요하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낡은 행정과 우물 안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뜻이었다. 25년이 흐른 지금, 정치와 행정은 얼마나 달라졌나.
4류 정치, 3류 행정에도 불구하고 삼성이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것은 이 회장의 탁월한 리더십과 임직원들의 뼈를 깎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이뤄낸 혁신 여정은 한국 산업계에 새로운 성장 모델이자, 자극제 역할을 했다. 현대·기아차, 포스코, LG화학, 현대중공업 등 각 분야 국내 대표 기업들이 고속성장에 질적 도약까지 이뤄내면서 글로벌 일류 기업 반열에 속속 가세했다.
기업들이 환골탈태의 노력으로 세계 일류로 도약하는 동안 우리 정치와 행정은 발전 대신 뒷걸음질 쳤다. “정치는 4류” 발언 이후 정권이 다섯 번이나 바뀌었지만, 국민 통합과 협치의 정치는 찾아볼 수가 없다. 내 편, 네 편을 가르는 정치권의 진영 논리는 더 심각해졌다. 기업이 대통령 요구를 따르지 않으면 그 대통령의 보복을 받고, 따르면 다음 정권의 공격을 당한다. 독재시대가 끝났는데도 정권이 기업을 주머니 속 공깃돌처럼 여기는 것도 달라진 것이 전혀 없다.
시대에 뒤떨어진 행정은 삼성 반도체 송전선 연결에만 5년을 허비하게 만들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상속세율 탓에 삼성 이재용 부회장 등은 경영권 방어를 위해 필수적인 이건희 회장 지분을 상속하는 데만 10조원이 넘는 세금을 내야 한다. 외국처럼 기업 경영을 그만두고 기업을 팔 때 세금을 내게 할 수는 없나. 경영자들이 상속 문제에 몰두하게 만드는 것이 국민과 경제에 무슨 득이 되나. 경영에 몰두하게 해 이익을 많이 내고, 많이 고용하고, 많은 법인세를 내는 것이 더 득 아닌가. 현 정부는 투기자본의 경영권 공격을 더 용이하게 만드는 기업규제 3법까지 추진하고 있다. 기업 오너와 최고경영자가 경영권 방어에 온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상황에서 그 기업이 어떻게 경쟁 우위를 유지할 수 있겠나.
이건희 회장은 “제트기가 음속 두 배로 날려면 엔진 힘만 두 배로 키운다고 되지 않고, 재료·소재부터 다 바꿔야 한다”고 했다. 기업만이 아니라 정치권과 정부까지 다 바뀌어야 한다는 얘기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더 절실하다. 그러나 지금 한국 정치가 그런 역할을 해 줄 가능성은 ‘0’에 가깝다. 많은 표를 가진 노조와 대중에 영합할 가능성이 훨씬 크다. 국민이 눈앞의 이익이 아니라 더 멀리, 더 크게 보고 판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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