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사회

“그냥 둬선 안되겠다”… 유럽, 중국을 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감투봉 2022. 4. 11. 19:56

“그냥 둬선 안되겠다”… 유럽, 중국을 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우크라 침공한 러시아 두둔 ‘충격’

입력 2022.04.11 03:00

 

 

 
 

유럽에서 ‘중국발(發) 안보 위기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유럽과 중국은 그동안 중국의 신장·위구르 인권 탄압과 중국 기술 기업에 대한 금수 조치 등 문제로 여러 차례 갈등을 빚으면서도, 기본적으로 우호 관계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중국을 바라보는 유럽의 시선이 완전히 달라졌다. 중국은 유럽에 ‘현존하는 실체적 안보 위협’이며, 중국에 대한 높은 경제 의존도가 유럽에 치명적인 비수(匕首)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유럽에서 쏟아지고 있다.

 
7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본부에서 나토 외교장관 회의가 열리고 있다. 2022.4.7 /AP 연합뉴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지난 7일(현지 시각) 벨기에 브뤼셀에서 외무장관 회담을 갖고 오는 6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릴 나토 정상회담에서 ‘나토 안보에 미치는 중국의 영향’을 정식 의제로 채택하기로 했다. 지난달 31일 ‘2021 나토 연례 보고서’에서 “중국의 야심과 공세적 행동이 (냉전 이후 서방이 구축해 온) 규칙 기반의 세계 질서와 안보 영역에 체계적 도전을 가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놓은 지 일주일 만이다.

유럽의 안보를 책임지는 나토가 중국 문제를 정식 의제로 올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독일 일간 디자이트와 주간지 슈피겔 등은 “중국과 유럽연합(EU) 간엔 신장·위구르 인권 문제, 대만 문제, 리투아니아에 대한 무역 보복 문제 등 해묵은 갈등이 있었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시진핑 국가 주석이 대놓고 푸틴 대통령을 포용하면서 갈등의 차원이 달라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러시아가 유럽에 가하는 안보 위협을 뻔히 알면서도 러시아를 지원함으로써 유럽에 사실상의 ‘적대적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럽과 중국은 최근 거친 발언을 주고받고 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지난달 23일 “중국이 노골적 거짓말과 허위 정보 확산 등으로 러시아에 정치적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집행위원장은 지난 1일 시진핑 주석과 화상으로 만난 제23차 중·EU 정상 회의에서 “러시아 제재를 지원하지 않겠다면 최소한 방해하지 말라”며 시 주석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호세프 보렐 EU 외교위원장은 “우리(EU)가 무슨 얘기를 해도 시 주석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고 하고 싶은 말만 했다”며 “중국과 EU가 상이한 ‘가치관’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외교부는 이에 대해 “(EU가) 부적절한 발언을 일삼고 있다”고 반발했다. 중국 외교부는 지난달 30일 “중국은 역사의 옳은 편에 서 있으며, 중국에 대한 비난은 스스로 무너질 것”이라고 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서방의 러시아 제재는 일방적이고 불법적”이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미국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러시아를 두둔하는 중국의 행태가 유럽과 중국 관계에 공포를 불어넣었다”며 “유럽 국가들은 이제 중국을 냉전 후 질서와 안보 구조에 대한 도전자로 인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양측 갈등이 경제 분야로 확산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폴리티코는 EU 고위 인사를 인용해 “중국의 러시아 지원이 확인되면 EU가 중국에 무역 제재를 부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과 ‘경제 전쟁’을 벌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이 유럽에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러시아가 천연가스 등을 무기로 유럽을 공격했듯이, 중국도 이런 유럽의 약점을 파고들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2020년 기준 EU의 최대 무역국으로, 총수입의 약 20%, 총수출의 1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유럽이 집중 투자하는 친환경 에너지 인프라도 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독일 베른로이터 리서치에 따르면, 태양광발전 설비 부품 시장에서 중국산이 차지하는 비율은 부품에 따라 64~97%에 달한다. 현재 에너지는 러시아에, 미래 에너지는 중국에 저당 잡힌 셈이다. 얀 리파브스키 체코 외무장관은 “유럽에 우크라이나 전쟁이 ‘허리케인’이라면, 중국은 ‘기후변화’에 해당하는 문제”라며 중국을 ‘더 장기적이고 치명적인 문제’로 평가했다.

중국 변수는 유럽 각국의 정치 격변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러시아가 중국 지원을 등에 업고 서구의 경제 제재 위기를 극복한 뒤, 유럽에 대한 본격적인 보복에 나설 수 있다. 이럴 경우 유럽의 에너지 가격은 폭등하고 각국의 집권 세력이 흔들릴 수 있다.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는 “지난해보다 연료 가격이 20~30% 급등하면서 마크롱 대통령의 지지도가 큰 타격을 받았다”며 “추가적 에너지 공급 불안은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 각국에 연쇄적으로 정치적 불안을 가져올 공산이 크다”고 전망했다. 이는 유럽 각국의 정권 교체로 이어져 반(反)푸틴으로 뭉친 유럽의 공동 대응 전선이 깨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