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럼회’ 10여명이 쥐고 흔드는 검수완박
민주당 박광온 국회 법사위원장은 이날 본지 통화에서 “박병석 국회의장이 여야 간 중재를 원하고 있는데 안건조정위를 가동하면 협상 분위기를 깰 수 있기 때문에 일단 (조정위 구성을) 보류했다”고 했다. 다른 민주당 관계자도 “청와대도 당 지도부에 속도 조절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다만 4월 중 법안의 처리가 필요하다는 입장은 바뀌지 않은 만큼, 합의안 도출에 실패할 경우 법안을 강행 처리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당내 새 주류로 자리 잡은 강성 초선 의원 모임인 ‘처럼회’가 여전히 검수완박 강행을 압박하고 있다. 검수완박 법안 통과를 위해 ‘꼼수 탈당’을 자청한 민형배 의원, 법사위에서 법안 논의를 주도하는 김용민·최강욱 의원 등이 모두 처럼회 소속이다.
처럼회 의원 10여 명은 지난 대선 패배 이후 당의 리더십이 공백인 상황에서 영향력을 키웠다. 원내대표 선거 당시 최강욱 의원을 밀었던 10여 명이 결선투표에서 박홍근 현 원내대표에게 쏠렸고, 이들의 지지로 당선된 박 원내대표가 검수완박에 적극 나서게 됐다는 것이다. 한 수도권 중진 의원은 “아무래도 강성 목소리를 내는 의원들의 의견이 과포장되는 경향이 있다”며 “강경파 의원들이 앞장서고 초선 의원들이 쏠리는 현상이 반복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무소속 양향자 의원은 본지 통화에서 “지금 상황은 ‘처럼회가 곧 민주당’”이라고 한 바 있다. 현재 민주당 의원 172명 중 초선은 80명으로 절반가량이다. 초선들의 튀는 행동을 지도부와 중진이 조율하는 당내 문화가 사라진 것도 이번 검수완박 폭주 배경으로 꼽힌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이날 검수완박 법안이 새 정부 출범 이후 국회에서 통과되면 윤석열 대통령이 ‘당연히’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수위 문의에 법제처도 검수완박 법안이 ‘위헌성이 있고 법 체계상 정합성에 문제가 있을 뿐 아니라 국민의 인권을 후퇴시키고 국제 형사사법 절차에 혼돈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한다.
하지만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4월 국회가 시간이 많지 않다”며 “국민의힘 몽니에 국회 시간을 더는 허비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권력 기관 개혁을 막기 위한 마타도어는 중단돼야 한다”며 “수사·기소 분리는 참여 정부 때부터 오랜 기간 숙의한 대국민 약속”이라고 했다.
이번 검수완박 법안 추진을 주도하는 처럼회는 ‘문재인 정부 내 검찰 개혁’을 목표로 2020년 6월에 만들었을 땐 김용민·김남국·김승원·황운하·이탄희·최강욱 의원이 회원이었다. 여기에 민형배·이수진·장경태 의원 등이 합류하면서 숫자가 10여 명으로 늘었다.
민주당은 검수완박을 추진하면서 처럼회 소속 의원을 전진 배치했다. 법안 심사 1소위에 검찰 출신 송기헌 의원 대신 최강욱 의원을 넣었다. 지난 18일에는 역시 검찰 출신인 소병철 의원은 법사위에서 빠지고 대신 ‘꼼수 탈당’ 주역인 민형배 의원이 배치됐다. 김남국·김용민·이수진 의원까지 5명의 처럼회 회원이 법사위에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검수완박 법안의 최전선인 법사위에서는 처럼회가 사실상 주류라는 말도 있다”고 했다. 처럼회 의원들은 강성 지지자 바람몰이를 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이수진 의원은 민 의원 탈당 직전 유튜브를 통해 “내가 탈당하겠다”고 했고, 다른 의원들 역시 페이스북 등을 통해 연일 강성 메시지를 내고 있다.
이들의 출신이나 구성은 다양하다. 변호사인 최강욱 의원은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출신이고 이수진 의원은 이른바 ‘사법 농단’ 의혹 폭로자로 부장 판사 출신이다. 황운하 의원은 경찰 출신, 변호사 출신 김남국 의원은 친명(親明·친이재명)계 핵심이다. 민형배 의원은 전남대 운동권 출신의 해직 기자로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에 근무했다.
이 중 일부는 각종 범죄에 연루돼 재판받거나 수사받고 있다. 이들이 주도하는 검찰 수사권 박탈 명분이 국민이 아니라 자신들 때문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는 근거다. 황운하 의원은 2018년 울산 시장 선거 개입과 청와대 하명 수사 의혹 등으로 기소됐고, 최강욱 의원은 ‘채널A 검언 유착 의혹’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아들 인턴 활동 확인서 허위 작성’ 등으로 재판 중이다. 변호사인 김남국 의원도 지난 대선 과정에서 한 발언으로 수사받고 있다.
문제는 이들의 강경 행보를 막을 만한 세력이나 인물이 당내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처럼회 활동 초기에는 ‘윤석열 출마 금지법’을 내놓는 등 급진적 활동을 하자 이낙연 당시 대표가 “조금 과하다”고 언급하는 등 제약을 걸었다. 하지만 대선 패배 이후엔 분위기가 달랐다. 한 수도권 지역 재선 의원은 “윤호중 비상대책위원장은 대선 패배 직후 리더십이 흔들릴 때 초선 의원들에게 기댔고, 박홍근 원내대표 또한 처럼회에 표를 받은 빚이 있다”고 했다. 지도부 ‘투 톱’은 이들 행동에 제약을 거는 대신 검수완박에 앞장서고 있다. 당내 신주류 세력으로 떠오른 친명계 역시 마찬가지다. 처럼회 소속 김남국 의원은 동시에 친명계 ‘7인회’에 속해 있고, 다른 의원들 역시 검수완박에 부정적이지만 대놓고 반대 메시지를 내놓지 않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현재 처럼회의 기반인 강성 당원·지지자들과 이재명 전 지사의 지지 세력이 일부 겹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 강성 지지자들은 여의도 당사 앞에서 항의 시위를 하거나 검수완박에 반대하는 의원들에게 ‘문자 폭탄’을 날리고 있다.
당내에서는 상황을 정리해야 할 중진 의원들이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천권만 바라보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조응천 의원은 “나는 솔직히 우리 당에 이재명계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우리 당내에는 검수완박계와 ‘검수덜박계’만 있다”고 했다. 실제로 최근 송영길 전 대표의 서울 시장 공천 배제를 두고 친명·비명(非明)은 공개적으로 부딪쳤지만, 검수완박을 두고 당내 기존 계파가 다툼을 벌인 적은 없었다. 한 비명계 의원은 “당 상황이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탄 기세이기 때문에 뭐라고 반대할 수도 없는 분위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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