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사회

중재안, 원전·블랙리스트 수사 못하고 ‘부패사건’ 대장동은 수사 가능

감투봉 2022. 4. 23. 07:59

중재안, 원전·블랙리스트 수사 못하고 ‘부패사건’ 대장동은 수사 가능

 

[검수완박 중재안 합의]
[news Focus] 검수완박 합의안 5대 문제점

입력 2022.04.23 03:45

 

여야가 22일 합의한 박병석 국회의장의 ‘검수완박’ 중재안이 공개되자 법조계는 “기존 민주당 안이 유예된 것일 뿐 문제점은 그대로”라고 평가했다. 중재안은 검찰에 수사권이 있는 6대 범죄 중 부패·경제 범죄는 한시적으로 남겨 두고 공직자·선거·방위사업 범죄, 대형 참사는 삭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법조인들은 “정치권의 부정과 불법의 처벌을 어렵게 하겠다는 의도가 보인다”고 지적했다.

중재안에는 또 검찰이 경찰 송치 사건을 직접 보완수사를 하는 과정에서 추가 범죄 혐의를 발견하더라도 그것을 수사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차진아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중재안 내용은 검사를 영장 신청 주체로 규정한 헌법과 충돌 소지도 존재한다”고 했다.

 
 
박병석 국회의장이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장실에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과 관련한 내용이 적힌 메모를 손에 들고 있다. /이덕훈 기자 ①공직자 직권남용 수사 못 해

중재안 내용이 입법화되면, 검찰은 뇌물 수수 등 공무원의 부패 범죄는 수사할 수 있어도 직권남용 같은 직무상 범죄는 수사할 수 없다. 직권남용 수사의 대표 사례는 지난달부터 서울동부지검에서 수사 중인 ‘산업부 블랙리스트’ 사건이 있다. 대전지검의 ‘월성 원전 경제성 조작 사건’도 여기에 해당한다.

한 법조인은 “정권을 운영하는 공직자들에 대한 사정(司正) 역량이 급격하게 쪼그라들 것”이라고 했다. 그는 “최근 고위 공직자 수사는 대개 직권남용 수사에서 출발해 ‘금품 수수’ 등 다른 혐의가 드러나는 경우가 상당수”라며 “서로 연결된 범죄에 대한 경계가 애매한데 중재안이 ‘부패’ 수사권만 검찰에 남겨 놓은 것은 코미디”라고 했다. 중재안에는 전국의 6개 특수부를 3개로 줄이는 내용도 들어갔다.

또한 법안이 시행되면 검찰은 4개월 유예 기간 내에 ‘블랙리스트’ 사건 등은 경찰로 다 넘겨야 한다. 법조계에서는 “대표적 독소 조항”이라고 평가가 나왔다. 검찰 관계자는 “‘산업부 블랙리스트’ 사건의 경우 피해자 범위가 넓고 확인해야 할 부분이 많아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며 “수사를 중단하라는 얘기나 다름없다”고 했다. ‘월성 원전’ 사건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된 문재인 청와대 인사들의 수사가 남아있는데 영향을 받을 것이란 말이 나온다.

대장동 사건, 성남 CF 후원금 의혹, 이재명 전 경기지사의 변호사비 대납 의혹 등은 검찰이 경찰에 넘기지 않아도 된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배임 혐의 등이 적용되는 ‘경제 범죄’에 해당하는 만큼 4개월 이내에 넘길 필요가 없다는 분석이다.

②선거 사건 수사 차질 예상

선거 사건은 공소시효가 6개월로 모든 범죄 가운데 가장 짧은 편이고 적용 법리도 복잡하다. 검찰 ‘공공수사부(옛 공안부)’의 전문 수사 인력들이 경찰을 지휘하면서 6개월 이내에 기소 여부를 결정해왔다. 중재안이 시행되면 검찰은 선거 사건 수사에서 손을 떼야 한다. 법조계 관계자는 “선거 사건 일체를 당장 경찰에 넘긴다면 수사에 상당한 공백이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경찰은 검찰보다 국회의원 등 정치권의 ‘외압’에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평가가 많다”며 “선거 수사가 정치 권력에 휘둘릴 수 있다는 얘기”라고 했다."중재안이 시행되면 당장 오는 6월로 예정된 전국 동시 지방선거부터 경찰이 모든 선거 사건을 전담하게 된다. 김후곤 대구지검장은 이날 “지방선거를 코앞에 두고 수사를 못 하게 하면 그 혼란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글을 검찰 내부망에 올렸다. “이제부터 정치인들이 발 뻗고 잠을 자게 됐다”는 말도 검찰 내부에서 돌았다.

한편, 문재인 청와대 인사 상당수가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지만 다른 관련자들에 대한 검찰 수사가 아직도 진행 중인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은 선거 사건에 해당하기 때문에 중재안 시행 4개월 이내에 경찰로 넘어가게 된다.

③대형 참사 효율적 대처 못 할 듯

중재안은 대형 참사와 방위사업 수사도 경찰에 넘기도록 했다. 대형 참사 역시 사실관계 파악이나 법리 적용이 까다로운 사건에 속한다. 법조인들은 “초동 단계에서부터 검경 합동수사에 들어가는 게 효율적인데 중재안은 원천적으로 이를 불가능하게 만들어놨다”고 했다. 방위사업 범죄 수사가 왜 검찰 수사 대상에서 제외돼야 하는지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많았다. 일선의 한 검사는 “아무도 설명하지 않는다. 법이 장난인가”라고 했다.

④檢 보완 수사 시 새 혐의 수사 못 해

중재안이 기존 민주당 ‘검수완박 법안’과 다른 점은 검찰이 경찰이 송치한 사건에 보완 수사를 요구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 직접 수사를 할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여야는 이를 경찰에 대한 검찰의 ‘견제 장치’로 진일보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문제는 검찰이 보완 수사를 하면서 새로운 범죄 혐의를 발견하더라도 수사를 할 수 없게 해놨다는 점이다. 이호선 국민대 교수는 “여야가 ‘경찰 송치 사건의 단일성과 동일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속에서 수사할 수 있다’고 규정했는데 이는 보완 수사 중 새로운 피해를 발견해도 피해를 구제할 수 없는 결과를 낳게 된다”고 했다. 한 검사는 “보완 수사 과정에서 범죄 수익 은닉, 무고, 위증 등의 새로운 혐의가 발견되더라도 앞으로는 수사가 불가능하다는 뜻”이라고 했다.

⑤”위헌성 해소 못 해”

중재안에 대해 “여전히 위헌(違憲) 소지가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리나라는 헌법 12조 3항과 16조를 근거로 강제수사 시 체포·구속·압수수색 영장의 신청 주체를 ‘검사’로 규정하고 있다. 검찰이 수사권을 갖고 있다는 걸 전제로 하는 것이란 해석이 많다. 그런데 중재안은 검찰의 일부 수사권을 한시적으로 인정하고 다른 수사기관의 역량이 일정 수준에 이르면 직접 수사권을 폐지한다는 내용이다. 법조인들은 “위헌성의 문제가 전혀 시정되지 않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