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사회

“주민들이 무슨 죄?” 동네 떠나가라 욕설에 죽창·수갑까지 등장했네

감투봉 2022. 6. 11. 16:06

“주민들이 무슨 죄?” 동네 떠나가라 욕설에 죽창·수갑까지 등장했네

[아무튼, 주말] 한 달째 시위 이어지는
文 사저 평산마을 가보니

입력 2022.06.11 03:00
지난 5일 경남 양산 평산마을에서 한 보수 단체 회원이 문재인 전 대통령을 규탄하는 내용의 현수막을 배경으로 시위를 하고 있다./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이곳에 생쥐가 웬말이냐. 생쥐 잡으러 가자!” “(김)정숙아 나와라. 나랑 놀자!”

일요일인 지난 5일 경남 양산 하북면 평산마을. 주민 90명이 사는 작은 시골 동네가 이른 아침부터 온갖 소음으로 들썩였다. 지난달 10일 퇴임 후 이곳에 내려와 사는 문재인 전 대통령을 향해 보수 시위 단체들이 내는 소리였다. 문 전 대통령 사저에서 100여 미터 떨어진 1차선 도로의 확성기를 단 차에서 시끄러운 음악과 고성이 흘러 나왔다. 시위 단체들은 억세게 비가 내리는 날씨에도 마이크를 잡고 문 전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를 비방하는 말을 쏟아냈다. 자신을 보수 성향 단체 ‘자유연대’ 소속이라고 밝힌 한 시위자는 “문재인이 나를 (불법 시위로) 고소해서 이혼했다”며 “문재인은 가정 파괴범”이라고 했다. 천막 아래로 비를 피한 한 집회자가 “문재인, 오늘은 성당에 안 가나?”라고 하자, 다른 이가 “우리한테 쫄아서 집에서 못 나오나 보다”라고 했다. 마을의 유일한 차도는 집회 차량과 경찰, 관광객 차량이 뒤엉켜 종일 정체였다. 연휴를 맞아 문 전 대통령 사저를 구경하러 온 가족들도 눈에 띄었다. 아버지 손을 잡고 시위대 옆을 지나던 한 초등학생이 ‘문죄인 사형’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보고 “왜 대통령 이름을 저렇게 써놨어?” 하고 물었다.

문 전 대통령이 평산마을에 내려간 지 한 달. 집회에 대한 여론 악화와 경찰의 일부 집회 불허로 시위 강도가 다소 떨어지긴 했지만, 집회에 따른 문제는 여전히 심각해 보였다. 특히 주민들의 고통이 커지고 있다. 평산마을 담벼락에는 ‘집회로 인하여 노인들 병들어 간다’는 평산마을 주민들의 호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마을 주민 10여 명은 환청이나 식욕 부진, 불면을 호소하며 최근 병원 진료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주민은 “(소음에) 귀가 아파 보청기를 뺐다”고 했다.

새벽에 색소폰 연주, 욕설까지

평산마을 시위대는 지난달부터 문 전 대통령 사저 앞에서 일상 생활이 어려울 정도의 소음을 내는 방식으로 반대 집회를 하고 있다. 스피커로 장송곡이나 국민교육헌장 녹음을 방송하고, 야간에는 색소폰 연주 음악을 틀기도 한다. 집회 소음 규정을 피하기 위해 편법도 동원하고 있다. 현행 집회 관련 법규상 주거 지역은 65데시벨(dB) 이상(오후 6시 전 기준) 소음이 10분 이상 지속되면 경찰이 단속할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 일부러 5분가량 소음을 냈다가 소리를 끈 뒤 다시 내는 식이다. 이날 시위대 바로 옆에서 스마트폰 소음 측정 앱으로 재 보니 70dB을 수시로 넘었고 최고 83dB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소음이 길게 이어지지 않아 경찰은 별달리 제지하지 않았다.

사저 앞 시위자들은 최근 집회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커지자 소음을 줄이는 대신 문 전 대통령 측을 자극하는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한 보수 단체는 경찰에 ‘풍선 전시회’라고 집회 신고를 한 뒤 실제로는 사저 앞 도로 철조망을 따라 문 전 대통령에 대한 욕설·비방이 담긴 현수막을 걸어놓고 반대 시위를 하고 있었다. 이 단체 집회자는 아예 도로 옆에 텐트를 친 채 사저 앞에서 숙식하며 시위를 벌였다. 한 보수 성향 유튜버는 사저 앞 철조망에 ‘문제인 체포 염원 수갑’이라는 현수막과 함께 플라스틱 수갑 200여 개를 달아놨다. 이 유튜버는 해당 철조망을 관리하는 인근 통도사에서 ‘현수막은 놔두더라도 수갑은 내려달라’고 요청하자 차도를 따라 대나무 줄기를 세워 밧줄로 연결한 뒤 줄에 수갑을 매달았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과거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민중 봉기를 부추기는 노래인 죽창가를 올린 것을 비꼰 것이다. 또 다른 집회자는 스피커로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틀어놓은 채 “(문재인) 밖으로 나오라”고 외치며 말춤을 췄다.

마을 주민들은 “경찰이 시위대를 적극 제지하지 않는다”며 불만의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이 소음을 야기하는 집회를 방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현장에서 본 경찰은 교통 정리를 하거나 욕설을 하는 시위자에게 경고하는 정도에 그쳤다. 한 주민은 “경찰들이 깡통을 몸에 달고 다니며 욕하는 요주의 시위자 뒤를 마치 왕을 따라다니는 상궁들처럼 줄지어 쫓아다니기만 하는 모습을 보고 한숨밖에 안 나오더라”고 했다. 경찰 관계자는 “시위 초기에 있었던 밤샘 확성기는 이제 사라졌고, 확성기 소음 정도도 규정을 지키고 있다”며 “육성으로 소리 지르거나 원색적인 욕설을 아예 막을 수는 없어 반대 진영 간 싸움으로 번지지 않도록 제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저 앞 시위에 따른 주민 피해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경찰에 따르면 일부 시위 단체는 다음 달 1일까지 평산마을 13곳에서 100여 명 정도가 참여하는 집회를 신고했다. 문 전 대통령 사저 앞과 평산 마을회관, 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한 번 들른 냉면 집, 성당 10곳 등이 집회 신고 지역이다. 한 단체는 문 전 대통령이 어느 성당에 갈지 몰라 양산시 성당 10곳 전체에 집회 신고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시위대는 문 전 대통령을 체포하라고 주장하며 사저 앞 도로변에 모형 수갑을 수십 개 걸어놨다./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정치권으로 번진 사저 집회 논란

문 전 대통령 사저 앞 집회를 둘러싼 논란은 정치권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100m 이내 시위 금지’ 대상에 전직 대통령 사저를 넣는 법안을 발의했다. 한병도 민주당 의원은 이와 별도로 집회 및 시위 주최자의 준수 요건을 강화하는 내용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인의 명예를 지속적으로 훼손·모욕하거나 사생활의 평온을 뚜렷하게 해치는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한 의원은 “타인에게 막대한 피해를 끼치는 악성 집회를 제한하고 국민 불편을 최소화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논란에 가담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7일 사저 집회에 대해 묻는 기자들에게 “대통령 집무실(주변)도 시위가 허가되는 판이니까 다 법에 따라 되지 않겠느냐”고 답했다. 이에 민주당 측은 “윤 대통령이 욕설 시위를 방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지난 정권에서 집회를 적극 이용했던 민주당의 내로남불’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한국헌법학회장을 지낸 신평 변호사는 “문 전 대통령 집 주위에서 떠드는 이들도 잘못이지만, 이 모든 일의 시원(始原)에는 문 전 대통령의 무책임한 팬덤 정치 편승과 방치, 조장이 있다”고 했다.

사저 주변 주민들은 한 달째 이어지는 집회로 인한 소음 피해를 호소하는 현수막을 걸어놨다./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정권 교체 때마다 반복

정치권에서는 자리에서 물러난 전임 대통령을 겨냥한 모욕적 집회나 시위를 벌이는 행태가 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헌법에서 보장한 표현의 자유나 집회·결사의 자유를 넘어 특정인 모욕 주기식 테러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대통령이 물러난 뒤 자택 앞으로 몰려가 욕설과 비방을 쏟아내는 ‘혐오 시위’는 반복되고 있다. 지난 2017년 10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서울 논현동 사저 앞에선 4개월 동안 진보 단체의 시위가 열렸다. 당시 ‘쥐를 잡자 특공대’와 ‘이명박심판범국민행동본부’ 등의 단체는 이 전 대통령 구속을 촉구하면서 1인 시위, 단식 운동, 촛불 집회 등을 이어갔다. 이 전 대통령이 감옥에 갇힌 그림을 그린 팻말을 들고 “쥐XX 나와라” 같은 욕설을 외치기도 했다. 민주당의 박영선·민병두 전 의원 등이 시위 현장을 찾아 시위대 지지 발언도 했다. 같은 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경남 봉하마을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 석방을 촉구하는 태극기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진보 성향 유튜브 채널 ‘서울의 소리’는 최근 보수 단체의 양산마을 시위에 맞서 윤 대통령 자택인 서울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앞에서 규탄 시위를 벌이겠다고 예고했다.

민주당 출신 금태섭 전 의원은 “법에 따라 시위해도 괜찮다는 윤 대통령이나, 법 개정으로 사저 앞 시위를 막으려는 민주당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며 “전직 대통령에 대한 도 넘는 시위가 반복되는 악순환을 끊으려면 대통령이나 야당 모두 법이 아닌 정치로 풀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현재 민주당이 하려는 것처럼 법 개정으로 해결하려 하면 시위대는 더 신이 날 것”이라며 “윤 대통령이 ‘과격 시위는 우리 정치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는 정치적 메시지를 내고, 민주당에서도 ‘이전에 우리도 과격 시위를 자제해야 했다’고 인정하면 사저 앞 시위자들의 명분도 약해지고 한국 정치도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