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 여사 옷값,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사건 될까 [법없이도 사는 법]
그런데 2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은 항소일로부터 한 달이 다 돼가는 현재까지 첫 기일도 잡지 않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청와대가 항소를 취하하지 않는 한 오는 5월 9일까지인 문 대통령 임기 내에 판결 확정으로 정보가 공개될 일은 없어졌습니다.
문 대통령 임기가 끝나면 의전비용 관련 정보는 ‘대통령지정기록물’이 될 확률이 높습니다. 청와대는 소송에서 의전비용에 대해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될 예정이어서 공개대상이 아니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대통령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대통령기록물관리법)은 국가안전보장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하거나 국민경제 안정을 저해할 수 있는 기록물 등은 ‘대통령 지정 기록물’로써 최장 15년간(사생활 관련 기록물은 30년)비공개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의전비용의 경우 이 법 17조 5호의 ‘대통령과 보좌기관 사이에 생산된 의사소통기록물로서 공개가 부적절한 기록물’로 포섭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통령지정 기록물 이후의 열람 방법은
대통령지정 기록물이 되면 언론은 물론 국회, 수사기관도 접근이 어려워집니다. 대통령기록물관리법 17조 4항은 보호기간 중에는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의결이 있거나(1호) 관할 고등법원장이 해당 대통령기록물이 중요한 증거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여 발부한 영장이 제시된 경우(2호), 대통령기록관 직원이 기록관리 업무수행상 필요에 따라 기록관장의 사전 승인을 받은 경우(3호)에만 최소한의 범위에 한해 열람, 사본제작 및 자료제출을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게다가 이들 정보는 ‘다른 법률에 따른 자료제출의 요구 대상에 포함되지 아니한다’는 조건까지 붙었습니다. 즉 위 1~3호 외에는 국회가 요구하거나 수사기관이 일선 법원 압수수색 영장을 들고 와도 제출 의무가 없다는 뜻입니다.
현재 의석분포상 1호로 기록물을 열어 볼 가능성은 없습니다. 3호의 경우 실무상 필요한 작업이어서 ‘공개’와는 무관합니다. 결국 남은 가능성은 ‘관할 고등법원장의 영장’ 밖에는 없습니다.
통상 영장은 1심을 맡는 일선 법원이 발부합니다. 그런데 2심 고등법원의 수장을 영장 발부기관으로 명시한 것은 그만큼 ‘벽’을 높인 것입니다. 게다가 법에는 ‘관할 고등법원장은 열람, 사본제출 등이 국가안전보장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하거나 외교관계 및 국민경제 안정을 심대하게 저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 영장을 발부해서는 안된다’는 제한까지 달려 있습니다.
◇최대 30년까지 봉인, 고등법원장 영장 있어야
현재까지 ‘고등법원장의 영장’이 발부돼 대통령지정기록물을 열람한 사례는 손에 꼽힐 정도입니다. 2008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가기록물 유출 의혹 사건이 최초입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당시 청와대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청와대 기밀자료를 별도의 e지원(옛 청와대 온라인 업무관리시스템)을 구입해 봉하마을로 가져갔다는 의혹을 제기해 수사가 이뤄진 사건입니다. 검찰이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에 보관된 하드디스크를 열람하기 위해 오세빈 당시 서울고등법원장에게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습니다. 사법사상 처음으로 고등법원장에게 영장을 청구했던 사건입니다.
이후 2013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사건에서도 같은 방식의 수사가 이뤄졌습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북방한계선(NLL)포기 발언 여부가 논란이 되자 당시 새누리당이 회의록이 고의로 은닉·페기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노무현 청와대 인사들을 고발한 사건입니다. 검찰이 대통령기록관에 있는 남북정상회담 관련 기록물 열람을 위해 조병현 당시 서울고등법원장에게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습니다.
두 사건 모두 고등법원장들은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하기는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검찰이 요청한 열람과 사본제작 및 자료제출 중 ‘열람’만 허용했습니다. 조병현 법원장의 경우 ‘원본 열람 시 원본이 손상될 우려가 있다’며 대상물을 복제해 사본 열람만 허용하기도 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가기록물 유출 의혹 사건은 2009년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후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됐습니다.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사건은 백종천 전 청와대 외교안보실장과 조명균 전 안보비서관이 회의록 초본을 폐기한 혐의로 기소됐고, 8년 넘는 재판 끝에 지난 2월 파기환송심에서 집행유예의 유죄 판결을 받아 현재 재상고한 상태입니다.
◇'옷값’, 고등법원장 영장 받을 수 있을까
김정숙 여사 옷값 논란에 대해 청와대는 “의상비는 특활비와는 무관하고 사비로 지출했다”고 했습니다. 사비의 경우 지출내역을 공개할 의무는 없습니다. 정식으로 의전비용으로 지출된 경우가 아니라면 지출내역 또한 ‘대통령 지정 기록물’과도 무관합니다.
다만 이 사건에 대해선 이미 형사고발이 이뤄졌습니다. 시민단체인 서민민생대책위원회가 김 여사를 업무상 횡령과 특가법상 국고손실죄로 고발해 서울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에 배당됐습니다.청와대 입장과는 무관하게 형사절차 진행이 불가피한 상태입니다.
이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일반 법원의 영장으로는 열람이 불가능하고 고등법원장의 영장이 있어야 합니다. 다만 이 사건에서는 옷값의 출처가 사비가 아닌 공금인 의전비용 혹은 특활비일 수 있다는 점을 어느 정도는 입증해야 영장 발부가 가능할 것이란 견해가 우세합니다.
청와대는 지난 5년간 문 대통령의 총 수입이 19억 8200만원이며 세후 총 소득은 16억 4700만원, 이 가운데 생활비로 13억 4500만원이 사용됐다고 밝혔습니다. 네티즌들이 추산한 의상 178벌과 액세서리 207개가 ‘생활비’ 범주를 넘어선다는 입증이 필요합니다. 한 법조인은 “품목당 500만원 이상의 보석류는 재산신고 대상이어서 액세서리 신고 여부가 우선 확인돼야 할 것”이라며 “의상과 액세서리 금액이 최소 억대는 넘어서야 영장 발부 개연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요건을 모두 갖춰서 영장을 발부받아 열람하더라도 별 내용이 없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일각에선 ‘대통령지정 기록물 또한 법정 절차를 밟아 열람할 수 있다는 선례가 만들어진 이상 ‘진실’에 해당하는 내용을 모두 남겨놓겠냐’는 추측도 나옵니다. 또다른 법조인은 “9급 공무원의 메모 하나까지도 관리하라고 할 정도로 기록관리를 강조했던 노무현 정부에서도 결과적으로 남북정상회담 기록의 일부 폐기가 이뤄지지 않았느냐”고 합니다.
이 모든 논란을 해결하는 가장 간단하고 확실한 방법은 ‘공개’입니다. 그러나 청와대는 여전히 국민들이 궁금해하는 세부 내역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습니다. 결국 김정숙 여사의 옷값은 청와대 기록유출 혹은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사건의 멀고먼 길을 가게 될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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