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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펀치에 '현타' 맞은 한국 야구..베이징 단꿈, 이제 도쿄 악몽으로 교체할 시간

감투봉 2021. 8. 8. 16:35

올림픽 펀치에 '현타' 맞은 한국 야구..베이징 단꿈, 이제 도쿄 악몽으로 교체할 시간

도쿄 | 김은진 기자 입력 2021. 08. 08. 15:53 수정 2021. 08. 08. 15:57

 

[스포츠경향]

야구 대표팀 오승환이 지난 7일 2020 도쿄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에서 8회초 역전을 허용한 뒤 고개숙이고 있다. 연합뉴스


행복했던 꿈이 완전히 끝났다. 도쿄에서 세게 한 방 맞은 한국 야구는 이제야 현실을 깨닫고 있다.

한국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우승 이후 최고의 시간을 보냈다. ‘신화’ ‘영광’이라는 수식어가 늘 붙었던 베이징 금메달 이후 한국 야구의 위상과 기세는 동시에 올라갔다. 2009년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우승에 2015년 제1회 프리미어12 우승까지 한국은 각종 국제대회에서 영광의 시간을 보냈다. 실제로 경기를 잘 했다. 전력이 좋았고, 선수들의 투지가 뜨거웠고, 운도 따라다녔다.

현재 KBO리그에는 베이징올림픽을 보고 야구선수의 꿈을 키우던 소년들이 성장해 프로선수로 뛰고 있다. 베이징키즈가 프로야구의 주인공이 될만큼 시간이 흐른 동안에도 한국 야구는 여전히 2008년 베이징 금메달의 추억에 푹 빠져있었다. 도쿄올림픽의 ‘노메달’은 그 현실을 일깨워준 전환점이 됐다.

한국 야구가 꿈에서 깼어야 하는 시간은 이미 오래 전이었다. 국제대회의 몇몇 경기에서 그 징후가 있었다. 2013년 제3회 WBC와 2017년 제4회 WBC에서는 모두 1라운드 탈락의 참패를 안았다. 각각 ‘야구변방’이라던 네덜란드와 이스라엘에 일격을 당해 쓰러졌다. 그러나 그때마다 다음 대회에서 다시 좋은 성적을 냈다. 2015년 프리미어12 4강에서 일본을 꺾고 결승에 올라가 우승하고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명맥을 이었다.

위태로운 가운데서도 계속 다시 어느 정도 성적을 내는 바람에 한국 야구는 현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대표팀 명단을 짤 때도 얼마나 경쟁력있는 구성인지보다 ‘잿밥’에 더 많은 시선이 쏟아져다. 감독이 “실력 보고 판단했다”는데도 수많은 의혹이 쏟아졌던 2018년 아시안게임에 이어 2020 도쿄올림픽 최종명단 발표 후에도 각 구단의 ‘잿밥 다툼’은 멈추지 않았다.

2020 도쿄올림픽을 준비하는 대표팀은 분명히 한계를 알고 있었다. 국가대표 에이스라 부를만한 투수가 없어 투수엔트리 11명 중 7명을 선발로 뽑고 돌려막는다는 이례적인 전략을 세웠다. 정상적인 운영을 할 수 없는 팀을 두고 모두가 금메달 목표를 당연시했다. 무려 13년 만에 열리는 올림픽인데 ‘디펜딩 챔피언’이라는 이유로 세월의 흐름을 깨닫지 못했다.

도쿄에서 한국 야구는 처참하게 무너졌다. 베이징올림픽 이후, 한국이 국제대회에서 라이벌로 생각하는 상대는 사실상 일본, 미국뿐이었다. 대만도 늘 한 수 아래로 봤다. 그러나 도쿄에서 한국은 미국과 일본에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다. 이번 올림픽 진행 방식은 매우 독특했다. 한국은 결승으로 가기 위한 준결승 기회를 2번이나 받았지만 일본과 미국에 모두 져서 스스로 결승행 티켓을 반납했다. 금·은메달을 딴 일본과 미국의 경기력은 한국과 비교하기 어려운 한 차원 위였다.

대표팀은 약한 투수진을 야수진의 경험과 노련미로 채우고자 했으나 수십억의 연봉을 받는 KBO리그 최고 타자들의 7경기 타격은 형편 없었다. 마운드는 붕괴됐다. 5이닝 이상을 던지는 선발은 역시 한 명도 없었다. 리그 최고 마무리 3명이 갔지만 모두 한 번씩 붕괴를 경험했다. 결국 한국은 한·미·일 프로리그를 모두 거친 ‘아시아 세이브왕’ 오승환이 무너져 역전패를 당했다.

메달 획득에 실패한 가운데서도 세대교체를 위한 신호탄을 쐈다는 수확은 있다. 투·타 모두 확실한 세대교체가 반드시 필요하고 정상 궤도로 다시 올라서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도쿄올림픽이 날린 강력한 한 방에 꿈꾸고 있던 한국 야구는 정신을 차릴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도쿄 | 김은진 기자 muldero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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