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호 칼럼] 대통령의 조건과 자격--전과자와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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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2-02-25 22:15 | 수정 2022-02-25 22:34
<백허 팔조시에 화답함>
정치는 우선 외교를 돈독히 함에 있는데,
일 일랑 마땅히 전문가에게 물어 봐야지.
고립되면 국가의 존립이 염려 되니,
백성을 자유의 몸으로 따르도록 힘써야.
법의 허위는 뒤가 두려우니 옛 것도 하자가 없이,
선을 쫓아 미래를 다룰 진대 새로운 것 싫어 말 것.
현재에 가장 급한 것은 인재를 육성하는 교육이고,
양병은 오직 전쟁을 억지함에 있을 뿐이라네.
(이승만, 복역기간 23세~29세 1898-1904)
대한민국 건국대통령 우남 이 승만이 한성감옥에서 지은 한시(漢詩)의 번역이다. 대선이 한달도 채 남지 않은 지금 대한민국 대선후보들이 토론하는 것을 들어 보면 60언저리에 와있는 그 들 중 어느 하나도 국정이 무엇이고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가 120년전 30이 채 안 되었던 우국청년 이승만에게 못 미치지 않는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씁쓸하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들의 정치 의식 수준도 마찬가지 아닌가 싶다.
대통령은 국제사회에서 국민을 대표하고 대신하여 국가의 안위와 경쟁력을 극대화 하는 일에 앞장서고 최고의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이다. 그가 바로 나라의 얼굴이요 품격이며, 두뇌요, 눈, 코, 귀, 입이 되는 것이다. 투철한 민주주의적 국가관과 역사의식을 갖고 있는 애국자이고 공사를 엄격하게 구분할 줄 아는 인격자여야 함은 말 할 것도 없는 기본이다.
대내적으로는 전체 국민 개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하면서 경제발전과 사회통합을 증진해 나가는 것이 대통령에게서 기대되는 지도력이다. 평화는 이 모든 일의 전제조건이지만 침략과 도발을 막기위해서는 전쟁도 불사한다는 결기와 준비 없이는 평화가 지켜지지 않는 다는 것이 역사가 보여주는 상식이기 때문에 대통령은 국군 통수권자를 겸한다.
대통령이 국정을 수행하는데 성공하고 못하고는 대통령의 생각이 얼마나 크게 국민의 호응을 자아내고 그가 발탁해서 기용하는 공인들이 얼마나 양심적이고 유능한가에 달렸다. 따라서 대통령의 임무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이 인사권 행사이다. 최고 책임자가 모든 분야의 모든 일을 세밀한 부분까지 직접 챙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장쩌민의 말을 빌리자면 공산당 수뇌부가 결정해야 하는 사항이 하루에 몇 백만 통의 배추를 어떻게 확보하는가 까지 고민해야 하는 상하이 시장의 수준과 같을 수는 없는 일이다.
따라서 대통령이 되는 사람이 선거 공약이나 입법안을 통해 제시해야 하는 것은 국정의 큰 방향과 원칙이지 전문가들에게 맡겨야 할 세부적 대안들이 아니다. 선거 공약이 국회나 행정부의 검토를 거치지 않고 곧 바로 법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지난 대선 때부터 우리 대산 후보들이 공약이라고 내 놓는 것을 보면 국정에 관한 철학도 국제관계에 대한 안목도 미래를 향한 폭 넓고 장기적인 전망도 보기 어렵다. 대통령의 임무와 권한의 한계가 무엇인가에 대한 분명한 의식도 없다. 그들은 하나 같이 대통령에 당선되기만 하면 자기는 전지전능의 존재가 될 듯한, 아니 후보로서 이미 된 듯한, 착각에 빠진 듯, 유권자들이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다 해줄 수 있을 듯한 선심성 공약들을 남발한다. 구체적 수치까지 제시하며 도토리 키 재기 식 돈 퍼 주기 약속 경쟁을 하면서도 누가 어떻게 경제를 살려 돈을 마련 할지에 대해서는 희미하기 짝이 없다. 돈 몇 푼에 또는 막연한 감성적 평가에 이 나라 주인으로서의 자기의 권리를 팔고 책임을 면할 수 있을 듯한 유혹에 빠지는 일부 유권자들의 방심도 문제이다.
문재인 정부의 집권 5년에 우리나라가 처해 있는, 그리고 나아가 지구촌 전체가 직면하게 된 어려움은 전 방위적으로 엄중하다. 미-중 간 대립이 격화되는 세계정세 속에서 핵을 가진 북한이 우리를 정조준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중국은 한반도를 자기의 속주처럼 여기며 뒤에서 흑작질을 하고 있는데 한미동맹은 전과 같이 견고하지 못하다. 생태계 파괴에 깊은 뿌리가 있는 코로나 팬데믹은 이제 엔데믹, 곧 끝없이 꼬리를 무는 현상이 되고 경제가 전 세계적으로 파탄 날 수도 있는데 어떤 각오로 어떻게 대비를 해야 할지에 대해 언급하는 후보는 아무도 없다. 많은 서민들이 밤잠을 설치고 자살을 생각할 정도의 고충과 불안을 느끼기 시작한지가 오래 되었는데 차라리 위기 속 윈스턴 처칠처럼 “여러분들께 약속 드릴 수 있는 것은 피와 땀과 눈물 뿐입니다”라고 외치는 후보가 있다면 신뢰가 더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선거민주주의 제도가 인기영합주의로 타락하면서 심한 역작용을 일으키는 현상은 디지털 시대 세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지방선거도 아닌 대통령 선거전이 정강이나 인물됨에 관한 냉정하고 깊이 있는 분석이나 공정한 평가가 아니라 유치한 수준의 선심공세와 가족관련 문제점 파고들기를 동력으로 하는 정치공작 수준으로 전락하게 되는 데는 정계 못 지 않게 편파적이고 부패한 언론의 책임이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공직을 일 할 자리, 책임지는 자리보다는 나눠 먹기 위해 있는 자리로만 여기는 풍조는 언론계에만 국한 된 병리현상이 아니지만 자기들의 편향된 시각이나 용렬함을 감추기 위해 계속 만들어 내는 모호한 신조어들, 특히 “부모찬스”니 “가족리스크”니 “네가티브”니 하는 국적 없는 외래어들은 언론계가 발산하는 특유의 병균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권력층 인사 가족들이 잘못을 저지르면 그것은 비리나 범행이 아니라 “가족 리스크”라는 모호한 포장지로 감싸진다. 지사부인의 공무원 착취와 공금유용은 공사를 구분할줄 모르는 지사의 직권남용과 양면을 이루는 범죄인데 그것이 “갑질”이나 “과잉의전”, “가족리스크”로 의미가 축소된다. 마치 도지사 부인에게 주어지는 합법적 범위의 의전이 있었던 듯한 인상을 자아내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며 전 사회의 법과 도덕불감증을 키우는 것이다.
배격해야 할 것은 근거 없는 중상모략일 뿐 후보에 관한 주요 정보는 샅샅이 공개되어야 하는데 마치 후보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사실들을 지적하는 것 자체가 금기사항인 듯 “네거티브” 배제라는 모호한 구호 아래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를 선별적으로 제한하는 일이 용인된다.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계속 발전하고 번영 할 수 있을지 만 아니라 중국과 북한의 노골적인 야욕 앞에서 진정한 독립국가로 존속 할 수 있을지 여부를 가를 수도 있는 이 번 대선이 한달도 남지 않았는데 유권자들은 누구를, 왜 찍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는데 무엇을 근거로 결정해야 할지 모른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이 시점에서 유권자 전원이 깨달아야 하는 것은 자기 마음에 꼭 드는 훌륭한 후보가 있어 투표하게 되는 경우는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나 지극히 드물다는 점이다. 최선의 정치적 선택이란 결국 최 악을 피하기 위해 차 악을 선택하게 되는 일이다. 다만 선택의 기준이 무엇인가는 분명해야 하며 그 기준이, 무엇이고 정치사안의 우선 순위를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정치가, 그리고 국가가 발전하기도 하고 추락하기도 한다.
이제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후보들은 물론 유권자들 모두가 자기의 공약이나 선택에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보야야 할 때이다. 후보의 선택은 크게 보아 두 가지 고려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첫째는 현 정권에 대한 평가이다. 문재인 정권이 잘 했다고 믿는 사람은 여권 후보를 지지하려 할 것이고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사람은 그 반대 일 것이다. 여기에 관해서는 이미 국민들의 판단이 서 있고 여론 조사의 결과도 여러 차례 발표되었다.
두 번 째 고려는 후보들 개개인의 사람됨과 정치 지도자 로서의 능력과 신뢰도이다.
모든 후보, 특히 양대 정당의 후보들에 대한 비호감도가 이처럼 높은 선거가 없었다고 개탄하며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말라”식의 비현실적인 오만한 자세로 이재명, 윤석열 후보 둘이 똑 같다는 논평자들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선동적 언론 조작에 놀아나 이성이 마비되고 감성의 포로가 되었거나 옛날 고무신 한 켤레에 표를 팔았던 수준의 정치의식 밖에는 갖지 못한, 인간으로서는 순박하나 시민으로서는 무책임한 유권자들의 환각일 뿐이다. 선거전을 웅변대회나 오스카상 후보 선발 과정쯤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남발되는 선심성 공약의 내용으로만 본다면 두 후보 사이의 차이는 실상 그리 크지 않은 하지만 사실 거대 양당 후보들의 대조가 이번처럼 극명했던 선거는 우리 역사상 없었다.
형식적으로 드러난 것으로만 본다면 거대 양당 후보 두 사람의 자격은 비등하다.
한 사람은 성남시장을 거쳐 경기 지사를 지내고 먼저 번 대선에도 후보지망자로 떠올랐던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검찰총장 출신으로 평생을 검사직에 종사해온 사람이다. 선출직은 임명직 위에 군림 할 수 있다는 이재명 후보의 편견은 거부한다 해도 행정 경륜으로 볼 때는 시장과 지사 출신이 검사직 한 골만 팠던 후보에 비해 우위인 것은 틀림 없다. 대중심리나 선거전략에 관해 아는 것도 당연히 더 많다.
그러나 저들이 각기 지닌 경륜이나 능력을 대통령으로서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지금 까지 그들이 걸어온 길에 비추어 생각해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한 사람은 평생 범법자를 잡아내 법치를 지키는 일에 몰두했던 검사 출신이고 다른 한 사람은 정치범이 아닌 전과 3범이다. 한 쪽은 검찰권력의 독립성과 권위를 과신한 나머지 한 나라의 대통령이 자기의 개인 집사격인 사람과 법적 “경제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는 해괴한 비법적 논리를 받아들여 탄핵에 더해 엄청난 처벌을 받게 만들어 애국보수 세력의 원성을 샀던 사람이다. 다른 쪽은 확정 판결을 받은 전과 3건 말고도 선거법 위반으로 상고심에서도 유죄판결을 받았다가 대법원에서 판결이 어렵사리 뒤집혔고 관련 대법관을 매수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있는 사람이다.
윤석열 후보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유죄를 안긴 공로에서 인지 문재인 정권에서 전격적으로 검찰총장에 발탁되었지만 “촛불혁명”과 “적폐청산”을 내 걸고 출범한 그 정권이 범죄 혐의가 짙은 조국교수를 법무장관으로 기용하자 검찰총장직을 걸고 저항한 뚝심의 인물이다. 법치와 양심을 지키려는 그의 우직한 용기에 감동한 국민이 그를 야권의 대권주자로 불러 낸 것이지 본래부터 정치를 한 사람이 아니었다. 따라서 정치공학면에 문외한이고 눈치도 언변도 없이 거칠고 미욱하다는 인상을 준다. 대조적으로 날렵하기 짝이 없는 이재명 후보는 정치권력 추구에 평생을 바쳤으며 거대 변호인단 도움을 받아 법망을 피하는데 이골이 난 사람이다.
두 후보 간의 차이는 그 뿐이 아니다. 이 재명 후보는 대한민국 건국대통령 이승만과 부국 대통령 박정희의 묘소 참배를 거부하며 대한민국의 국가적 정통성에 의혹을 제기한 사람이다. 최근에는 그 두분 대통령의 공로도 인정해야 한다는 쪽으로 말을 바꾸고 있지만 사람의 역사관이 하루 아침에 바뀔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 대조적인 것이 인간형이다. 고지식하다 못해 미욱한 윤 후보는 당선되면 “적폐청산”을 할 것이라는 등, 당연한 일이지만 표심 잡기에는 도움이 안 될 수 있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데, 이재명 후보는 청중이 누구 인가에 따라 말 바꾸기를 밥 먹듯 하며 눈썹 하나 까딱 안 하는, 두뇌회전이 무척 빠른 궤변가이다.
온 세상이 지켜 보는 국정감사장 텔레비전 앞에서도 어제는 단군이래 최대의 자기 업적이라고 자랑하던 대장동 개발사업이 거대 비리의 온상이었던 것으로 드러나자 곧 바로 자기는 책임이 없고 야당이 저지른 일이라고 몰아붙이는 배포의 소유자다. “존경하는 박근혜 대통령”이라 말했더니 자기가 정말 그를 존경하는 줄 아는가 보다고 청중을 비웃고 언어 자체를 공공연하게 우롱한다.
가장 끔찍한 일은 이재명 후보가 시장으로 있던 시절에 발생한 거대 비리 사건들에 대해 결정적 증언을 할 사람들이 복수로 의문의 죽음을 맞거나 자살을 했어도 그 사업의 최종 결재자였고 따라서 법적 책임을 결코 피할 수 없는 그는 소환조사의 대상에도 오르지 않는 비상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도지사 부인이 공무원을 개인 집사처럼 부렸고 공금으로 식료품을 사오도록 허용했음이 드러나도, 성착취를 당한 여성이 계속 아우성을 쳐도, 그것은 범죄가 아니고 겉 발림 사과로 넘어갈 수 있다고 여기는 그 부부의 태도나 그것을 묵인하는 우리의 언론과 정치 풍토에는 온 몸이 오싹해 지지 않을 수 없다. 시장이나 도시사직을 몇 번씩 거치고도 아직까지 공사를 구분 못하고 권력을 마구 행사하는 것이 몸에 배였으며, 잘못된 모든 것은 부하들이나 정적들에게 덮어씌우려는 언행을 계속하는 사람의 공약이 얼마나 믿을 만한 것인가? 그런 사람이 대통령 권한을 쥐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 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권력층에 만연되었던 도덕적 이중성이나 부패와는 또 다른, 한 차원 높은 도덕적 냉소주의와 그와 양면을 이루는 은폐된 폭력정치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두렵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앞에 놓인 선택의 여지는 크지 않다. 식견이 그리 넓지 않고 우직한, 법의 칼 날을 과하게 사용할 염려가 아주 없지는 않지만 애국적인 검사 출신을 우리의 대통령으로 뽑을 것인가, 아니면 말 바꾸기와 궤변이 몸에 배었고 법망을 피해가는데 귀재인 전과자 행정가 출신을 우리 대한민국의 얼굴과 심장으로, 그리고 자라나는 아이들이 성공적 인생으로 바라보게 될 본보기로 세계 앞에 내 세울 것인가 하는 기로에 우리는 지금 서 있는 것이다. 어느 쪽을 선택하는 가는 결국 국민 개개인이 자기의 자화상을 어떻게 그리며 미래를 어떤 세상으로 설계하는가와 같은 일임을 모든 유권자들이 깨닫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서울대 명예교수, 전 러시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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